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일상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하는 요즘, 나 역시 강제 집순이 생활을 하며 과거 일기장들을 펼쳐보고 있다. 그중 2019년 다이어리의 첫 장에 써둔 새해 다짐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올해 목표: ‘나’를 알기, 온전한 ‘나’를 찾기! 작년의 나는 이런 원대한 새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나의 일상을 담는 브이로그(vlog)를 시작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진 트웬지(Jean Twendge)에 따르면 최초의 ‘디지털 인류(digital native)’인 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 영상을 보며 자랐기에 영상으로 소통하는 걸 주저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 사생활과 개성을 존중받기 원한다”고 한다. 브이로그는 이러한 Z세대의 특성이 잘 녹아 있는 콘텐츠로, 나만의 이야기와 나의 일상을 일기 형식으로 풀어낸 비디오를 말한다.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을 공유하면서도 남들과는 다른 나만의 개성도 담겨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작년의 나는 단순히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잘 기억하는 것만으로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나의 카메라에는 여행을 갔을 때, 예쁜 카페를 찾아갔을 때, 놀이공원을 갔을 때와 같은 ‘특별한’ 하루들만 담겼다. 나의 취향이나 평소 습관, 순간의 감정을 담아내지 못한 영상들은 나를 알아가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뒤숭숭한 기분만을 안겨줬었다. 특히 요즘같이 외출이 어려운 상황에는 브이로그를 더 찍을 수 없었다. 일상이 무너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에서 점차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문득 브이로그에 담기지 않은 매일매일의 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사실 하루의 대부분을 집에서 보내지만, 그동안은 집에 있는 날들을 지루하고 기억할 필요 없는 일상으로 치부해왔다. 하지만 진짜 나의 모습은 이 지루한 집순이 생활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집에서 항상 입는 옷, 아침에 일어나서 꼭 하는 행동들, 밥을 먹는 시간, 낮잠 자는 시간, 요리하는 것 등은 모두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됐다. 좋아하는 아이돌의 TMI(Too Much Information)를 수집하듯, 나에 관한 사소한 정보들을 모아봤다. 좋아하는 음악, 차, 음식, 책, 싫어하는 색과 같이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을 하나씩 나열하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온전한 나를 알아가고자 했던 작년의 다짐을 올해가 돼서야 이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근 1년간 브이로그를 만들어 업로드 했지만, 최근 한 달 사이에 내가 누구인지, 나의 일상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모두들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요즘, 생각을 바꿔 ‘나’에게 더 귀 기울여 보면 어떨까. 나를 잘 알고 중심을 잡으면, 일상의 위기를 맞은 순간들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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