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시장 성 비위로 촉발된 보궐선거
20대 여성 투표기준에 젠더 이슈 작동
100명 중 15명은 소수정당에 투표
전문가들, 제1기준이 '젠더'인 유권자층 생겼다고 분석

 

4‧7 보궐선거 이후 20대 유권자는 정치권이 주목하는 세대로 떠올랐다. 특히 국민의힘에 72.5%라는 압도적 지지를 보낸 20대 남성과 달리, 20대 여성은 보다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들 중 44.0%가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후보를, 40.9%가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을 선택했다. 거대 양당 구도로 치러진 선거임에도 15.1%는 제3의 후보에 표를 던졌다. 소수정당‧무소속 후보를 뽑았다는 응답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건 전체 연령대와 성별 그룹을 통틀어 20대 이하 여성이 유일하다.

이번 선거에서 박 후보가 오 시장을 앞선 유권자 그룹은 20대 여성과 40대 남성 둘 뿐이다. 그러나 지지율 차이가 크다. 40대 남성의 51.3%가 박 후보를 지지한 반면, 20대 여성 지지율은 40대 여성(47.3%)보다도 낮다. 결이 다르다. 20대 여성이 특별히 박 후보를 지지했다기보다는 오 시장을 상대적으로 지지하지 않았고, 대신 100명 중 15명은 기타 후보를 새로운 대안으로 선택했다는 해석이 중론이다.

무엇이 이들의 표심을 갈랐을까. 20대 여성이 투표로써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인지, 본교생을 포함해 실제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9, 10일 양일간 여당, 야당, 소수정당에 각각 투표했다고 밝힌 20대 여성 약 20명(이대학보 패널단 포함)에게 후보 선택 이유를 인터뷰했다.

 

민주당 떠나든 남든… 젠더는 중심에 있었다

방송3사의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 성별·연령대별 분석. KBS 화면 캡처
방송3사의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출구조사 결과 성별·연령대별 분석. KBS 화면 캡처

20대 여성은 그동안 진보 정당의 강력한 지지층이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선 양당 후보 지지율이 팽팽히 맞섰다. 여권을 지지해 온 20대 여성 그룹 내 ‘스윙 보터’들이 일부 변심했단 의미로도 풀이된다. 취업, 주택 마련 등 청년층이 느끼는 위기감이 심각한 가운데 ‘내로남불’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눈여겨볼 지점은 보궐선거가 전임 시장의 권력형 성 비위로 촉발된 만큼, 20대 여성의 투표 기준에 ‘젠더’ 이슈가 비중 있게 작동했다는 것이다. 정권 심판론과 네거티브 공방에 밀려 ‘젠더 선거’의 의미는 무색해졌지만 20대 여성에게만큼은 진보‧보수와 관계없이 젠더 이슈가 여전히 중심부에 있었다.

실제로 이번 선거에서 야당에 표를 준 본교생 박모(22)씨는 “정책이 더 현실적으로 보여 오세훈 후보를 뽑았다”면서도 “두 전임 시장들의 권력형 성범죄로 인해 일어난 보궐선거인데도 당헌을 개정하면서까지 후보를 낸 집권여당은 국민들의 반감을 살 수밖에 없으며, 박영선 후보 선택은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2차가해에 다름없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김모(22)씨도 “박 전 시장 관련 성폭력 사태에 대한 미숙한 대응 때문에 야당을 뽑았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국민의힘을 선택한 최모(24)씨도 “민주당의 성추문으로 인해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투표 기준은 똑같이 ‘젠더’였지만 다른 시각도 존재했다. 여당 후보를 찍었다는 본교생 ㄱ(23)씨는 “민주당 내 성범죄로 공석이 된 자리에 여성 후보를 낸 것이 ‘유리절벽’(조직이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 여성에게 고위직을 맡기고 일이 실패하면 책임을 묻는 현상)처럼 보였다”며 “이번에 여성 후보가 표를 얻지 못하면 다음에도 여성 후보를 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박영선을 찍었다”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대학생 이모씨는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은 국민의힘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문제였다”며 “젠더 이슈에 보수적인 국민의힘을 찍기보다 차라리 여성 리더십에 한 표 던져보자는 마음이었다”고 말했다.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당이 아닌 남성 중심 사회이기에 야당 남성 후보보단 박 후보를 선택했다는 뜻이다.

