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해 그리는 이야기, 「구름빵」 작가 백희나 동문을 만나다
아이들을 위해 그리는 이야기, 「구름빵」 작가 백희나 동문을 만나다
  • 강지수 기자
  • 승인 2020.0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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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창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일어나 봐. 밖에 비 와.” ‘나’는 동생을 깨워 노란 비옷을 입히고 함께 밖으로 나갔지요.

우린 한참 동안 비오는 하늘을 쳐다봤어요. 뭔가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았지요.

아니나 다를까, 저 멀리 나무 위에 작은 구름 한 조각이 눈에 띄었어요.

우리는 그 작고 가벼운 구름이 날아가지 않도록 조심조심 안고 엄마한테 갖다 주었지요. (책 「구름빵」 中)

 

제공=백희나 작가
제공=백희나 작가

아침도 거르고 만원 버스에 올라 출근하는 아빠를 위해, 먹으면 두둥실 떠오르는 ‘구름빵’을 만들어 주는 고양이 남매. 「구름빵」은 어릴 적 우리들의 마음속에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2004년 백희나 작가(교공·95년졸)가 이 책을 세상에 내놓으며 등단한 지도 어느덧 16년이 흘렀다.

그동안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백 작가의 작품 세계는 한국을 넘어 전 세계의 마음도 울렸다. 백 작가는 현지 시각으로 3월31일,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ALMA)’의 주인공이 됐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상은 스웨덴 정부가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을 쓴 자국의 세계적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 (Astrid Lindgren)을 기리기 위해 2002년 제정했다. 올해 백 작가는 67개국, 240명의 후보 중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국인으로선 최초의 수상이다. 본지는 수상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았던 11일, 백 작가를 전화로 만났다.

“그림책이라는 것은 연령에 상관없이,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접하는 종합예술 작품이기에 그에 맞는 사명감을 가져요. 그림책 작가라는 직업에도 큰 자부심을 느끼죠.” 그림책 작가를 ‘영광스러운 직업’이라고 말하는 그는 어릴 적부터 그림책 보기가 취미였다. 그림을 그리고, 인형 놀이를 하며 혼자 이야기 만드는 걸 좋아했다. 백 작가는 학부 때 교육공학을 전공하며 교육에 매력을 느꼈고, 아이들을 위한 매체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화에서의 학부 시절은 그가 아이들을 위한 매체를 만들게 한 출발점이 됐다.

“교육에는 안 좋은 상황이 더 나은 상황으로 발전돼 바뀌는 의미가 포함돼야 한다고 배웠어요. 교육학 관련 수업에서 교육의 매력도 많이 느꼈죠. 사회계층을 반복하지 않고, 배경을 떠나서 새로운 기회를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어요.” 이화에서의 배움은 그가 아이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대우나 보호, 어른들의 책임, 교육이나 사회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는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본투비(Born-to-be) 동화작가’라고 생각되는 그도 학부생 때부터 그림책 작가를 꿈꾼 것은 아니다. 학부 졸업 후엔 ‘LG미디어’에 입사해 유치원생들을 위한 멀티미디어 소프트웨어 제작에 몸담았다. 당시 백 작가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디렉팅하는 역할을 했다. 그는 “9개월만에 회사를 그만두고 애니메이션을 배우러 캘리포니아 예술학교(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 갔다”며 “졸업 후 애니메이터로 일하다가 한국에 들어와서부터 구름빵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구름빵 표지

“당시 판타지 장르의 그림책 의뢰를 받았는데, 그때가 장마철이었어요. 제가 비를 좋아해서, 비에 관련된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죠. 비를 머금은 구름이 산허리 밑으로 가라앉을 때, 저렇게 가라앉은 구름을 누가 주워갈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제 친언니가 요리를 워낙 좋아하고, 저는 먹는 걸 좋아해서 요리 얘기를 넣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빵을 만들자는 스토리가 나온 거죠.” 백 작가는 「구름빵」의 탄생 비하인드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그림책이 2차원 그림으로만 이뤄져야 한다는 편견을 깼다고 평가 받는다. “작업 시엔 스케치를 하며 텍스트와 함께 장면 연출을 연구해요. 그리고 그걸 정교하게 더미북(가제본)으로 옮겨요. 최종적으로 나오는 글, 그림과 거의 흡사하죠.”

이후 사진 촬영 작업을 거치면 최종 그림책이 나온다. 「구름빵」이나 「달샤베트」 같이 캐릭터를 납작한 2D 인형으로 만드는 경우, 사진 작가에게 촬영을 의뢰해도 위험 부담이 없다. 반면 캐릭터를 완전히 입체로 만드는 경우엔 변수가 많아 백 작가가 직접 촬영한다. 하다못해 카메라 앵글이나 렌즈가 조금만 달라져도 그림의 느낌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달샤베트 표지

백 작가는 “세트의 모양이나 왜곡된 형태, 소품 간의 거리나 각도 차이 같은 변수들에 의해 너무 다른 그림이 나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에 처음 세트를 제작할 때부터 최종 구성과 동일하게 맞춰가면서 작업한다. 카메라 테스트를 1000장 가까이 거듭해 최종본에 쓰일 사진을 결정한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철학을 가진 백 작가는 사실 이번 수상에 기쁨보단 안도감이 컸다. 「구름빵」의 저작재산권과 관련해 출판사 ‘한솔수북’과 법적 분쟁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4년부터 출판사와 협의를 해오다 조정에 실패해 재판까지 가게 됐다. 2019년 1심 판결에서 패소한 이후 항소했으나 올해 초 2심까지 패했다. 현재는 3심 준비 중이다.

“2심에서 패소한 후엔 재기를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갑자기 이렇게 큰 상을 받았다고 하니 희망을 찾을 수 있었어요. ‘새벽이 오기 전 어둠이 가장 어둡다’고 하는데, 새벽이 오겠냐는 희망도 없었거든요. 거기에 더해 작가로서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일이기에 그게 저에겐 더 의미가 있었죠.”

그에게 작가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백 작가는 “상대는 기업이고, 작가는 개인이기에 패소는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다고 말한다. “누구라도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소임을 다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 사력을 다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작권을 찾아오는 일은 기성 작가로서 선배가 후배를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백 작가는 말했다.

어느덧 16년 차 그림책 작가가 된 백 작가. 그는 어떤 작가로 남고 싶을까. “작품이 기억에 남는 게 가장 좋죠. 어린 시절 떠올렸을 때,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복한 추억이 밑거름, 자양분이 돼 준다고 생각해요. 마냥 행복했던 추억이. 그 추억의 일부로 제 책이 남아 있다면 그게 가장 기쁜 일이 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백 작가는 “‘백** 작가에게 「구름빵」을 돌려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청와대 국민청원이 진행 중”이라며 “5월3일(일)이면 마감이라서 더 많은 참여를 부탁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