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임영현 기자 dladudgus99@ewhain.net

흔히 네트워킹 모임이라고 하면 왁자지껄한 술집에서 정보를 얻기 위해 웃기지도 않은 농담에 웃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하기 쉽다. 어느새 ‘네트워킹’은 하기 싫지만,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것으로 자리 잡혔다.

“이화여대는 네트워킹이 약해.” 이 말 역시 이화인이라면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다.

그러나 최근 이화 내에서는 이 두 가지 통념을 깨부수는 ‘오카방 네트워킹’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오카방은 카카오톡 내 서비스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의 줄임말이다. 이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은 전화번호나 메신저 ID 없이도 채팅방 링크로 상대방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현재 ▲전공 ▲연계전공 ▲생년 ▲지역 ▲고등학교 ▲취미 ▲MBTI ▲네트워킹 총 8개 영역으로 나뉘어 이화인들을 이어주는 오카방들이 생성됐다. 그중 가장 활발한 3개의 오카방을 취재했다.

 

서로 밀고 끌어주는 이화 스타트업계 오카방

스타트업 오카방은 오카방들 중 오프라인 정기모임(정모)의 첫 시작을 알렸다. 3차 모임에서는 카페를 대관해 약 60명의 인원과 함께 정모를 진행했다. 관심 직무 직렬 사람들끼리 모이기도 하고, 후배들에게 자유질문 시간을 주는 등 코너를 직접 기획해 여러 방식으로 정보를 공유했다.

이러한 정보공유는 오카방내에서도 역시 활발하게 이뤄졌다. 공은빈(경영·17)씨는 “스타트업계 인턴 당시 사수에게 하지 못했던 질문들을 오카방 내에서 묻고 답을 얻은 적 있다”고 했다.

스타트업 오카방 내에서는 서로 누구인지 전혀 알지 못 하도록 닉네임을 설정하는 것이 원칙이다. 익명성을 이용해 서로에게 질문은 물론 이직 상담을 하기도 한다. 임준이(법학·14년졸)씨는 “익명이라는 점이 오카방 내에서 상하 관계없이 조언을 구하고 답하는 시스템을 정착하게 한 것 같다”고 했다.

정보공유는 스타트업계에서 특히 중요하다. 스타트업계의 역사가 짧은 만큼 정보가 많지 않고, 대중들에게 쉽게 공개돼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안현주(경제·12년졸)씨는 “스타트업계는 정보 싸움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오카방을 통해 후배들이 업계에 수월하게 진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만, 오카방 내에서 나눴던 정보는 축적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이들은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이트 슬랙(startup-ewha.slack)을 구축했다. 오카방에 들어오기 전 거쳤던 이화인 인증 절차는 이화인 아이디를 통해 자동으로 들어올 수 있는 형식으로 바꿨다.

끝으로 김다혜(시디·18년졸)씨는 “이 방에서 팀을 꾸려 창업을 같이 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심리학과를 새롭게 이어주는 인연의 끈, 심리학과 오카방

신입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전, 자주 받는 조언은 무엇일까. 인터넷에서는 ‘과 단체 카톡방(단톡방)에서 실수하지 말라’는 조언이 주를 이룬다. 이렇듯 대학생들에게 과 단톡방은 서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창구로 인식되지 않는다.

심리학과 오카방을 만든 박수영(심리·18)씨는 “학과 내 학번마다 단톡방이 있지만 거의 공지방으로 활용된다”며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8일 기준 심리학과 단톡방 내에는 138명이 있다. 15학번 이상의 학생들은 약 40명이다. 한상희(심리·18)씨는 “선배들이 인턴 관련해서 연락을 주는 등 오카방 내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선배들의 도움은 오프라인 모임으로도 이어졌다. 졸업해 각기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선배들은 후배들을 위해 오프라인 모임을 개최했다. 박씨는 “삼성 SDS에 재직 중인 선배가 회사로 초대해줬다”며 “뜻깊은 시간이었고 같이 간 친구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며 좋아했다”고 말했다.

오카방은 복수 전공을 하는 학생들에게도 해당 학과생들을 만날 기회를 줬다. 심리학과의 경우, 대부분의 강의가 팀플 없이 진행돼 복수 전공하는 학생들은 학과 내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 쉽지 않았다. 이 문제점은 오카방을 통해 해결되고 있다. 한씨는 “오카방으로 심리학과 복수 전공 학생들과 처음 만났고 지금은 친해졌다”고 했다.

 

그때 그 추억 공유하는 동갑내기 93년생들의 오카방

나이를 묻는 게 실례인 시대가 왔다. 하지만 같은 나이라는 것이 밝혀졌을 때, 서로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특정 나이대 이화인들의 추억이 돼버린 ‘이화사랑김밥’처럼 말이다.

같은 93년생 이화인이라는 이유로 오카방에 들어와 있는 인원은 8일 기준 132명이다. 이들 중 첫 번째 모임과 송년회 모두 참석한 김동영(전자전기·18년졸), 김정민(국문·17년졸), 정은아(사학·15)를 만났다. 이들은 인터뷰 중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오래된 친구들끼리의 만남을 보는 듯했다.

이토록 빨리 친해진 비결을 묻자 이들은 “나이가 같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김동영씨는 “오카방의 공식적인 모임은 2번이었지만 비공식적인 모임까지 합하면 수도 없이 많다”고 했다. 정씨는 “93년생이기에 가지는 고민은 나이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 쉽지 않다”며 “93오카방에서 고민을 나눌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그들은 같은 닭띠라는 공통점을 문구로 만들어 티셔츠를 제작하기도 했다. 이화의 문구 “Where change begins”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옛 속담을 유쾌하게 풍자해 “Where change begins, When hens cry”라는 문구를 새겨 송년회 단체 티셔츠로 공동구매했다.

김정민씨는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화인이라는 정체성이 흐려질 때쯤 단톡방에 들어오게 됐다”며 “동갑내기 친구들과 그때 그 시절 학교 이야기를 하며 ‘아, 나는 역시 이화 DNA가 있네’라고 깨달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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