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기정 교수

고소·고발이 넘치는 세상이다. 툭하면 법으로 해결하자고 한다. 법이 난무하는 이 시점에서 나는 19세기 프랑스의 ‘법의 소설가’ 발자크를 소환해본다. 세계문학사에서 발자크만큼 법 관련 소설을 많이 쓴 작가는 없다. 그는 전문적인 법 지식을 바탕으로 19세기 법 정의 실제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발자크에게 법 지식이 풍부했다면, 그것은 젊은 시절의 경험 덕분이다. 그는 법과대학을 다녔고, 동시에 공증인과 소송대리인 사무실에서 실무를 익혔다. 말하자면 인턴을 한 것이다.

공증인이나 소송대리인은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이지만, 19세기 당시 귀족이 아닌 청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직업이었다. 그때도 시민들의 꿈은 의사 아니면 법관이었으니 말이다. 공증인은 돈과 관련된 모든 종류의 법적인 문제를 담당하는 일종의 법무사 같은 것이고, 소송대리인의 업무는 지금의 변호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발자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직접 소송을 경험하기도 했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앉았던 그는 고소를 당하기도 했고, 며칠간 감옥에 구금된 적도 있다.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로 저작권을 요구하며 법적 투쟁을 벌이기도 했고, 문학 관련 법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작가 발자크에게 고갈되지 않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했던 것이다. 약 90편의 소설이 담긴 「인간극」 총서에는 법과 관련된 인물이 58명에 달한다. 민사·형사 사건도 수두룩하다.

그렇다면 법에 대한 발자크의 생각은 무엇이었을까? 구체적인 두 사건을 통해 법과 법조인에 대한 발자크의 생각을 읽어보자.

「골동품진열실」이라는 소설엔 서명위조 혐의를 받는 귀족 청년에 대한 고소사건이 등장한다. 몰락한 귀족 가문의 젊은 백작은 애인과 이탈리아로 도피하기 위해 은행가의 서명을 위조해 어음을 발행한 혐의로 체포 된다. 백작 가문에 원한을 품고 복수의 기회를 노리던 은행가가 기쁜 마음으로 그를 고소했기 때문이다. 혁명

이후 몰락한 귀족들의 권위는 이미 땅에 떨어졌지만, 그래도 대귀족 가문의 후계자가 감옥에 간다는 것은 명예를 최고로 중시하는 귀족에게 엄청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가문의 명예를 구하고자 동분서주하는 충실한 집사 덕분에 백작은 무혐의로 풀려난다. 왕까지 개입하여 사건을 무마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건을 담당한 예심판사 카뮈조는 귀족들의 후원으로 출세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백작의 무혐의를 뒷받침할 법적 근거를 열심히 찾아낸다. 예심판사는 수사권과 기소결정권을 가진, 우리나라의 검사에 해당하는 법관이다. 박봉의 지방 예심판사로 평생을 바칠 것인가, 아니면 파리의 법관으로 출세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그는 망설이지 않는다. 사건은 혐의없음으로 결정됐다. 백작은 석방됐고 불명예의 치욕은 면했다. 하지만 백작에게는 여전히 많은 빚이 남아 있었다. 빚을 갚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은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결국 백작은 자신을 의도적으로 함정에 빠뜨려 감옥으로 보냈던 비열한 은행가의 조카와 결혼하게 된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발자크가 예리하게 꼬집은 웃지 못할 역사의 아이러니다.

발자크 소설에는 사건담당 판사가 교체되는 사례도 있다. 「성년후견」이라는 소설에는 아내가 남편에 대한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한 사례가 담겨있다. 복고왕정 당시의 한 후작은 조상이 신교도 집안의 토지를 몰수하여 재산을 늘린 것을 알고는, 그 후손들에게 약탈했던 재산을 돌려주고자 한다. 그러나 호화로운 생활을 하느라 빚이 많은 그의 아내는 남편을 미친사람으로 몰아 그의 재산을 빼앗고자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한다. 그리고는 청원이 받아들여지도록 담당 판사를 회유하려 한다. 하지만 곧은 성품의 포피노 판사는 후작부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부인의 청원을 기각하는 조서를 쓴다. 그러나 조서를 제출하려는 순간, 법무부 장관의 개입으로 포피노는 교체된다. 후작부인의 집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것이 교체 이유다. 물론 그는 후작부인 집에서 식사는커녕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그의 후임 판사는 앞서 언급한 「골동품진 열실」에 등장한 기회주의자 카뮈조다. 이렇듯 공정한 판사는 정치 판사로 교체된다. 소설은 여기서 끝나고 책을 덮는 독자들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몇 년 후에 발표된 「창녀들의 비참과 영광」에서 후작부인의 청원이 기각된 것을 알게 된 독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정의는 죽지 않았던 것이다.

두 개의 사례에서 보듯 발자크가 법에 대해 비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아무리 사소한 사건도 정치적이게 된다” 는 한 법관의 자조 섞인 한탄은 법 집행에 대한 발자크의 불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발자크는 법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뿐, 법의 공정성과 정의를 믿는다. 인간 사회가 그나마 살만하다면 그것은 법이라는 장치가 있기 때문이요, 법관의 양심과 직업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200년 전 19세기의 프랑스와 21세기의 대한민국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발자크를 읽으면서 늘 드는 생각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역사에서 교훈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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