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언론계에서 가장 이슈화되고 있는 사건‘안티 조선일보 운동’. 이 운동은 특히 9월말 MBC‘100분 토론’에서 조선일보 문제를 주제로 다루므로서 공식화되었는데, 그러나‘100분 토론’을 보면서 시청자들은 논의의 내용에 집중할 수 없었다.

토론자들의 인격이 의심되는 인신공격적인 발언이 서슴없이 나오고 주제에 대한 준비부족이 도처에서 드러난데다 사회와의 통제력이 상실되는 등 한국사회의 토론문화의 수준을, 더 나아가 우리사회의 논쟁문화 수준을 유감없이(?)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난 20세기 동안의 우리나라의 논쟁은 어떠한 양상으로 흘러 왔을까? 일제 식민지 시기, 해방에서 1960년대, 1970년대 이후 등 세부분으로 나눠 각 시기별로 논쟁의 주제 죽, 이슈의 흐름을 살펴보자. 우선 일제 식민지 시기에는‘근대성을 받아들일 것이냐,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것이냐’, ‘우리 나라가 어떻게 어떻게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하고 권리를 되찾을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활발했다.

다음으로 해방에서 60년대의 시기를 보면‘해방 직후에 어떻게 경제를 회복하고 발전시킬 것이냐’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1970년대 이후를 살펴보면 ‘노동자들의 권리’나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인식해야 할까’에 대해서 논쟁이 활발히 일어났으며 현재의 논쟁은 의약분업, 전교조문제 등 이익집단의 싸움이 주가 되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해 시대별 한국사회 논쟁의 경향에 대해 성균관대 서중석 교수(한국학 전공)는 “일제시대에는 인신공격이 심했으며 해방이후 70∼80년대에는 이와는 반대로 비판할 것을 감추고 미온적으로만 이야기하는‘봐주기식’의 경향ㅇ 짙었다”며 현재에는 다행히도 이러한‘봐주기식’비판경향은 많이 감소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우리의 논쟁형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 그는 20년대에는‘개벽’등의 잡지나 신문 등을 이용한‘지면논쟁’이, 70∼90년대 초반까지는 데모 즉 시위를 하는‘거리를 통한 논쟁’이 활발했으며, 지금은 여러가지 방송사들의 토론 프로그램을 통한‘공중파 방송을 통한 논쟁’이 활성화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ㅈ난 87년 KBS‘생방송 심야토론’으로 처음 선보인 TV토론 프로그래은‘길종섭의 쟁점토론’( KBS),‘100분 토론’(MBC),‘오늘과 내일’(SBS), ‘생방송 난상토론’(EBS) 등이 잇따라 시설되면서 양적으로는 많이 늘었다.

그러나 사실 우리 사회의 노쟁문화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많은 비판이 가해져 왔다.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 사무국장 김성희씨는“논지와 무관한 내용을 가지고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경향이 짙고 토론이 전개된다기 보다 끊임없이 자신의 논리를 강변한다”며 우리의 토론문화에 대해 비판했다.

또한 생산적인 담론이 되지 않고 토론결과에 대해 깨끗이 승복하지 않는다며“이러한 논쟁문화가 일반적 시민의 토론 뿐만 아니라 학자들의 토론도 이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화평론가 권성우 씨는 10월6일(금)자 한겨레 신문에서“우리 사회의 논쟁문화에 대해 말하자면, 소신 있는 비판과 활발한 논쟁이 부족해서 문제가 되는 것이지 비판과 토론이 과잉이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현재 학계에는 바옹과 더불어 논쟁문화에 대한 작은 변화의 미풍이 불고 있다.

최근에 책세상 문고의‘우리시대’시리즈는 우리시대 쟁점을 둘러산‘논쟁붙이기’를 기획의도로, 사회적 이슈가 될만한 논쟁적인 주제를 다뤄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그러나‘우리시대’시리즈는 무엇보다 소장 학자들에게 자기의 관점에서 학문적 가치가 있는 이슈를 속시원히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지닌다.

현재 우리나라 소장학자들은 할 말을 다 못하고 산다.

할 마리 있어도 학계의 권위적 분위기는 그들의 목소리를 억누르고 그들의 목소리를 낸다손 치더라도 그들의 목소리에 대해‘상대할 가치가 없는 어린 생각’인 것처럼 진자하게 응수하지 않는다.

이러한‘무반응’풍토는 우리사회에서 건전한 논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봉쇄하고 이러한 기회의 봉쇄는 성숙한 논쟁문화를 발전시킬 수 없게 하는 등의 연쇄적인 문제점을 낳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우리시대’시리즈는 소장학자들의 올바르고 신선한 비판에 귀를 기울이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또한 ‘창작과 비평’편집인 백낙청씨의‘토론마당 참여’선언도 토론문화의 변화에 부응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즉 외부의 비판에 무응답, 상대에 대한 비판은 익명으로 일관해‘한국문단에 있어서 논쟁의 씨를 말려왔다’고까지 평가를 받았던 동인지의 대표격이었던 ‘창작과 비평’이 드디어 사람들의 비판을 수렴하려는 움직임을 보인것이다.

일제식민지시대에 언로를 통제받고 해방 후 극단적 남북대립과 냉전의식으로 강압적인 흑백논리를 강요받은 역사를 거쳐 지금 막 한국의 논쟁문화가 성장하려 하고 있다.

소모적으고 인신공격적이고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는 유치하기 짝이 없던 과거의 토론 문화를 지야아하고 건전한 비판 앞에서는 항상 열려져있는 논쟁을 하는 한국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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