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업체들은 자격증 대신 수료증을 발급하고 있다. 수료증을 발급하는 업체의 규모는 추산이 어렵다. 고용노동부 여성정책과 최양순 사무관은 “(직장 내 성희롱 예방 교육)의무화 이후 민간업체 규모를 조사한 적은 없다”며 “업계 추산이 안 된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파악한 업체만 20곳이다.

이 중 네 곳에 교육과정을 문의했다. 이들은 평균 6시간의 교육을 한 뒤 수료증을 발급한다. 발급 과정도 A 업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시험은 치르지만 커트라인은 없는 업체, 시험 없이 수료증을 발급해 주는 업체도 있었다.

네 곳 모두 교육 수료 후 바로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로 활동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C 업체는 수업을 들은 후 바로 출강할 수 있냐는 질문에 “(수업 들은 후)전국 어디서든 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B 업체도 “성희롱은 요즘 피크다. 학교에서도 바로 강의할 수 있다”고 답했다.

6시간짜리 교육을 받은 강사들은 각종 사업장을 누비고 있다. B 업체에서 수료증을 받은 김모 강사는 한국무역협회를 비롯해 금융기관, 대학교, 병원까지 출강했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금융기업에서 일하는 정모(27)씨는 작년 12월 김모 강사의 강의를 들었다. 정씨는 “강의가 너무 부실했다. ‘여러분 이건 성희롱일까요? 아닐까요?’ 퀴즈 풀듯 가볍게 수업이 이어졌다. 성희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수업을 듣고도 혼란스러웠다”라고 했다.

 

구멍 숭숭 뚫린 현행법, 강사 기준도 없어

민간 강사 양성기관 난립의 배경에는 성희롱 예방교육 수요 증가가 있다. 정부는 1999년에는 모든 초·중·고등학교, 2007년에는 10인 이상 근로자가 일하는 사업장에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했다. 2019년 기준 전국의 학교 1만 1657곳과 사업장 201만 8000곳이 매년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야 한다.

하지만 교육을 실시하는 강사의 자격은 사실상 정해져 있지 않다. 남녀고용평등법 13조에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어떻게’ 할지는 권고 사항에 그친다. 13조의 2에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고용노동부 지정 기관에 맡겨 ‘실시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강제조항이 아니어서 사실상 아무나 강의를 할 수 있다. 회사 직원이 교육을 하거나, 외부에서 3시간 교육받은 강사가 강의해도 된다. 법이 정하는 강사 자격이 없다 보니 민간업체가 제멋대로 강사를 양성해도 제재할 수 없다.

전문가들도 관련 법이 허술하다고 말한다.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의 박윤진 노무사는 남녀고용평등법에 대해 “강사 자격과 강사 양성 과정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과 마찬 가지다”고 말했다. 박 노무사는 “강사가 부적절한 강의를 해도 제재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 강사 양성과정은 물론 과정을 수료한 강사에 대해서도 관리가 필요한데 현재는 모니터링도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사는 ‘성희롱 정의 읊는 사람’이 아니라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어야

전문가들은 3시간짜리 수업으로는 좋은 성희롱 예방 교육 강사를 양성할 수 없다고 말한다. 문화예술계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로 활동 중인 김보은(35)씨는 “양평원에서 80시간 교육받았는 데 이것도 짧다. 80시간 듣고 밖에서 강의할 수 있을지 두려웠다"고 말했다. 김수경 전국민주노 동조합총연맹 여성국장은 “성희롱 예방교육은 어려운 교육이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려면 페미니즘 같은 인식 교육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 자격을 강화하기 위한 법안이 나오기도 했다. 신보라 미래통합당 의원은 2018년 8월 남녀고용평등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강사 자격을 고용노동부 장관이 승인한 교육 또는 양평원 교육을 이수한 사람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법안은 20대 국회 임기 종료와 함께 폐기됐다.

현장에서는 강사 재교육부터 시작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10년째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로 활동 중인 박미애(40)씨는 “양평원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수업 방식을 바꿨다. 다른 강사들에게도 강의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1593건. 지난 1년간 직장 내 성희롱 신고 건수다. 하루 평균 네 건꼴이다. 신고를 꺼리는 풍토를 감안하면 훨씬 많을지 모른다. 같은 기간, A 업체에서는 320명의 강사가 양성됐다. 「페미니스트 선생님이 필요해」 저술가이자 7개월에 걸쳐 성평등 활동가 과정을 수료한 홍혜은(32)씨는 “강사는 성희롱의 정의를 외워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깊게 고민하고 청중과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교육 현장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13년 묵은 문제의 실마리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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