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모두 하나 되는 세상,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를 만나다
영화로 모두 하나 되는 세상,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를 만나다
  • 윤희원 기자
  • 승인 2020.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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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 김서영 기자 toki987@ewhain.net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
김서영 기자 toki987@ewhain.net

20일, 우리는 40번째 장애인의 날을 맞이한다. 그동안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만큼 편리하게 생활해야 한다는 취지인 ‘배리어프리’(Barrier-Free)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건축학 분야에서 시작된 이 운동을 문화 영역에까지 확대하는 이가 있다. 바로 김수정(과교·93년졸) 동문이다. 세상의 장벽을 허무는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 김수정 대표를 서울혁신파크 미래청에서 만났다.

“배리어프리는 모든 사람이 접근하기 쉽게끔 바꿔나가는 거잖아요. 영화에 접근이 어려운 사람들도 함께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든 게 배리어프리 영화죠.”

배리어프리 영화는 영화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영화와 다르다. 기존 영화에 화자와 대사, 음악 등 모든 소리를 알려주는 자막과, 화면을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화면해설(음성해설)을 더한다.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는 이처럼 배리어프리 영화를 제작하고, 정기적으로 서울배리어프리영화제를 개최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영화를 제작하고자 설립하게 됐죠.” 2010년 일본 사가현에서 열린 ‘사가 배리어프리영화제’ 첫 회에 참석한 김 대표는 그날을 계기로 대학원 선배인 이은경씨와 함께 배리어프리영화위원회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사가 영화제가 기존 장애인 영화제와는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비장애인도 함께 영화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화는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닌, 즐겁기 위해 관람하는 것이라 강조했다. 비장애인이 등장인물의 이름을 제대로 듣지 못했을 때, 자막을 통해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는 예시도 들었다. “무언가 하나 더해짐으로써 더욱 즐거운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자막이 붙었다고 해서 영화 내용이 아닌 자막에만 눈이 가면 실패했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철학을 전하기도 했다.

과학교육과를 졸업한 그가 교육이 아닌 영화의 길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김 대표는 학부생 시절, 지금은 사라진 종로 코아아트홀로 영화를 종종 보러 다녔다. 유년 시절부터 이어진 영화에 대한 사랑은 김 대표를 현재의 자리로 이끌었다. “4학년때는 랩실에서 지내기도 했어요.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기도 했죠. 그런데 영화가 더 재미있어서, 재밌는 것을 하기로 했어요.”

김 대표는 20년이 넘는 세월을 영화와 함께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설립 단계부터 함께한 김 대표는 당시 한국 첫 민간 시네마테크의 기틀을 만드는 사무국장으로 활동했다. 시네마디지털서울에서의 이력도 있다.

김 대표는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제작 과정에 영화감독을 섭외하기도 한다. “한국의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에는 사회복지사들이 참여했기에 영화인들의 시각과는 다를 수 있어요.” 김 대표는 영화 제작자의 참여가 영화 해설에 한 층 깊이를 더해준다고 말했다.

영화 ‘감쪽 같은 그녀’의 제작 일화를 떠올렸다. ‘바닷가 공원’이라 해설하고자 했던 위원회 측과는 달리 감독은 ‘정자가 있는 바닷가 공원’으로 수정할 것을 추천했다. 이후 장면에서 손녀와 할머니가 정자에서 대화하는 장면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이 제작 과정에 함께 참여해주면, 가만히 있었으면 몰랐을 감독의 연출 의도가 더해집니다.”

김 대표는 영화인들이 놓치는 부분들을 상기시켜 왔다. “이제까지 영화인들이 인지하지 못한 부분을 알려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취지에 동참하시는 분들이 함께한 거고요. 저희의 일은 기반을 다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원회를 설립해 현 자리에 서기까지, 모든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초기에는 월급 줄 돈이 없어 계속 함께하지 못한 친구들이 있었어요.” 김 대표는 현재까지 온 것이 온전히 위원회의 힘 때문은 아닌 것 같다며 겸손하게 답했다. “‘위 캔 두 댓!’(2008)이라는 영화가 흥행하게 돼 월급도 줄 수 있게 됐죠. 좋은 영화의 선한 영향력이라 생각해요.”

어떤 영화를 만드는 것이 가장 의미있을지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김 대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제작 과정을 묻자, 어렵게 만든 영화 몇 편이 있다고 했다. “영화 ‘위 캔 두 댓!’ 같은 경우는 ‘유열의 음악앨범’ 정지우 감독이 맡았는데, 녹음만 일주일을 했어요. 감독님이 중편을 찍는 것 같다고 하실 정도였죠.” 제작에 참여한 김성균 배우는 당시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어 시간을 쪼개 녹음하기도 했다. “일반인들도 캐스팅해 더빙 작업을 했어요. 힘들게 만들었지만, 기억에 남는 영화에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김 대표에게 이화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는 모든 일을 편견없이 해내는 힘을 본교에서 키울 수 있었다고 답했다. “이화인들은 무엇이든 스스로 해야 하잖아요. 무거운 것을 들거나, 기계를 고치거나. 통념상 남자의 일이라고 여겨지던 일들도 그냥 당연히 하는 것으로 여겼어요. 그런데 사회에 나오니, 남자와 여자의 일로 나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김 대표의 목표는 관객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극장을 만드는 것. 그는 “극장은 닫힌 공간이긴 하지만 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다른 사람이 놀랄 때 같이 놀랄 수 있는 곳”이라며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도 함께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영화에서 나오는 ‘쾅’ 소리에 사람들이 놀랄 때, 청각장애인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다. 자막이 없는 외국 영화를 보는 도중 사람들이 웃을 때, 따라 웃어야 할지 난처한 경우와 같은 감정이다. “함께 공감함으로써 즐거운 경험을 하게되고, 그 경험은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의 계기를 만들어주죠. 단순히 영화 산업의 면도 있지만, 일상에 어떤 색지를 더해줌으로써 삶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어요.”

김 대표는 비슷한 꿈을 꾸는 이화인에게 ‘스스로 관심을 두는 분야’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영화를 하는 것은, 사람과 사회를 관찰하고 그것에 궁금증을 두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뭘 만들고 싶은지, 뭘 쓰고 싶은지, 이런 욕망이 없으면 기계적으로 풀게 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