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논의의 제문제들을 분석한다 ㅡ <2> 기호·여성 그리고 미 우리를 둘러싼 미에 대한 기호 해체시킬 수 있어야 "착취의 구조보다 전체주의적인 조절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의 주도권 아래 모든 가치가 교환 기호의 가치로 이행해간다.

" 장 보드리야르 (1929~) 1.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질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규정되는가 하는 질문은 아름다움에 대한 지식사회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아름다움이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방식 속에 들어있는 이데올로기를 포골함으로써 우리에게 해방의 길을 연다.

연못에 비친 자기자신의 모습에 반해 자기자신과 사랑에 빠졌다는 나르시스신화는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그런데 쇼윈도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훔쳐보는 것은 어떠한가? 혹시 그 때 당신이 본 얼굴이 누군가와 비교된 자기자신인 적은 없는가? 도대체 아름다운이란 무엇인가? 특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에게 꼬리처럼 따라다니는 이데올로기 『여자는 아름다워야 한다』속에 나오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우선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은 하우크(Haug)의 말대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규정되는가 하는가 하는 것이다.

어떻게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두 질문의 차이는 명백하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와 같이 지시대상 혹은 본질을 찾는 질문은 현실적으로 우리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 속에 들어있는 이데올로기를 진리로 드러내면서 이데올로기를 은폐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규정되는가 하는 질문은 아름다움에 대한 지식사회학적 점근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아름다움이 사회적으로 규정되는 방식 속에 들어있는 이데올로기를 폭로함으로써 우리에게 해방의 길을 연다.

2. 미 자체와 미에 대한 관념 상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차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 차이들을 만들어내는 데 공헌하는 것이 바로 기호화이다.

소쉬르의 언어전통에 따르면 한 기표(단어)의 의미는 특정한 대상의 본질적 속성 때문이 아니라 한 기표와 다른 기표 사이의 차이에 의해 생겨난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표현의 의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표현과 다른 표현들 사이의 차이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의미가 만들어지는 이 방식, 혹은 의미가 분화되는 방식을 데리다는 차연(Differance)이라 불렀다.

이와 같은 언어이론을 빌려 현대사회에서 미가 규정되는 방식을 분석한 사람이 바로 하우크이다.

그는 루카치의 범주를 패로디화한 보편, 개별, 특수의 범주를 설정하며 특수범주를 미적 범주로 파악한다.

원래 칸트의 범주개념이 그런 것처럼 미적 범주도 「미 자체」가 아니라 「미에 대한 관념」과 관계한다.

물론 칸트의 물자체가 그런 것처럼 미 자체도 알려지지 않는다.

알려지는 것. 그럼으로써 의미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규정된 미, 즉 미에 대한 현실적인 관념들 뿐이다.

여기에서 「아름다움 자체」란 개념은 쉽게 제거된다.

이것은 중요하다.

이것은 미의 상대성을 선취할 수 있게 하며 그럼으로써 유행을 산출하는 근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현대 소비사회에서 아름다움과 함께 따라다니는 말이 개성연출이다.

미, 특히 세련된 여성의 미는 개성표현을 함축한다.

그런데 이 개성표현이 지향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과소비이다.

필요소비와 대립되는 개념인 과소비는 과소비를 필요소비로 전환시키기 위해 사용가치를 상대화시키는 전략을 취한다.

상대화를 촉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차이들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 차이들을 만들어대는 데 공헌하는 것이 바로 기호화이다.

사실 무엇이, 누군가가 아름답다고 말해질 때 그것은 타인들과의 작은 차이에서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지 실제로 그것에 대응되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추구되는 「나만의 아름다움」을 위해 개인이 하는 일이란 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대부분 다른 사람(세대 혹은 계층)과 상이한 분위기를 즐기는 일이다.

종업원이 문밖에 나와 손님의 나이, 차림새를 보고 2층으로 올려보낼 것인지 3층으로 올려보낼 것인지, 아니면 출입금지를 시킬 것인지를 결정한다는 신촌의 어느 록 카페가 성업을 이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우리의 신세대가 차이의 기호에 익숙해 있으며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작은 차이가 큰 기쁨을 만들어낸다』는 표현은 『작은 차이가 나만의 세계, 나만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로 해석해도 그리 오해될 것이 없다.

물론 여기에서 작은 차이란 남과의 차이이다.

개성적 미란 이 남과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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