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럴드의 게임’에서 제럴드와 제시 부부는 특별한 시간을 보내러 외딴 별장으로 떠난다. 제시의 기대와 달리 제럴드는 그에게 수갑을 채우고 근친상간 상황극을 요구한다. 그만하자는 제시의 말을 비웃던 그때, 갑자기 제럴드는 비아그라 부작용으로 사망한다. 도움을 청하던 중, 죽었던 남편이 일어난다. 제시 자신이 환영을 만들어낸 것이다. 자기 자신의 환영도 보인다. 환영들은 제시에게 말을 걸며 그녀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어릴 적 제시는 개기일식 때 아빠에게 성추행 당한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해 혼자 고통스럽게 감춰왔다. 강간은 아니었다며 애써 합리화했다. 그러나 제시는 여전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이답게 지내기만 하면 됐지만 그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왔던 것이다. 연쇄살인마 문라이트맨이 그녀 앞에 나타났지만, 잠시 헛것을 본 것이라며 부정한다. 그게 바로 그녀가 이제껏 살아온 방식이다. 공포를 회피하고, 두려움을 애써 무시해왔다.

영화는 남성 중심 사회가 가하는 폭력에 무기력해지는 여성과 그의 대처와 극복 과정을 그린다. 어린 시절의 가정 폭력, 그리고 남편의 정서적 폭력이 ‘수갑에 묶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여자’, 제시를 만들어낸 것이다. 수갑은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도 속박했다. 그녀에게 수갑은 아빠의 잘못을 알고 있음에도 묵인한 것, 남편과의 건전치 못한 관계에 무기력하게 대처한 것, 그리고 문라이트맨을 보고도 모른척한 자신이었다. 침묵, 안정감, 부정이라는 수갑이 그녀를 고통스럽게 했다.

그녀의 환영만이 그를 도왔다. 환영 덕에 고통스럽지만 수갑에서 손목을 빼냈다. 그후 그녀는 자신처럼 학대받는 아이들을 돕고, 외면했던 상처를 나누며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 개기일식을 배경으로 어린 시절의 자신과 마주해 내면의 화해도 한다. “우리는 태양을 볼 자격이 있어.”

문라이트맨이 잡혔다는 소식에 제시는 재판장으로 찾아간다. 그의 얼굴이 아버지와 남편의 얼굴로 보인다. 제시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한다. “내 기억보다 훨씬 작네요.” 회피하기만 했던 상처와 공포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공포를 직면한다는 것은 결국 극복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한 제시의 머리 위로 태양이 떠오르며 영화는 끝난다.

누가 그녀들에게 수갑을 채웠나. ̒국민일보 n번방 추적기'에 따르면 당시 기자들이 피해자 여성들에게 연락했을 때 대부분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누군가 알게 될까 두려워했다고 한다. 어쩌다 그들은 제럴드의 게임으로 내몰렸나. 우리를 억압하는 수갑에서 벗어나면 의지대로 살 수 있다. 회피는 정답이 될 수 없다.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부끄럽고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우리가 아닌 그들이다. 수갑에서 손을 빼내는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그래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오늘 하루도 트라우마에 자신을 가두는 나의 동료들, 수많은 제시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강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서로 도울거니까요.” -드라마 ‘스토브리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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