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이화인들의 ‘집’풍경
코로나19가 바꿔놓은 이화인들의 ‘집’풍경
  • 천혜인 기자
  • 승인 2020.0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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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인 코로나19의 여파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트위터 ‘집콕 챌린지’, 인스타 ‘집콕 중’, 휴대폰으로 공연을 하는 ‘폰서트’, ‘달고나 커피’ 등 생전 보지 못한 이색 집 문화가 등장했다. 이화에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의미 있는 방‘콕’ 생활을 보내고 있는 이화인들이 있다.

그래픽=이화원 기자 xnsxns200@ewhain.net
그래픽=이화원 기자 xnsxns200@ewhain.net

영상으로 담아낸 ‘1000번 계란후라이’의 순간

“아무리 심심해도 다시는 안 하려고요.”

사람들이 ‘달고나 커피’ 열풍에 커피와 설탕을 젓고 있을 때, 남들과 다르게 계란 물을 1000번 저은 이화인이 있다. 남사빈(의예·19)씨는 ‘1000번 계란후라이'를 만드는 영상을 개인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남씨는 “SNS에서 1000번 저어 만든 계란후라이가 유행하는 것을 보고 시도해봤다”며 “전동 거품기가 없어 직접 거품을 쳤는데, 1000번이 아니라 만 번은 저은 것 같다”고 말했다.

‘1000번 계란후라이’는 힘들었던 경험에 그치지 않고 영상 제작으로 이어졌다. 하이퍼 랩스 기능(실제보다 더 빠른 움직임을 담는 촬영 모드)을 이용한 영상은 짧은 시간 내에도 콘텐츠의 의도와 재미를 모두 얻을 수 있었다. 남씨는 “요즘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니 SNS에 영상을 올려 소통하고 싶다는 마음에 영상을 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남씨가 올린 ‘1000번 계란후라이’ 브이로그의 반응은 뜨거웠다. “영상에 나오는 자막이 실제 말투 같아서 재밌다”, “다음 영상을 기대한다”는 댓글들이 달렸다. 다수를 차지한 “나도 해보려고 하는데, 많이 힘들어?”라는 질문에 그는 “집에 전동 거품기가 있으면 도전해 봐”란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현재 남씨는 탕후루, 찹쌀떡을 만드는 영상 촬영을 완료한 상태다. 남씨의 SNS에는 그의 취미를 엿볼 수 있는 ‘글라스데코’(특수 물감으로 만드는 스티커) 영상도 있다. 남씨는 “앞으로도 간편하고 마음에 드는 레시피가 있다면 요리 영상을 계속 만들어보고 싶다”며 “요리가 아닌 다른 취미생활 브이로그도 찍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작은 세상이 가져다주는 소소(小小)하지만 확실한 행복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조각들에 막막했지만, 완성본을 보니 더 애착이 가고 뿌듯해요.”

김나경(심리·16)씨는 집안에 머무르는 동안 혼자 부엌을 시공했다. 바닥, 서랍 심지어 부엌에 놓일 토스터기부터 주방 도구 하나까지 김씨의 손이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이 모든 것은 김씨의 세심한 손끝에서 이뤄졌다. 10cm 남짓한 김씨만의 부엌은 완공까지 스테이크 두 접시, 컵, 바게트 그리고 화분만을 남겨둔 상태다.

평소 미니어처에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1월 중순 본가에 내려와 미니어처 일일 클래스를 수강했다. ‘하루만 배우고 그만두기엔 아쉽다’라고 생각하던 찰나, 코로나19로 인해 개강이 미뤄져 ‘혼자서 미니어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입문용 키트를 구매했다.

미니어처 제작은 손재주가 좋지 않은 김씨가 즐기기에도 무리 없는 활동이었다. 하지만 크기가 매우 작고 비례와 균형을 맞추기가 힘들어 시간이 오래 걸렸다. 김씨는 “처음엔 간단해 보여서 입문용 말고 더 복잡해 보이는 것을 살까 고민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 입문용으로 산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말했다.

김씨는 미니어처 만들기의 장점으로 실내에서 시간 보내기 좋으며 공간 차지도 적다는 점을 꼽았다. 김씨는 ”만들다 보면 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간다”며 “결과물이 있기에 성취감도 있고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고 말했다.

김씨는 미니어처에 관심이 많고 처음 시작하려는 재학생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처음에는 꼭 입문용을 구매하세요. 팁을 하나 더 드리자면 트위저(크기가 작은 물질을 집을 때 사용하는 집게)가 있으면 좋아요. 트위저 없이는 손잡이 모양으로 구부린 0.8cm 철사를 손으로 집기 매우 힘들답니다.”

 

우연을 기회로 만들어준 아기고양이와의 추억

“칩거 생활 중 급하게 시작했지만, ◆B급 감성을 가장 잘 풀어낸 블로그가 되고 싶어요.”

