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대 국회의원 선거(총선)는 28년 만에 최고 투표율(66.2%)을 기록했다. 이화인이 겪은 21대 총선은 어땠을까. 생애 첫 투표의 순간부터 결과에 대한 생각까지. 이들이 직접 느낀 총선을 수기로 전한다.
첫 투표의 기억 | 최은(경영·20)
막연하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는 그것에 대해 종종 생각했다. 어렸을 때는 전광판에 위치가 뜨지 않는 노란색 마을 버스를 기다리는 게 내가 느끼는 막연함의 전부였다. 이따금 광활하고 끝없는 우주를 볼 때 드는 감정처럼. 그랬던 내가 처음으로 이 사회에게서 막연함을 느낀 건 열여섯 살 때였다.
그 무렵 나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책에 빠져 있었다. 그 책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도태되고, 소외된 이들이었다. 그들은 나에게 말했다. 우리는 말뿐인 계획이 아니라, 고통을 알아주고 함께 짊어질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나는 그 책이 나왔던 30년 전에도, 30년이 지난 후였던 그 시절에도, 그리고 지금도, 지겹도록 여전한 세상을 바꾸겠노라 다짐했다. 책 속의 이야기를 허구가 아닌 현실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나는 고통을 짊어지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막연함 속에서 어렴풋이 자리 잡은 생각은 점차 확고한 꿈으로 굳어져 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정한 첫발을 내디딜 때까지 나는 그저 속절없이 삶을 흘려보내야 하는 걸까? 도움이 필요할 때 문을 여는 댐처럼, 나는 무언가를 차곡차곡 쌓고 싶었다. 그 첫걸음에, 수많은 표 위로 던진 내 한 표가 있다.
살아가면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을 수없이 보았다. 무언가를 강요할 생각은 없으면서도, 허공에 버려진 ‘한 표’들을 모두 모으면 세상이라는 수면 위에 파동을 일으킬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불쑥 고개를 들이미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들이 꿈꾸는 세상이 내가 꿈꾸는 세상과 정반대의 것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큰 파도도 잔잔한 파동에서 시작한다고 나는 믿는다. 이번 선거에서 나는 소신껏 돌을 던져 파동을 만들었고, 다음 선거가 찾아올 때까지 그 떨림은 이어질 것이다.
나는 아직 한국 사회를 보며 어릴 때 느꼈던 막연함을 다시금 느끼고는 한다. 개표 방송을 볼 때마다 이 땅은 옆으로 눕힌 태극기처럼 푸르고, 붉게 갈라서고는 한다. 어떤 공약은 당의 색깔과 맞지 않으면 좌절되기 일쑤이므로 색의 경계가 생기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그 언젠가 색깔로 경계 지는 사회 대신 새로운 사회가 오기를 믿고 바란다. 한 표를 던지고 끝나는 일시적 행사가 아니라, 내 한 표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었는지 끊임없이 바라보고, 요구하고, 그럼으로써 내 표의 가치를 책임지는 모든 과정. 그 과정 자체가 선거를 뜻하는 날까지 나는 이 날을 기억할 것이다. 처음으로 선거에 참여했던 이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