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n번방·박사방 사건(n번방 사건)은 미성년자를 포함한 피해 여성들의 성착취 영상이해외 모바일 메신저 텔레그램을 통해 대대적으로 공유·판매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다. 3월 청와대 국민청원 ‘n번방 사건 용의자 신상 공개 및 포토라인 요구’에 약 260만명이 동의해 역대 최다 청원을 기록하며 사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더 뜨거워졌다. 이에 본지는 n번방 사건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n번방 가입하신 분들 모두 다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고, 이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성범죄가 근절됐으면 합니다.”

제대로 된 처벌. 여성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인스타그램 릴레이 참여자, 국회 청원 동의자, n번방 사건 모니터링 서비스 운영진, n번방 피해자 법률지원을 돕는 변호사들까지. 여성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n번방 사건을 묵과하지 않고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릴레이, 국민청원...처벌을 위한 개인들의 작지만 확실한 연대

강명지(국문·17)씨는 n번방 사건의 공론화 및 해결을 위해 인스타그램(Instagram) 릴레이에 참여했다. 인스타그램 릴레이는 게시물을 올리고 다른 사람을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게시물은 사람들을 타고 전달돼 널리 퍼진다. 강씨는 영어나 일본어로 번역된 n번방 사건 정보를 계정에 게시했다. 청원 홈페이지를 캡처해 청원을 독려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에게 연대를 표하고 사건을 알리기 위해 인스타그램 릴레이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사회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해 왔다는 강씨는 국민청원, 국회 청원에도 참여했다. 그는 “최근 오덕식 판사의 재판부가 교체된 것 역시 청원이 효과를 발휘했다고 본다”고 전했다. “다만 많은 여성 단체의 관련 항의와 활동이 있었음에도 이렇게 여론이 불타야만 법원이 움직이는 것이 씁쓸하다”고 덧붙였다.

하씨(교육대학원 석사과정) 역시 수년 전부터 성범죄 관련 청원을 해왔다. “뚜렷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청원이 (성범죄를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방법이라 생각해 계속 참여해 왔다”고 한다. 하씨는 “실제로 성범죄 피해를 입은 지인이 있어 성범죄 사건을 접할 때마다 점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며 심정을 털어놨다.

하씨는 “성범죄, 특히 아동 대상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살인이나 성폭행 등 강력범죄에 관해서는 소년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n번방 사건 가해자의 상당수가 10대인데 처벌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약한 처벌은 악의적인 재범을 키우는 대처인 것 같아요.”

강씨 역시 “성폭력에 대한 법률 자체가 미흡하다”며 “특별법 제정이나 처벌 강화와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해 디지털 영역에 대한 제도 마련과 제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디지털이 발달하면서 옛날에는 범죄조직만 할 수 있었던 범죄를 개인도 저지를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요. 사회 제도나 법안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나아가야 해요.”

강씨는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 말을 건넸다. “죄책감, 막막함,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우선 자신을 잘 추슬렀으면 좋겠어요. 나의 일상을 지키며 연대해야 지치지 않고 장기적으로 연대할 수 있으니까요.”

 

n번방 모니터링 서비스, 피해자 무료법률지원… 피해자들을 위한 사회적 연대

숙명여대에 재학 중인 선씨(20·여)는 ‘n번방 시민방범대(모니터링 서비스)’ 운영자 중 한 명이다. 현재 n번방 시민방범대 사이트 (nthroomcrime.com)는 검거현황, 청원 및 법안 정보, 파생방 목록, 관련 최신 뉴스를 정리해 이용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선씨는 n번방 사건을 기사와 학교 커뮤니티 글에서 처음 접했다. “(가해자로) 10대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에 심각성을 느꼈고, 이게 정말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인가 믿을 수 없었죠.”

그는 기사를 접한 당시 n번방에 참여한 인원수가 국내 코로나19 확진자 수보다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너무 화가 난다”며 “이 사건은 절대 묻히면 안 된다 생 생각했다”고 전했다. 선씨가 n번방 사건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서비스 운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치지 않기, 끝까지 연대하기

선씨는 피해자의 입장을 생각한 자문을 통해 모니터링 서비스를 개선해왔다.

한국성폭력상담소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전화번호를 사이트 위쪽에 위치시킨 것, n번방을 표현한 아이콘을 문제 삼아 바꾼 것 모두 선씨가 한 일이다. 그는 “n번방을 표현하는 아이콘을 만들 때 원래 영상카메라 모양이 있었다”며 “영상카메라는 (피해자에게 다가오는 느낌이) 직접적이어서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떠올리기 쉬울 것 같아 일반카메라 아이콘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n번방 시민방범대’와 같이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이들을 도와주는 여성단체가 있다. n번방 사건 피해자에게 무료법률지원을 시행하고 있는 한국여성변호사회(여성변호사회)다. 여성변호사회는 n번방 사건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물론 기타 유사 디지털 매체를 통한 성폭력 피해자에게도 무료로 법률지원을 하고 있다.

n번방 사건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단 5시간 만에 111명의 변호사가 모였다. 여성변호사회는 청소년 16명을 포함한 피해자가 74명에 이른다는 보도를 접한 후 ‘n번방 피해자 법률지원변호사단’ 모집을 시작했다. 여성변호사회 관계자는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가 극심한 두려움으로 피해 사실을 쉽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용기를 가질 수 있도록 많은 여성 변호사가 함께 했다”고 전했다.

여성변호사회는 법률상담을 통해 피해자의 형사 절차 진행을 도울 예정이다. 여성변호사회 관계자는 “많은 변호사가 열정을 갖고 조력하고 있다”며 “n번방 사건 피해자들도 주저 말고 한국여성변호사회 홈페이지(kwla.or.kr)로 연락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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