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 강의가 시행된 지 한 달이 넘었다. 황당하게만 느껴지던 비대면 만남도 하루하루 흘러 자연스레 일상으로 스며들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캠퍼스보다 혼자 보는 컴퓨터 화면이 익숙해진 요즘, 교수와 학생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달라진 이들의 일상을 직접 쓴 수기로 들어본다.

 

새로운 하루 | 김수연(사교·18)

처음엔 ‘이게 과연 가능할까?’ 싶었다. 한 학기 동안 학교에 가지 않고, 어떠한 대면 만남도 갖지 않은 채 수업을 들으며 공부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런 걱정을 지속할 여유도 없이 온라인 개강은 진행됐고, 약 한 달간의 경험을 통해 이미 나는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기로 한 듯하다. 코로나 19는 나의 하루에 많은 부분들을 변화시켰다.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에 가기 위해 나갈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닌, 노트북을 열고 사이버캠퍼스의 각 강의별 공지사항부터 확인한다. 직접 캠퍼스로 가지 않게 되니, 그동안 수업 상 편의를 위해 존재한다고 여겼던 사이버캠퍼스는 이제 진짜 ‘캠퍼스’가 됐다.

내가 수강하는 강의 중에는 이미 녹화된 동영상을 통해 학습하는 강의도 있고, Zoom과 행아웃과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수업하는 강의도 있고, 그 둘을 병행하는 수업도 있다. 이렇게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니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하면서 오는 상호작용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항상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온라인 수업들로부터 아무런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느끼기에 녹화된 동영상 강의는 직접 우리를 학교로 불러들이는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부지런함을 요구한다. 조금 솔직해지자면, 이전 학기까지 나는 그저 ‘학교에 가기 위해’ 일어났고, 강의실에 앉아 있는 나와 관계없이 강의는 흘러갔다. 하지만 이젠 ‘강의를 듣기 위해’ 일어나고, 이 재생되는 강의는 내가 듣지 않는다면 강의로서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물론 강의를 재생시켜놓고 듣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결국 언젠가 이 강의를 다시 재생시켜야 하는 것도 나인 것이다. 이러한 반복은 내게 이전보다 더 많은 부지런함과 의지를 요구하고 있다. 또, 실시간 온라인 강의는 나로 하여금 다른 친구들이 수업을 듣고 있는 방식에 집중하게 한다. 왠지 모르게 실시간 강의를 듣다 보면, 큰 화면으로 나타나는 교수님의 모습 못지않게 수업을 듣고 있는 다른 학생들을 관찰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다른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극도 받고, 나의 모습을 다시 점검하게 되는 것이다. 저번 학기까지는 크게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이다.

또 하나의 변화는 ‘공강 시간의 활용’이다. 학교로 오고 가는 통학시간의 소멸과 수업과 수업 사이 시간 활용의 자유는 나의 ‘일상’에 대한 능동성을 높였다. 어떻게 하면 내가 직접 나의 일상을 더욱 다채롭게 채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 것이다. 나는 언니와 함께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나뿐만이 아니다. SNS에서 친구들의 소식을 접하다보면 정말 나처럼 식물을 키우기 시작한 친구도 있고, 홈카페를 실현하는 친구도 있고, 뜨개질과 같은 취미를 시작하는 친구도 있다. 각자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일상을 꾸민다. 학교를 가지 않으면서 오히려 우리의 초점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 오게 된 재미있는 변화라고 생각한다.

이렇듯 우리는 많은 변화들을 겪고 있고, 나름의 적응 과정도 겪고 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이전의 방식들이 그립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위기가 지난 후 대학은 이제 완전히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이 열린 것, 더 다양한 가능성들이 제시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전의 풍경들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친구들이 어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이유는, 사람과 사람의 ‘직접 만남’에는 단순히 표면적인 텍스트나 영상으로는 전달될 수 없는 것들이 담길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실시간 온라인 강의는 어떻게 보면 내 모습을 가장 객관적으로 전달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내가 카메라와 오디오를 통해 전달되는 나의 모습에 어떠한 왜곡은 없을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나는 하루빨리 이 변화가 가지고 온 새로운 공간, 새로운 가능성들을 가지고서 우리가 직접 다시 얼굴을 마주보며 인사 나눌 수 있기를 소망한다.

 

불편하고도 편한 온라인 강의를 만나다 | 이예나(사교·19)

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여파로 한국에서도 대학들이 개강을 연기하고 온라인 강의를 실시한 데 이어 우리 학교는 주요대학 중 최초로 1학기 전면 온라인 강의를 실시했다. 4월쯤엔 개강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빗나간 한 학기 온라인 강의는 생각보다 더 많은 학생들의 불만을 야기했다. 온라인 강의를 실시한 지 한 달이 거의 다 돼가는 현재, 초반보다 많이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남아있는 문제들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문제점이 바로 사이버캠퍼스의 서버문제다. 사이버캠퍼스의 서버가 충분하지 않아 강의를 듣는 동안 자꾸 렉이 걸리고 진도율 반영이 제대로 안 되는 등의 불편함이 매우 컸다. 극단적으로 30분짜리 강의를 1시간이 넘도록 듣는 경우도 봤다.

