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텔레비전을 켜면 광고에서 코미디 프로, 뉴스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프로에서 교수들을 볼 수 있다.

97년 대선과정에서 본격화된 "미디어 정치", 극에 달한 방송의 경박화를 경험하는 작금에 교수들의 텔레비젼 출연은 더욱더 폭증하고 있다.

이렇듯 체제 옹호의 지적 기반 제공자 역할을 하거나 경박한 탤런트 교수로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교수들을 "텔레페서"라고 말한다.

"Telefessor"는 쉽게 연상할 수 있듯이 접두사격인 "tele"와 교수를 의미하는 professor의 "fessor"를 함께 붙여 텔레비젼에 등장하는 교수를 지칭하는 신조어다.

"원격, 멀리 떨어진"을 뜻하는 "tele"는 "대상·목적·상대"란 뜻의 희랍어 telosdp비롯됐고, "fessor"는 "드러내다, 공언하다"를 의미하는 라틴어 fateor의 전 과거 형태fassus를 어원으로 하고 있다.

교수를 뜻하는 professor라는 영어 단어는 라틴어의 pro(앞에, ~위하여)와 fateor(드러내다)가 합성돼 "~위하여 드러내고 말하는 사람"인 셈이다.

영상시대, 멀티미디어 시대에 우리는 인쇄된 문자를 눈으로 읽는 의사소통에서 전자매체를 통해 영상을 눈으로 보는 변화를 겪고 있다.

합리·논리로 특징지어지는 인쇄문자시대에서 다양한 내용과 형식의 메시지를 수용해야 하는 다면적 감각시대를 맞이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읽는 행위보다 "보고 느끼는 것"이 선행하는 요즘에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란 명제, "소비자는 실체를 사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사는 것이다.

"라는 말로 우리 사회를 설명할 수 있다.

더불어 그 "보는것, 보여지는 것"의 무소불위적 권력이 사회에 미치는 폐해를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리고 텔레페서들이 그 폐해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텔레비전에 교수가 자주 출연 하는 것에 대한 관점은 다양할 수 있다.

대학 울타리 안에 고립된 연구집단, 연구성과이기를 넘어 서서 대중에 대한 교육적 측면, 상아탑에 고립된 아카데미가 아닌 사회와 함께 하는 장으로의 참여란 측면에서의 매체 출연은 그 명분이 존재할 수 있으며 저널리즘에 대한 무시가 곧 고고한 학문의 세계 유지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교수를 방송에 출연시키는 미디어 측의 의도, 교수들이 방송에서 맡는 역할의 형태, 텔레페서로서 가질 수 밖에 없는 수동성에 존재한다.

더 나아가 비판정신이 둔화된 기존 언론에 학계가 비판적 세력으로 존재하기를 포기하고 전적으로 타협하게 될 때 사회 전반에 파급되는 악영향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실체가 아닌 이미지를 파는 사회에서 소위 "텔레페서"들은 미디어의 의도대로 구성된 무대에 기꺼이 출연해 진정한 지식과 비판도 아닌 단지 지적 이미지를 그 의도에 부여해주는 역을 자임하고 있다.

사회의 주체적 비판자란 지식인의 의무에 입각한 참여라기보다는 미디어의 목적 수행에 "수동적·보조적"으로 역할하는 장식적 존재에 그치고 마는 것이 텔레페서들의 현실인 것이다.

또한 영상 미디어에 의해 양산되는 텔레페서들을 보면 연구실에서 강의실에서 얻어내야 할 성과 대신 화면에 등장함으로써 주어지는 "혜택"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디어의 주목을 받느냐의 여부에 의해 연구의 "상업적 가치"가 오르내리고 무조건적 이미지 숭배 시대에 화면이 텔레페서들에게 부여하는 "정치적 가치"는 "미디어 정치"의 조연이 아닌 주역을 꿈꾸는 그들에게 거부하기 힘든 큰 유혹인 것이다.

그러나 소유한 지식(sophia:히랍어)을 "널리(tele) 드러내고 공인받고자(fessor)하는" 텔레페서들의 탤런트 기질이 주목받는 사회에서, 진정 학문과 학문 공동체를 위해(pro) 진리 발견 노력에 치열한 프로페서들의 주체적 비판정신을 존경할 줄 아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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