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살 집 구하기 위해 시작하다, 비혼 여성들의 경제 독서 스터디
같이 살 집 구하기 위해 시작하다, 비혼 여성들의 경제 독서 스터디
  • 김예랑 기자
  • 승인 2020.05.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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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9일 오후5시 일산의 한 카페에서 「나의 월급 독립 프로젝트」를 읽고 경제 독서 스터디를 진행하는 모습황보현 기자 bohyunhwang@ewhain.net
1월19일 오후5시 일산의 한 카페에서 「나의 월급 독립 프로젝트」를 읽고 경제 독서 스터디를 진행하는 모습
황보현 기자 bohyunhwang@ewhain.net

“ㄱ페이지 상장한다는데 그거 사려고, 이게 책에서 말한 가치투자인가?”

“인터넷 전문은행 사업 영역이 확대되면서, 앞으로 ㄴ은행이 디지털 금융 부문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말이지.”

비혼주의 대학생 세 명이 모여 주식투자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한창 이어가고 있다. 얼핏 들으면 개인투자자들 사이 나눌 법한 이야기를 하는 세 명은 본교 최보라(가명, 정외·15) 씨와 한국외대 김승희(가명, 14)씨, 서울대 이제영(가명, 14)씨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동창이자, 현재는 경제 독서 스터디를 함께한다. 1월19일 일산 복합상가의 한 북카페에서 세 사람을 만났다.

이 날 주제는 ‘주식투자.’ 모인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스터디는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주식 투자의 자세와 전략, 원칙을 간단히 짚은 뒤, 이들은 모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사업 보고서를 노트북 화면에 띄웠다. 지난 주 최씨가 시험 삼아 산 주식이 실제로 괜찮은 종목인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세 친구는 한 동안 자료를 들여다보며 토론하다 최씨의 투자가 아쉽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본교 졸업을 앞두고 있는 최씨는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경제 지식이 전무했다. 경제 기사에 등장하는 기본적인 용어도 헷갈렸다. 하지만 비혼을 결심한 친구들과 스터디를 시작한지 반년이 다 된 지금 시점에서 스스로 달라진 모습을 체감하게 됐다. 막연하게 그리던 독립적인 미래를 스터디를 통해 구체적으로 그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혼 결심 후 스터디를 결성하다

스터디는 세 명의 친구들이 모두 비혼을 결심하고 난 뒤인 작년 9월에 만들어졌다. 구체적으로 비혼을 언제, 왜 결심했는지는 제각각이었다. 본교 정치외교학과(정외)를 수료한 최씨의 경우 3년 전 필수 교양 수업 <고전읽기와글쓰기>를 수강한 뒤 활동한 독서 모임에서 동기를 얻었다. 학우들과 모임하는 가운데 페미니즘 도서를 자주 접했고, 책을 읽을수록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다가왔다고 했다. 자연스레 비혼에도 관심이 생겼다. 현재는 비혼과 비연애를 추구한다.

인터뷰 내내 단어 선택 하나에도 신중한 모습을 보이던 김씨의 비혼 결심 과정은 좀 달랐다. 그는 자신의 가족을 보며 한국의 가족 문화와 결혼 제도 자체의 불합리성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많았다고 했다. 그렇게 작년부터 그의 삶에서 결혼이란 선택지는 지워졌다.

이들의 결심이 마냥 낯설게 들리지는 않는다. 2019년 10월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설문에 참여한 20대 청년의 절반 가까이(47.3%)가 결혼을 하고 싶지 않거나 절대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 응답자의 대다수가 ‘양성불평등 문화가 싫어서’를 결혼 기피 이유로 꼽았다.

한국 사회에 퍼져 있는 성 불평등 문화는 최씨와 김씨 같은 젊은 여성들을 비혼 선택지로 눈을 돌리게 했다. 최씨는 비혼 결심 초반에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비혼 여성으로 살게 되면 원하는 정도의 생활양식을 누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여자 혼자 살면 방범에 더 신경 쓰게 되고 인테리어 이런 것은 뒷전이 된다”며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도 1인 가구는 가성비가 떨어지는 삶을 살게 된다”고 말했다.