이지현(작곡·19)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아르바이트 하던 곳에서 무급휴가를 받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씨는 강제 ‘집순이’ 생활의 지루함을 달래고자 블로그를 시작했다.

블로그의 한 게시물이 이틀 만에 네이버 메인에 소개돼 방문자 4만 명을 기록하기도 했다.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와의 인연을 담은 글이었다.

이씨는 작년 여름 아파트 화단에서 무게 385g의 길고양이를 발견했다. 계절학기를 다니고 있었던 이씨는 계절학기를 취소하고 동물 병원을 오가며 고양이를 돌봤다. 이씨의 노력 끝에 발견 당시 저혈당 쇼크를 앓으며 눈조차 뜨지 못했던 고양이가 2주 만에 눈을 떴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양이는 현재 이씨의 동네 주민에게 입양돼 건강히 살고 있다.

이씨의 특별한 추억은 불과 몇 시간 되지않아 네이버 ‘동물 공감 판’ 메인에 선정됐다. 그 후로도 이씨의 글이 상위권에 노출되면서 강남 펍(pub), 홍대 앞 카페, 뮤지컬 공연 등 다양한 곳에서 협찬이 들어왔다.

이씨가 블로그 계정을 만든 건 2019년 12월이었다. 사진을 잘 찍어 아이돌 홈 마스터(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등을 위해 만든 홈페이지의 운영자) 경험이 있었던 이씨는 맛집 리뷰 포스팅을 하면 유명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블로그 ‘서초구불주먹들_서문파’를 만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블로그는 방치됐고 코로나19로 칩거 생활을 하던 이씨가 ‘새로 만든 체크카드 리뷰’ 글을 게시하며 다시 시작됐다. 그렇게 잊혀가던 블로그가 4개월 만에 활기를 되찾았고, 길고양이 게시물로 더 큰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현재 이씨의 블로그에는 ▲길고양이 구조 ▲맛집 리뷰 ▲입시·수능 후기 등 다양한 주제의 글들이 올라온다. 이씨는 블로그의 새로운 콘텐츠로 2세대 아이돌 팬픽(팬이 직접 쓰는 소설)과 노래를 리뷰할 계획 중에 있다. 이씨는 “옛날 감성이 다시 유행하는 것 같다”며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란 주제로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고 싶어’와 같은 옛날 대중가요의 가사 분석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B급 감성:감동을 주기보다 황당함, 재미, 호기심을 유발해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트렌드를 일컬음.

 

고등학생의 길잡이가 되어줄 ‘전공생활기록부’

“최소한의 정보로 점수만 맞춘 학과에 입학한다면 대학 생활이 정말 힘들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조은별(초교·20)씨는 대학 진학을 고민하는 사람, 대학생의 전공 생활을 궁금해하는 사람을 위한 카페를 개설했다. 고교 시절 정보가 부족해 전공선택에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카페 ‘전공생활기록부’가 바로 그곳이다.

코로나19로 혼자있는 시간이 늘어난 조씨는 고등학생 때부터 구상해온 ‘전공생활기록부’ 카페를 만들었다. 개강이 연기된 3월에는 멘토를 섭외하며 본격적으로 카페 운영에 박차를 가했다.

‘전공생활기록부’는 크게 3가지 카테고리 ▲소란소란 ▲전공멘토 ▲대학생활로 나뉜다. 소란소란 게시판에서는 각자의 전공, 카페에 바라는 점, 함께 해보고 싶은 도전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전공멘토 게시판에는 시간표, 전공 내용을 담은 글이 게시된다. 한 달에 한 번 20학번 학생들이 전공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는 ‘새내기록’ 카테고리도 있다. 대학생활 게시판에는 장학금 정보,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차이 등을 담은 정보성 글이 있다.

전공멘토 게시판은 그가 던지는 질문에 멘토가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조씨는 “멘토들이 정성스레 적어준 글을 읽고 댓글을 달 수 있다는 것이 뿌듯하고 신난다”며 “멘토들의 글을 읽으면서 자신과 맞는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카페를 운영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 카페 덕분에 자신의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카페에 글 쓰는 게 재밌고 중독성 있어서 자꾸 찾아오게 된다’는 등 도움을 받은 학생들이 생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말 좋은 취지의 카페인 것 같다’, ‘함께하고 싶다’며 먼저 연락을 주는 멘토들도 있다. 그럴 때마다 조씨는 벅차오르는 뿌듯함을 느낀다.

조씨가 꿈꾸는 ‘전공생활기록부’의 최종목표는 ‘전공을 고민하는 모든 학생이 가입해 활발하게 정보를 묻고 답하는 곳’이다. 후에는 오프라인 행사도 열고 멘토들의 글을 엮은 책을 만들어 멘티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소망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