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부터 우리 문화재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인사동을 많이 돌아다녔는데, 그 때 우리의 좋은 문화재들은 흔히 선진국이라고 부르는 나라들에 가 있고 우리의 것이라고 번듯이 내놓은 문화재(?)들이 껍질 뿐이라는 것을 절감했다.

그 때부터 나는 ‘한국, 바로우리의 것은 무엇이며 우리는 누구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한국의 정체성」과 「한국의 주체성」의 저자 탁석산씨의 이야기다.

우리의 것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에서 ‘제비 몰러 나간다’까지 소위‘전통’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과연 그러한 것들을 우리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탁석산씨를 만나 한국의 정체성과 주체성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왜 하필 한국의 정체성·주체성인가? -말 그대로 정체성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주체성은 이 땅에서 주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논하는 것이다.

한국의 정체성과 주체성은 한국인이라면 한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중요하고도 어려운 주제임에도 이에 대해 정면으로 밝힌 책들이 우리에게는 턱없이 부족하다.

놀랍게도 이러한 주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단행본은 이 책이 처음일 정도다.

설사 주체성에 관해 다뤘다고 해도 ‘정신만 건강하면 우리는 다른 나라에 점령 당해도 주체적일 수 있다’는 등 지식인 대부분은 외적인 면보다는 내적인 면에 치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러나 그러한 주체성은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 고상하고 다다르기 어렵니다.

즉 주체성의 내면화도 중요하지만 더불어 핵무장이나 군사력 강화 등 물리적인 힘도 길러야 한다.

어떠한 이유로 정체성의 기준을 현재성·대중성·주체성으로 제시했는가? -지금의 우리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정체성 문제는 당연히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주목해야 한다.

또 소수가 선호하는 것이 어떤 집단의 정체성 판단에 크게 기여한다고 보기는 어려우므로 ‘대중성’이라는 것이 정체성의 또다른 기준이 된다.

더불어 주체성은 표면적 현상이 아닌 현상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이 중요한데, 주체성은 ‘집단의 성향’으로 집단은 여러 가지의 문화·정치·경제·사회·종교적 성향을 통해 자신의 주체성을 드러낸다.

‘서편제’보다 ‘쉬리’가 더 한국적이라고 논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정체성은 개성으로 특수성과 많은 연관이 있다.

‘쉬리’는 ‘북한은 우리에게 동족인가, 적인가?’라는 주제로 같은 민족이 이런 정체성의 갈등을 겪어야 한다는 현재 한국의 특수성을 보여준다.

반면 서편제는 그야말로 옛 것을 소재로 삼아 한국의 특수성이 판소리에 모두 논아있다는 신념이 가득한 영화다.

그러나 판소리는 더 이상 우리에게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하며 이에 더이상 판소리는 한국의 소리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쉬리’는 현재성을 갖고 한국의 특수성을 잘 반영하며 대중성을 잘 녹였다는 점에서 ‘서편제’보다 더 한국적이다.

주체성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전망은 어떠한가? -오늘 우리가 놓인 상황은 결코 편하지 않다.

한번도 강대국이 되어 세계의 중심에 서 본 적이 없는 나라. 과거에는 중국과 일본에, 지금은 미국의 지배를 받고 있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약소국이라는 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21세기에 선진국이 된다는 몽환적인 거짓말이 판을 치고 있다.

현실적으로 검토해 보면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방치할 경우 강대국의 현지고용인으로서의 삶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우리는 약소국이지만 주체적으로 살아갈 방법과 자세를 모색해야 한다.

그러면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한글전용이 돼야 한다.

한문과 영문 등이 한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한글과 혼용되는 현실에서 우리는 혼란을 방치해 오기만 했다.

흔히 한글 전용의 문제라고 불리는 ‘동음이의어’처리는 단어가 문맥에 의해 해석되며 오히려 언어가 갖는 상징성으로 문학 작품의 해석이 다양해지고 풍요로워진다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외국기업으로 부터의 국가 기반 시설보호를 해야한다.

전기·우편·철도·통신등의 국가 기반시설의 민영화는 우리의 공기겁이 외국인에게 잠식당하는 이상황에서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단적으로 통신ㅇ르 외국인이 장악한다면 우리의 보안과 기밀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우리는 할 말은 해야한다.

아무말 못하고 있으니까 강대국은 우리를 우습게 본다.

우리는 세계 각국에 언론사의 상주 주재원을 둬 우리의 관점에서 바라 본 기사와 뉴스를 보게 될 때 독자적이고 주체적인 세계관을 갖게 될 것이다.

그의 논리는 단순하다.

그리고 철저하리 만큼 솔직하다.

그렇기에 ‘세계사의 주류가 태평양과 동북아로 몰려드는 가운데 한국은 아시아 최상의 국가가 될 것’이라는 보랏빛 꿈을 그는 용납하지 않는다.

‘현실’을 바탕으로 누구나 아는 언어와 소재를 가지고 심도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철학’이라며 이 땅에서 철학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책으로 보여준다는 탄석산씨. 그는 오늘도 우리에게 스스로 만든 허울에서 벗어나 현실을 받아들이고 당당히 주체적인 한국으로 나아가라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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