이 같은 20대 여성의 투표 성향은 민주화 세대를 동경해 진영 논리 속에서 진보를 선택했다고 분석되는 40대 남성과 다르다. 진영 논리를 벗어나 실용적 선택을 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세대 남성과 유사하지만, 젠더 이슈를 상대적으로 더 고려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배종찬 인사이트케이 연구소장은 “박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이 민주당에 악영향을 미친 건 맞다”면서도 “해당 사건과 별개로 민주당이 그동안 여성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했던 시도들이 국민의힘보다 낫다고 평가해 투표한 20대 여성 유권자들이 있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래도 민주당’이란 입장을 보인 유권자도 있었다. 보수정당에 대한 불신이 현 정권에 느낀 실망감보다 크다는 이유에서다. 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아영씨는 “이번 정권을 겪으면서 민주당에 크게 실망했지만, 국민의힘이 여당으로 있을 때 느꼈던 실망과 무력감은 더 컸다”며 “그래도 국민의힘보단 민주당이라는 생각에 투표했다”고 말했다.

 

사표 될 줄 알면서도 소수정당에 투표한 속내는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0대 이하 여성 유권자가 제3후보에 소신 투표한 비율이 15.1%에 달하는 것도 주목할 지점이다. 다른 세대·성별 유권자들의 소수정당·무소속 후보 지지율이 0.4%~5.7%에 불과한 것에 비하면 월등히 높다.

본지 취재에 응한 이들 중 소수정당 후보를 뽑은 유권자들은 ‘인권 감수성’이 표심 결정에 주요한 요인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서모(23·서울 서대문구)씨는 “보궐선거에 책임이 있는 당에도, 그렇다고 용산 참사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후보에게도 표를 주고 싶지 않았다”며 “사표가 될 줄 알면서도 여성 정책을 강하게 얘기하고 내 가치관과 맞는 당에 소신 투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박영선, 오세훈 후보를 뽑은 20대 여성 중에서도 마음은 ‘기타’에 기운 사람이 많았으리라 생각한다”고 했다.

‘최악’도 ‘차악’도 선택할 수 없었던 오갈 데 없는 표심이 소수정당에서 대안을 찾았단 의미다. 실제로 성평등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여성의당 김진아 후보, 기본소득당 신지혜 후보, 무소속 신지예 후보는 이들의 표에 힘입어 차례로 4, 5, 6위를 기록했다. 세 후보의 표를 합하면 총 7만5088표로 3위인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5만2107표)보다 많다.

20대 여성은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2017년 미투 운동 등 활발했던 페미니즘 운동의 한 가운데 있었던 주역이자 당사자다. 작년 N번방 사태,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성추문 사건 등을 겪으면서 현재도 여성주의 운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은 성차별을 민감히 인지하고 대응하는 세대다. 서울연구원 2020년 조사에서 20대가 ‘남녀 갈등’을 가장 심각한 사회갈등으로 꼽은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역차별’을 주장하는 같은 세대 남성과 젠더 갈등을 빚고 있기도 하다.

이런 특성을 가진 20대 여성의 표심은 앞으로 어디를 향할까. 소수정당에 투표한 박도원(22)씨는 “민주당도 국민의힘도 뽑고 싶지 않았다”면서 “정치인들이 젠더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무소속 신지예 후보를 뽑았다는 강지수(23·서울 성동구)씨는 “사회가 원자화되는만큼 다양한 가치를 지향하는 소수 세력들이 정치에 나서야 한다”며 “다음 선거에서도 내 이익, 내 가치를 대변해주는 세력을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생 여성주의 연합 단체 ‘유니브 페미’ 윤김진서 대표는 “앞으로는 친문, 반문을 넘어 ‘내’ 삶을 이야기하는 후보에 여성들의 표심이 향할 것”이라며 “소수정당을 뽑은 이번 투표 행태는 다수결로만 이야기되는 민주주의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대 여성들에게 ‘젠더’가 중요한 정치적 의제로 자리 잡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배 소장은 “여성주의 소수정당에 투표함으로써 집권 여당과 야당이 성평등 의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단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라 진단했다. 이준호 에스티아이 여론조사업체 대표는 “소수정당 지지율이 높은 것은 후보에 대한 제1기준이 ‘젠더’인 유권자 층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대학생 김모(22·서울 광진구)씨는 “20대 여성이 제3의 후보에 15%나 표를 준 것을 보고 연대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며 “여성이 대상화되지 않고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며, 정치에 환멸을 느껴도 포기하지 않고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감시하겠다”고 전했다.

김수현 선임기자 rlatngus9809@ewhain.net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