 

주거공동체 마련을 위한 경제 공부, 독서로 시작하다

비혼을 결심하자 앞에 다가온 고민거리는 대개 비슷했다. 최씨와 친구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공통점이 많았고 주거공동체 형성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작년 5월부터 최씨와 김씨, 그리고 비혼을 다짐한 또 다른 두 명의 동창 넷이서 함께 살 곳을 마련하기로 했다. 집을 사기 위해선 자본금을 모아야 했고 어느 수준 이상의 경제적 지식이 필요했다. 그러던 중 모 서점에서 진행하는 북클럽 공고를 발견, 곧바로 지원했다.

그렇게 시작된 스터디는 한 달에 한 번 오 프라인으로 만나며 이전 모임 때 정한 책을 각자 읽어오는 식으로 진행된다. 여태 읽은 경제 서적은 「나는 오늘부터 경제기사를 읽기로 했다」, 「앞으로 10년 대한민국 부동산」 등 총 9권이다. 경제 기본 개념서부터 주식 투자 실용서까지 다양한 주제를 아우른다. 오프라인으로 모여선 이해가 가지 않았거나 함께 얘기해보고 싶었던 점을 중심으로 토론한다.

간혹 책 내용 너머 배경지식을 필요로 하는 질문이 나오면 결론이 나지 않기도 한다. 이들 중 경제 전문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시간이 더 걸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김씨는 “혼자서 읽으면 모르겠다고 넘어갈 부분도 같이 이야기할 수 있으니 더 좋다”고 말했다.

스터디 마지막에는 사소하더라도 적용할 수 있는 활동을 포함시킨다. 실천을 해봐야 ‘진짜’ 자기 지식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예컨대 경제 기본 개념서를 읽은 뒤에는 포탈 경제면 기사를 보면서 기사에 나온 지표를 확인했다. 지표가 가리키는 상관관계를 이해한 뒤 경기의 흐름을 파악해보는 식이다. 1월 모임에서는 소액 투자도 시도했다.

 

비혼, 연대하면 성장할 기회가 된다

아직 취업 준비생인 이들은 당장 성취할 수 있는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 경제 서적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경제적 현상을 이해하고, 실생활과 어떻게 연계되는지 관련성을 찾아보기도 한다. 그렇게 경제 감각을 기르며 최종 목표인 ‘서울에 함께 살 집’을 구할 날을 꿈꾸고 있다.

당초 목표 외에도 독서모임의 긍정적인 효과는 빛을 발하고 있다. 최씨는 이 독서 모임이 “현실적으로 미래를 구체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다른 이와 함께할 때 꾸준히 활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생긴다고 그는 강조했다. 김씨는 북클럽 활동의 유용성을 역설했다. “강제성을 가지는 일반 서점 및 지역 도서관 지원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는 걸 추천한다”며 “독서습관을 수월히 기를 수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지역 네트워크나 블로그 등을 통해 지역 커뮤니티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도 내비쳤다. 최씨는 학내 커뮤니티 중 하나인 지역 네트워크 오픈 채팅방(오카방)에서 확장 가능성을 발견했다. 오카방에는 나이를 불문하고 같은 지역 출신 이화인들이 모여있기 때문이다. “위 나이대 분들 중 비혼 여성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는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미래를 생각한다면 (선후배간 네트워킹이) 더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도 ‘비혼’하면 해방감을 뒤로 한 걱정과 고민이 튀어 오르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좀 다르다고 이들은 말한다. 김씨는 “이 친구들과는 미래 계획, 가치관, 삶의 방식에 대해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 좀 더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며 “2~30년 후에는 비혼이 선택지로 중 하나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가치관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모여 삶과 밀접한 경제를 책을 통해 공부하는 것. 자립을 향한 첫 단추에 불과하더라도 이들은 점점 단단해질 서로를 믿고 있었다. 최씨는 비혼을 결심하고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뭉치게 됐다고 한다. “다른 분들에게도 비혼이 내 갈 길을 혼자 가는 외로운 길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자주 보며 연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