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선 자리에서 (조혜정 지음)

각자 선 자리에서 나를 찾아보자. 이 사회의 지성인이라 불리우는 대학생으로서 세상의 절반인 여성으로 그리고 또… 「나」로 규정지어진 자리에서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살펴보며 내가 선 자리를 분명히 해보자. 좬논문 끝에 붙은 참고서의 절반 넘어가 꼬부랑 글자인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

내 삶을 이론화하지 못하는 나는 식민지 지식인이다좭라고 말하던 조혜정 교수가 이제 「각자 선 자리에서」탈식민지시대의 지식인에 대해 말하고자 다시 말문을 열었다.

「바로 여기 교실에서」라는 부제로 발간됐던 1권이 교육현장을 통해 본 예비지식인들의 경험을 모아낸 글이었다면 2권은 다소 이론적이고 전체 지식인들의 삶을 반성적인 시각에서 생각해 본 글이다.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온 교수의 강의는 화려한 서양이론의 나열과 그들의 삶에 대한 아낌없는 찬사로 끝나기 마련이다.

화려한 그들의 언설에 탄복하면서도 우리들은 그 강의에서 각자의 삶은 알아서 찾아야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은 채 그들의 이론만을 탐독하기에 급급하다.

이 책에서는 바로 이런 우리들의 모습을 상대방의 규정에 자신을 맞춰가는 지식인의 삶, 즉 「타자화된 삶」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조선시대 중화사상에 물든 사대부이래 지식인들의 전형적인 삶에서 나타난다.

일제시대 식민지교육과 해방 후 서양과 미지의 신세계로 일컬어지던 미국지향적 지식은 이들의 삶을 또한 지배해왔다.

우리는 20세기 우리역사를 나라가 발전하고 다른 나라 못지않게 서구화된 근대화된 시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 시기를 식민화된 삶이 존재하는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 삶속에서 저자는 지식인의 피난민적 삶을 발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의 이론은 곧 서양이론가의 이론이요, 자신의 강의는 곧 서양이론가의 강의이다.

따라서 학생들의 질문은 교수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닌 서양이론가에게 답변되어질 것이므로 자신은 이론만을 되풀이하는 앵무새일뿐이다.

이처럼 타자화된 지식인은 겉돌수 밖에 없는 피난민의 언어를 가지고 피난민의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식민화된 피난민의 후예로 자라왔다면 우리는 어떠한 존재로 다시 커나가야 하는가? 저자는 좬나는 누구인가좭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우리에게 「대안적 근대성」즉 「탈식민지 시대」를 찾아가도록 한다.

그는 헐리우드 영화와 피자·콜라가 지배하는 우리의 삶과 주변을 둘러보는데서부터 자신을 찾아가는 작업을 시작하게 한다.

이대라는 간판이 게스라는 바지가 「나」를 규정해 주는 것의 전부였다면 이제 우리는 「나」를 새롭게 규정함으로써 이 땅의 건강한 「청년」이며 이땅 인간의 절반인 「여성」들의 새로운 공간으로의 탈출구를 찾게 된다.

대학생이라는 지성인 그리고 중산층인 나를 벗어나는 것은 이 사회의 중심을 자칫하면 일탈을 한다는 불안감을 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동굴속에만 갇혀 영원히 내게 주어진 시야를 덮어버릴 수 없지 않은가. 갑자기 나는 규정하고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다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할 때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몰라 방황을 할지도 모른다.

좬억압당하고 있는 주체가 타자화된 자신을 인식하기 시작하면 억압해온 중심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고 더이상 그 중심은 보편적인 나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인 주체가 될 뿐이다좭 탈식민지적 공간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식민지지식인의 옷벗기 첫단계로 저자는 먼저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가 타자화된 자신을 인식하기를 바란다.

일류대학의 교수가 일류의 서양이론을 강의한다해도 그 사람은 일류가 될 수 없다.

자신의 삶이 일류가 아닌 이상 그는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지식의 생산자로서 탈식민지 지식인의 옷을 벗지 못했기 때문이다.

탈식민지적 공간에서 자신의 옷을 하나씩 벗어나갈 수 있다면 그 「주변」의 자리에 서 있는 우리는 이 공간에 대해 어떠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까. 자리에 서 있는 우리는 이 공간에 대해 어떠한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이책에서 아직도 남자들만의 세계가 존재하는 이 사회에서 중심을 버리고 주변인으로서의 여성을 찾게되는 저자의 진솔한 고백을 듣게 된다.

이것은 중심으로만 향하여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다 곧 주변에서 주저앉고 마는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 주변은 우리가 있어서는 안될 곳이 아닌 바로 우리가 서서 우리의 삶을 창조해야 할 곳이 아닌가. 이제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없애고 주변에서 삶의 주인이 되어가는 「탈식민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본 자신의 작업을 「반성적 기운이 일고 있는 인류학계내의 새로운 실험적 작업의 연장선」이라고 책머리에 적고 있다.

지식인의 자기반성적인 말문을 새롭게 열어주는 이 책은 저자가 말한대로 자신의 경험을 배반하지 않은 그들과 우리로부터 「앎」을 시작하게 한다.

이제 주변에서 자신의 삶을 쓰기 시작한 우리. 각자 선 자리에서 나의 이야기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삶읽기를 시작해 보자.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확인과 각자 선자리에 대한 믿음, 그리고 새로운 자리매김은 탈식민지시대를 열어갈 새로운 지식인의 모습,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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