철학의 눈으로 보는 영화 이야기-<시티오브 엔젤>

조광제 산업대 철학 강사 인간의 몸을 지니고, 몸에 의거한 감각을 지녔다는 사실은 얼마나 신비하고 대단한 일인가요? 태어날 때부터 이미 당연한 일로 습관화한 탓에 뭐 그다지 신비로울 것도 없고 대단하다고 여길 일도 아니라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영화 <시티 오브 엔젤>을 보면, 그런 평소의 생각이 싹 가십니다.

영화에서 주인공 천사 세스는 인간 매기에 대해 지성적인 호기심과 그에 따른 지성적인 애정을 느낍니다.

천사 세스는 인간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있지요. 그래서 매기에게 다가가고 매기는 세스에게 매력을 느껴 끌려듭니다.

결국 두 사람은 포옹을 하고 키스를 하게 되지만, 지성의 화신인 천사 세스에게서 전혀 감각적인 교류를 느끼지 못하고 서로는 절망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인간적인 전신적인 감각을 지녔다는 것이 사랑, 질투, 고뇌, 기쁨 등의 인간사의 주요 사안에서 얼마나 근원적인가를 바로 느끼게 됩니다.

인간됨에 이 같은 전신적인 감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천사 세스가 높은 곳에 올라가 땅에 떨어짐으로써 인간 몸으로 변신하는 장면에서 극을 이룹니다.

공사장 바닥에 떨어져 인간이 된 천사 세스, 드디어 몸에서 피가 흐릅니다.

인간이 된 세스가 그 피맛의 감각을 느끼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은 우리가 지성적이기만 한 천사가 아니라 전신감각적인 인간의 몸을 지녔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결국 매기를 찾아가 전신감각적인 사랑을 뜨겁게 나누는 장면은 우리가 감각적인 삶을 얼마나 방치하고 있었는가를 진하게 느끼게 합니다.

인간의 감각에 환호하는 장면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에 세스가 바다 속에 뛰어어 바닷물의 소용돌이가 주는 전신적인 감각의 리듬을 만끽하는 대목입니다.

세스가 죽음이 없는 영원한 존재인 천사의 신분을 포기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이 되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지성만으로는 삶의 의미가 일구어지는 원천에 도저히 가 닿을 수 없다는 것을 뜻하기 않겠습니까. 또 불멸의 지성적 세계가 인간의 전신감각적인 몸의 세계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서는 그 자체 어떤 의미도 지닐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겠습니까. 또 불멸의 지성적 세계가 인간의 전신감각적인 몸의 세계에 뿌리를 내리지 않고서는 그 자체 어떤 의미도 지닐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 않겠습니까. 텅 비어 있고 건조한 지성적인 영생의 삶보다 필멸의 운명으로 살더라도 뭇 사물들과 더불어 하나가 되는 듯 꽉 찬 전신적인 느낌으로 사는 삶이 훨씬 더 의미 충만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듯 인간의 삶은 근원적으로 전신감각적인 데서 일구어 지는 모양입니다.

지성은 그런 몸 전체로 다가드는 감각을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한 모양입니다.

욕망과 감각이 인간 삶에서 근원이요 바탕인 것은 비단 포스트­모더니즘 운운하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본래 그런 것입니다.

이를 <시티 오브 엔젤>은 눈부신 영상으로 잘 빚어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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