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산다] 스무 살의 독서와 오월의 스승
[읽어야 산다] 스무 살의 독서와 오월의 스승
  • 우순옥 서양화전공 교수
  • 승인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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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순옥 서양화전공 교수
우순옥 서양화전공 교수

스무 살 시절에 읽던 알베르 까뮈와 그의 스승 장 그르니에와의 서한집을 지금도 가끔 꺼내 읽는다. 어느 페이지를 무심히 펼쳐도 삶과 세계에 대한 그들의 순수한 시선과 진정한 마음이 감동스럽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무한한 존경과 우정을 나눈 인간미에 아름다움과 고결함이 느껴진다.

우리는 책을 통해 세계와 인생을 철학적으로 깊은 차원에서 사유할 수 있게 하는 수많은 위인이나 위대한 사상가, 예술가를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가히 정신적 스승이라 할 만한 분들을 간접적인 글을 통해서만이 아닌 현실에서 직접 만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오래도록 배움을 얻고 지혜의 등불로 길을 밝히며 위로를 얻는다면 덧없이 짧은 인생에서 그처럼 소중하고 귀한 인연이 있을까 싶다.

나 역시 오월이 되면 잊지 못할 두 분의 스승이 떠오른다. 한 분은 독일에 계신 지도교수 귄터 우커(Guenther Uecker) 선생님이시고 다른 한 분은 몇 해 전 작고하신 철학자 박이문 선생님이시다. 1930년생 동갑내기이신 두 스승은 오늘날까지 내게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이며 나의 삶에 어떠한 기준이 되는 분들이다. 귄터 우커 선생님이 예술적 표현 세계의 안목을 넓혀준 분이라면, 박이문 선생님은 학창시절 책과 더불어 학문 입문의 중요한 시작이 된 분이다.

박이문 선생님은 내가 독일서 서울에 돌아온 1995년부터 작고하시기 얼마 전까지 20여년간 매해 새로 출간된 선생님의 책에 멋진 글귀와 싸인을 담아 보내주셨다. 제자로서 늘 송구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온 수많은 인문학 서적들은 나의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키워주었고, 보람되고 가치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혜와 성찰적 의식을 한껏 고양시켜주었다.

 

실존적 물음에 밤새우던 스무 살

무한긍정과 용기 준 박이문 선생님의 글 

나는 박이문 선생님을 1980년 가을, 대학 4학년 마지막 학기에 처음 만났다. 데모와 최루탄으로 얼룩진 서슬 퍼렇던 유신 시대가 비참하게 막을 내리고 계엄령과 휴교령, 5.18광주민주화운동으로 어둡고 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그해 가을, 미국에서 교편을 잡고 계시던 박이문 선생님이 풀브라이트 교환교수로 2년간 이화여대에 오신다는 짤막한 기사가 학보에 실렸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자유, 정의, 진리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상실의 시대 속에서 참스승의 모습에 목말라 있었던 난 드디어 갈증을 적셔줄 샘물을 발견한 듯 반갑고 기뻤다.

지금 돌아봐도 나의 스무 살 시절은 혼돈과 방황의 시절이었고 까뮈, 샤르트르, 니체 등이 쓴 글을 탐독하며 끝없는 실존적, 근원적 물음에 밤을 지새우던 시절이었다.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 진실과 거짓, 진리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은 무엇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수많은 책 속에서도, 그림 속에서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해답을 찾아 헤매다 늦은 밤 홀로 어둡고 텅 빈 운동장을 가로질러 하교하던 나의 고독하고 우울한 뒷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그러면서도 나는 보이지 않고 알 수는 없지만 늘 내 안에 잠재된 어떠한 긍정적이면서 숭고한 차원의 에너지를 믿었다. 사물에 대한 지각적, 참된 인간으로서의 윤리적, 무엇보다 아름다움에 대한 미학적 감수성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진정한 예술가로서의 꿈과 상상력을 묵묵하고 드높이 키워왔다.

그림을 그리다 깊은 생각에 잠길 때면 어둑어둑한 교정의 숲을 지나 고요한 도서관의 책들 속에 파묻혀 지냈다. 그러한 혼자만의 시간들이 너무 좋았다. 그러다 어느 서가 구석에서 발견한 어두운 시대의 금서 같았던 ‘사상계’나 낡은 문학 저널을 통해 알게 된 박이문 선생님의 글들은 순수했고 열정이 가득했다. 무엇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정성이 삶의 무한한 긍정과 용기를 줬다. 그 글들은 지적 정열로 불탔던 20대 후반 전후의 젊은 청년 박이문이 그의 경험과 생각들을, 가난하던 유학생활의 배고픔과 고독을 처절하게 이겨내며 어떤 꾸밈이나 미사여구없이 거침없이 써 내려간, 지성적이면서도 생생하게 빛나는 글들이었다. ‘사상계’에 실렸던 그 글들은 몇 십년이 지나 「다시 찾은 빠리수첩」이라는 제목으로 1997년 출간됐다.

