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민족의 성공은 지친 현대인들의 간편한 첫 입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했다.”

2년째 자취 중인 친구와 나는 ‘배민맛’(배달앱 ‘배달의 민족(배민)’과 맛의 합성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문장을 탄생시켰다. 한 SNS에서 화두된 ‘배민맛’의 요소는 이러하다. 음식을 감싼 비닐을 비닐 전용 칼로 쭉 찢어야 하고, 그 음식을 다 먹은 뒤에는 기대보다 맛있지 않다는 실망감을 느껴야 하며, 이제 배달음식 끊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배민맛’의 핵심요소가 있다. 바로 혼자 먹을 때 처절히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 배고픔에 허덕이는데 그럴싸한 음식을 만들어낼 기운은 없을 때, 우리는 배달앱을 켠다. 간편한 첫 입에 대한 갈망이 혼자 사는 Z세대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고백하자면, 그 ‘배민맛’을 즐기기도 했다. 한창 눈썹 휘날리게 바쁠 때, 몸과 마음이 지쳐 누군가와 약속을 잡을 여유도 체력도 없을 때, 넷플릭스와 단둘이 남이 차려준 밥을 먹는 것만큼 편안한 식사가 없다. 그 단출한 식사를 기대하며 집으로 향하는 길에 배달앱을 켠다. 혹은 침대에 늘어져 메뉴를 뒤적 거린다. 배달음식을 기다리며 넷플릭스에서 무엇을 볼지 심사숙고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배달을 받아 허겁지겁 비닐을 찢고 음식을 먹으며 화면과 마주한다. 배는 생각보다 금방 차오르고 맛은 상상만큼 탁월하지 않다. 애매하게 남은 음식을 어떻게 처리할까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일단 지친 몸을 눕힌다. 잠시 뒤 깨어나 속이 더부룩함을 느끼며 괜히 먹었다는 생각을 한다. 핸드폰에서 배달앱을 과감히 지운다. 찰나의 쾌락 끝에는 후회와 아우성치는 위가 남는다. 

바쁜 자취생 Z세대라면 공감할 루틴이다. 시험기간에 친구와 먹는 배달음식은 맛있는데 왜 홀로 먹으면 ‘배민맛’이 나는지 모를 일이다. Z세대는 혼자 밥 먹는 것에 익숙하다는데 그렇다고 ‘혼밥’이 더 맛있지는 않다. 간편하지만 때때로 공허하다. 배달음식의 비싼 가격은 대학생의 코 묻은 돈을 가져가고 자극적인 맛은 위장을 찌른다. 넷플릭스 친구는 언제나 유쾌하지만 나에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는다. 날 때부터 디지털 세계에 접속해왔던 ‘디지털 네이티브’라고 해도, 딱딱한 기계보다 사람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이 루틴을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이유는 숨 가쁘게 바빴기 때문이다. 특별한 목적지는 없으나 일단 달리고 봐야 했다. 굴러떨어지는 눈덩이를 피하듯 말이다. 이 일을 해내면 다른 일들이 쏟아졌다. 청춘이라면 무릎이 깨져도 앞으로 달려 나가야 한다고 어른들은 말했다. 아무도 멈추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기에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시간은 잠자는 시간뿐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와 머리를 맞대고 메뉴를 고민하거나 정성이 담긴 식사를 준비할 시간에 잠을 보충하고 싶었다. 그런 우리에게 배달음식과 넷플릭스는 거부할 수 없는 세트 메뉴다. 귀찮은 풍요 대신 편리한 고독을 택하게 만든다.

그렇게 허덕이던 삶이 무상하게 갑자기 일상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다. 시험, 팀 프로젝트, 대외활동, 일에 짓눌렸을 때 부르짖었던 휴식이 낯설기만 하다. 바이러스가 사람 사이의 거리를 넓히고 평범한 일상을 파괴한 지금, 자취하는 대학생은 예상치 못한 나태와 여유 속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이맘때면 슬슬 중간고사와 과제에 치여 건강에 무신경해지는 시기인데 그 어느 때보다 건강관리가 1순위이다. 야심차게 지운 배달앱은 더 이상 갈망을 일으키지 못한다. 대신 사람과 매개체 없이 연결되고 싶은 갈망이 커져간다. 만나서 도란도란 밥을 먹는 것, 강의실에 딱 붙어 앉아 수업을 듣는 것, 채플에 지각해 대강당 계단을 뛰어오르는 것, 영화관에서 떠드는 옆 사람을 째려보는 것. 모두 한순간에 바스러질 수 있는 일상이었음을 실감한다. 마스크와 집 안에 갇혀 나태에 절어가는 몸을 일으켜, 반경은 작지만 소박하게 분주한 하루를 세워나간다. 

여전히 나는 자취방에서 홀로 화면을 마주하며 밥을 먹는다. 시끌벅적했던 가족의 식사에서 빠져나오니 냉장고 소리만 웅웅 들릴 뿐이다. 이제는 배달음식 대신 사람의 온기가 남아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작고 아늑한 세계에서 넷플릭스의 일방향 소통을 즐긴다. 동시에 디지털 세계 속에서 끊임없이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화상강의실, 화상회의실에 상주하여 ‘Zoom(화상통화 플랫폼)’의 Z를 딴 Z세대라는 우스갯소리도 있는 만큼, 주기적으로 네모난 화면에 들어가 친구들과 얼굴을 맞댄다. 그렇게 나름 풍요로운 고독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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