학업에 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많다. 오프라인 수업이 아닌 온라인 수업이다 보니 집중이 잘 되지 않아 휴대폰을 하거나 딴 짓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강의 도중 이해가 안 되거나 놓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수업이 끝나고 쉽게 질문을 할 수 없으니 그냥 포기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사실 본인은 온라인 강의에 크게 영향을 받는 수업이 없기에 만족하고 있었지만 조형예술대학(조예대)이나 음악대학, 엘텍공과대학같이 직접 학교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학과는 타격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조예대 학생들은 종강 후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하는데 질감이나 느낌을 실제로 느껴보지 못해 힘들고 페인트칠 같은 과제를 집에서 하는 것이 상당히 불편하다고 한다. 사범대학 학생들 중에서도 교생학기를 맞은 학생들의 실습 일정이 꼬이는 등 여러 문제점이 발생하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개인 커리나 학업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온라인 강의로 수업시간은 편해졌지만 수업에 대한 부담은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전 수업은 일단 제 시간에 강의실에 가 있으면 출석체크나 공지사항 확인, 수업듣기 등이 쉽게 가능했지만 온라인 강의는 모든 걸 직접 사이버캠퍼스에서 찾아야 한다. 어떤 수업들은 출석 과제를 매 시간마다 내야해 학생들의 부담이 커졌다. 반대로 어떤 수업은 출석을 아예 확인하지 않고 강의 녹음 ppt를 많이 올려주지 않아 학생들이 불만이 큰 경우도 있다. 이외에도 시험 공정성 문제, 지방 학생들의 자취방 계약 문제가 있다. 집에 와이파이가 없거나 데이터를 많이 쓰기 힘든 학생들에겐 매번 온라인강의를 듣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온라인 강의가 불편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강의라는 특성 상 학생들은 실시간 강의를 제외하면 원하는 시간에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졸리고 피곤한 아침에 학교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집중이 잘 될 때 공부할 수 있는 것이다. 또, 학교에 등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통학시간을 절약할 수 있고 그 시간을 활용해 다른 활동을 하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이렇게 온라인 강의가 확정되고 다들 일상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대표적으로 본인도 그렇다. 2월에 본가에서 서울로 올라왔지만 한 학기 온라인 강의의 여파로 계속 하숙집에 돈을 내며 서울 생활을 하고 있다. 학교생활이나 친구들이 그립고 그들을 못 만난다는 것이 아쉽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전 세계적 재난이니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거나 집에서 운동을 하며 남은 생활을 이화인답게 현명하게 잘 대처할 것이라 생각한다.

 

얼굴을 마주하는 수업이 그리운 이유 | 김유정(철학·19)

태어나서 처음 겪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낯설다. 언젠가는 이렇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미래가 훌쩍 내 앞으로 다가온 기분이다. 한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온라인 수업은 생각보다 복잡하지는 않았다. 편한 점도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서 이전의 수업 방식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수업이 끝난 후 수업 내용에 대해 동기들과 토론 하면서 집에 가는 것, 교양에서 친해진 사람과 밥도 먹고 공부도 했던 작년이 그립다.

강의실 교수님 자리에서는 학생들이 한눈에 보인다. 나는 이 강의실 구조가 판옵티콘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판옵티콘은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의 형태다. 감시자들이 있건 없건 죄수들이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 스스로를 감시하게 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교수님은 우리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나는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딴짓할 수 없었다. 그런데 판옵티콘 같았던 강의실을 벗어나 온라인으로 수업을 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지 않다.

그동안은 판옵티콘 같은 강의실에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열심히 수업을 듣고 교수님께 인사를 하고 강의실을 나오면 그날의 임무는 끝이었다. 하지만 온라인 강의를 들으니 강의를 듣기 위해 일어나는 것, 교수님 말씀을 머릿속에 새겨넣는 것, 뭐 하나 의지를 요하지 않는 일이 없다. 대부분의 강의가 밀려 중간고사 공부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 진도표를 만들어 수강한 강의를 표시해보니 그 현황이 너무나도 처참해 이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성실한 학생인 줄 알았던 내가 그저 환경에 휘둘리는 학생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다. ‘환경 요소에 행동이 통제되는 내게 자유의지라는 것이 있긴 한걸까’ 이런 회의적인 생각도 했다. 누가 보나 보지 않으나 충실하게 수업을 듣고 몸가짐을 정돈하는 신독의 자세를 이번 기회에 차차 배워나가야할 것 같다.

수업에 임하는 태도 중 몸가짐에 너무 신경쓰지 않게 된 것도 다소 아쉬운 부분 중 하나다. 일전에 교수님이 말하는 ‘구루프’ 를 말고 있으면 안 되는 이유를 (커뮤니티 였는지 친구였는지 기억은 안 난다.) 들었던 적이 있다. 대학 수업은 교수님이 예의를 갖춰 학생들 앞에서 십 수년간 공부한 것을 전하는 공적인 자리니 학생들도 예의를 갖췄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야기를 접한 후, 학교에 수업을 들으러 갈 때는 깨끗한 옷을 입고 머리도 단정하게 빗은 뒤 수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지금은 수업 시작 10분 전에 후다닥 일어나 머리를 감기는커녕 잠옷만 겨우 갈아입고 강의를 듣는다. 교수님을 존중하고자 노력하던 태도를 찾아 볼 수 없게 된 것이 아쉬웠다.

전공 수업을 듣는 중에 한 교수님께서는 온라인 수업을 하면 “당신과 나 사이에 지식은 쌓이지만, 시간은 쌓이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셨다. 교과 내용이 아니라 정확한 어구를 필기해놓지 않아 슬프다. 시간이 쌓이지 않는 관계는 친밀하지 못하다는 요지였던 것 같다. 내가 느끼던 온라인 강의의 단점을 한 문장으로 정리해주셨다. 좋아하는 교수님 수업을 직접 듣지 못해 아쉽고 안타깝다. 영상으로만 뵙는 건 성에 안 찼는데 왜 그런가 했더니 저런 이유였던 것 같다. 어서 한 학기가 지나고 교수님과 동기들을 직접 만나는 다음 학기가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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