1980년 가을학기, 박이문 선생님의 강의는 ‘예술철학’, 철학과 전공 과목이었다. 비전공생인 난 수강 허락을 받기 위해 용기 내어 선생님을 찾아갔다. 과연 어떤 분일까? 나의 소심한 염려를 단숨에 날려버린 시원한 한 마디, “나의 ‘예술철학’ 강의는 예술가를 진정 환영합니다!” 두꺼운 안경 너머 작은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함박웃음을 웃으시던 순수한 그 모습은 그의 글을 그대로 닮아있었다.

나는 마지막 학기 강의를 그렇게 신나는 마음과 새로운 각오로 경청하고 노트했다. 선생님은 때론 말보다 생각이 흘러 넘치셔서 급한 마음에 말씀이 어눌해지기도 하셨는데 거침없이 쏟아지는 질문은 날카로웠으며 대답은 명료했다. 소박하고 온화하면서도 시니컬하셨다. 난 삶과 예술에 대한 많은 질문과 해답을 얻었고 지적 호기심은 고양됐으며 삶과 세계에 대해 더 투명하게 알고 싶어졌다.

‘예술은 이 삶에 있어서의 보다 높은 과제와 진정 형이상학적인 활동을 드러내 준다고 나는 믿는다’, ‘당신들이 세계라고 부르는 것, 당신들은 그것을 창조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당신들의 이성, 당신들의 상상력, 당신들의 의지, 당신들의 사랑은 그 세계가 되어야 한다’는 니체의 명쾌한 선언들. 그렇다, 그런 예술가로 살아야 한다! 누군가 자신의 진실된 작품을 원한다면 그는 그의 삶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삶과 예술은 하나다. 그해 그 강의는 이후 「예술철학」이란 책으로 1983년 출간됐다.

박이문 선생님은 ‘나의 철학은 시(詩)’라며 늘 시인을 꿈꾸셨다. 1981년 여름, 방학을 맞이한 텅 빈 교정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생님은 새로 출간된 두 번째 시집 「나비의 꿈」을 뜻밖의 선물로 주셨다. 난 시집을 읽고 또 읽었다. 주옥같은 시어들이 알알이 가슴에 맺혔다. 나의 마음을 풀어놓은 것 같은 언어.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었다. 독일로 유학 떠나는 길에도 제일 먼저 짐 속에 넣었다. 그 시들은 외로운 유학 생활에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생각은 그림자」, 「외로운 긍지」처럼 내 그림의 제목이 되기도 했다. 나는 낡고 헤진 그 시집을 지금도 가끔 들여다본다. 그 시절, 20대였던 내가 밑줄을 그어 놓은, 세로로 쓰인 시어들의 행간을 바라본다. 고독하지만 맑고 투명하다.

 

‘꿈으로 만들어진/ 현실’, ‘그림자같은/ 현실이여’, ‘흔들리지 않는 것/ 고요한 것 그리고/ 깊은 것은/ 밤하늘의/ 무한히 흩어진 공간뿐’, ‘보이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들은’, ‘잡히는 것은/ 빛나는 침묵/ 고요한 하나’, ‘외로운 긍지’, ‘푸르고 조용한 마음이/ 높이 서있다 혼자서/ 푸른 긍지를 갖고’.

7년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몇 군데 서점을 통해 이 시집의 여분을 찾았지만 절판됐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출판사에는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당시 안국동에 있던 ‘일조각’을 찾아가 창고 구석에 먼지 덮인 채 남아있던 몇 권을 모두 사가지고 돌아와 반갑고 그리운 분들께 선사했다.

책 읽기의 또 하나의 새로운 시작이다. 

 

우순옥 서양화전공 교수 

*본교 서양화과에서 학사, 석사를 마치고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마이스터슐러를 취득했다. 수차례 개인전과 국내외 주요 현대미술전시에 서 현대인의 다양한 삶의 방식을 시적, 철학적 사유로 풀 어내는 개념미술을 선보이며 한국의 대표적 중견작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