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대학보DB
최재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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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포스트 코로나(코로나19 사태 이후)’ 시대를 주목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창궐 이후, 대면접촉을 기피하는 문화의 확산과 원격교육 및 재택근무 급증 등 우리 사회 전반에 변화된 삶의 모습이 자리 잡았다. 코로나19가 종식된 이후, 지구엔 어떤 반향의 물결이 불어올까. 본지는 고교 3학년 학생들이 학교에 가기 시작한 20일, 최재천 교수(에코과학부)에게 ‘사회생물학자가 그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모습’을 물었다. 최 교수는 ‘생태적 전환의 필요성’을 외치는 사회생물학자다.

 

행동백신과 생태백신이 있는 사회

“바이러스는 사실상 무기력한 존재에요. 생물이 아니기에 스스로 옮겨 다닐 수 없죠. 바이러스가 한 숙주에서 다음 숙주로 넘어가지 못하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게 제가 말하는 ‘행동백신’입니다. 또 숲속에서 인간사회로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게 자연과 거리를 두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게 ‘생태백신’이죠. 이 두 가지를 잘 지켜나가면 돼요.”

국립생태원장과 생명다양성재단 대표직을 역임하며 자연보전을 꾸준히 외쳐온 최 교수. 그는 ‘행동백신’과 ‘생태백신’이라는 용어를 최초로 만들어 사용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간사회는 자연과도 적절한 거리두기를 하는 게 경제적으로도 더 이로울 것이라는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저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계산’이라는 단어를 써 정의내리고 싶어요. 그동안은 저 같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연보전이 더 유리하고 궁극적으로도 이롭다고 외쳐도 변하지 않던 사회였어요. 사회가 이번 사태를 겪으며 자연보전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한 거죠. 제 입장에선 은근히 재앙 속에서도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감이 생겼어요.” 그에게 코로나19는 ‘자업자득’으로 해석되는 게 당연했다. 그동안 인간이 저지른 무분별한 자연 개발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행동백신과 생태백신을 품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모든 관계를 비대면 만남으로만 바꾸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비대면이 예전보다 많아지는 건 누구나 예상하지만, 모든 삶이 비대면으로 이뤄질 순 없다. 최 교수는 “비대면과 대면 활동이 적절히 섞일 것”이라며 “인간은 만나서 부대끼는 동물이기에 그게 뿌리째 없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서양 국가에서처럼 작은 지역 공동체는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서양인들은 타인과 조금만 스쳐도 “실례합니다”라며 사과한다. 그에 비해 코로나19 이전 한국 사회는 밀집된 공간에서 타인과 부딪히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최 교수는 “앞으론 아는 사람들과는 더욱 친밀해지고, 교류가 없던 사람과는 거리를 둘 것”이라고 말했다.

 

자연과 사람 중심의 경제 개발 정책

최 교수는 지나친 방역으로 경제가 무너지면 ‘방역을 안하는 것’만도 못하다고 주장한다. “질병을 퇴치하려다 사람이 굶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일단 대학에서 계속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 대학가 상권이 모두 망합니다. 대학생들이 고교 3학년 학생들보다 더 지성인이기에 대학생이 먼저 오프라인 개강을 하는 게 맞았다고 생각해요. 체온 측정과 손 소독 등 정확한 지침만 있다면 대학생들이 더 잘 따를 거란 말이죠. 대학 상권에서 밥도 먹어줘야 대학 상권 경제가 순환될 수 있는 거라고도 생각 하고요.”

코로나19 사태에 전 세계가 돈을 풀고 있다. 국가 재정을 걱정할 때가 아니라며 경쟁적으로 돈을 푼다. 우리나라도 이른바 ‘한국판 뉴딜’ 정책을 펼치며 돈을 풀었다. 그런데 한국판 뉴딜엔 두 가지 요소가 빠졌다. 하나는 ‘그린’(자연)이고 또 하나는 ‘사람’이다. 최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는 자연을 훼손해 일어난 일이라고 모두들 인정한다”며 “헌데 자연을 연구하는 일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한국판 뉴딜 정책에 ‘그린 뉴딜’을 포함하기로 추가 공표했다. 그린 뉴딜은 온실가스 감축 등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을 뜻한다. 앞서 문 대통령은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한국판 뉴딜 정책의 구체적인 사업으로 ▲디지털 인프라 구축 ▲비대면 산업 육성 ▲국가기반시설 스마트화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여전히 ‘사람’은 빠져있다며 “인건비를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4차 산업시대, 인공지능시대가 오면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난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것이지, 일 자체는 줄어들지 않는다. “답답한 실내에서 하는 건 기계에 맡기고, 신체 및 정신 건강에 좋은 야외활동은 직접 하면서 즐기면 되는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 관점에서 정책을 만들고 집행해달라는 바람이죠. 자연을 연구하러 다니는 건 사람 건강에도 좋으니까. 이런 일을 활성화할 수 있게 이런 분야를 강조해야 합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생태적 전환

1999년 최 교수는 모리 요시로 전 일본 총리가 주최한 '밀레니엄 포럼'에 초대받아 새 천 년 우리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전환은 '생태적 전환'이라고 선언했다. 당시 그는 “기술적 전환과 정보의 전환에 관한 논의도 있었지만, 생존이 걸려 있는 마당에 다른 어떤 전환도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생태적 전환은 생태를 모든 사회적 활동의 최우선으로 두고, 자연 속 생명체들과 공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최 교수의 주장에 호응을 보내왔다.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은 기독교 원죄에 생태적 죄(ecological sin)를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 기독교에서도 ‘같은 피조물들 사이에 서로를 해치고, 연대를 해치는 것’을 큰 죄로 여긴다. 그가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를 원죄 수준으로 표현해줘서 감동이었다. 그만큼 자연을 지키는 게 중요한 일이다.

최근에도 최 교수는 생태적 전환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유행성 질병이나 기후변화로 인해 인간이 더 이상 여기 지구에 못 살 수도 있어요.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전환은 생태적 전환이라는 거죠. 이번 사태를 겪으며 많은 이들도 느낀 만큼, 지금 우리가 해야하는 전환은 생태적 전환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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