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를 대표하는 특징은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기기와 함께 한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 세대라는 것이다. 디지털 원주민이라는 말은 단순히 디지털 기기를 이용하는 것뿐 아니라 디지털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구축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문화도 포함한다. 이는 분명 긍정적인 활용 방법이 될 수도 있으나 부정적인 방법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많은 사람의 공분을 산 일명 ‘n번방 사건’이다. n번방 사건은 유명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인 텔레그램(telegram)을 통해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및 성폭력이 이뤄지고, 여성들의 영상과 신상정보를 공유 및 유통한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여성들에게 접근했던 수단은 ‘트위터’였고, 신상정보 역시 SNS를 제공하는 플랫폼에서 얻을 수 있었으며, 성착취 영상이 퍼졌던 공간은 ‘텔레그램’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매체와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성범죄 역시 SNS 등을 통한 디지털 성범죄로 영역이 확대됐다. 디지털 성범죄는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한다는 특성상 10대~30대에 집중돼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실제로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이슈화 된 이후 10대와 20대 연령층에서 ‘텔레그램 탈퇴’가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n번방과, 그 파생방인 박사방의 운영자인 ‘갓갓’, ‘와치맨’, ‘박사(조주빈)’가 모두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의 나이인 것 역시 Z세대라고 할 수 있는 10대 후반~30대 초반의 남성들에게 디지털 성범죄 문화가 얼마나 만연한지를 보여주는 예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법규는 이러한 빠른 기술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과 같이 다양한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는 딥페이크(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특정 인물의 얼굴 등을 특정 영상에 합성한 편집물)에 대해서만 처벌 기준을 추가한 성범죄처벌법 개정안을 졸속 처리했다. 이 개정안에는 성범죄물을 보기만 한 자들에 대해서는 처벌 기준이 언급돼 있지 않다. 디지털 기술은 인공지능의 발달, 가상화폐 사용의 증가 등 너무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반면, 그 기술로 발생하는 어두운 그림자를 처벌하는 법규는 거의 변하지 않고 있다.

왜 법규가 변화하지 않고 있을까? 결국 이는 성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적 가치가 여전히 가해자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상을 나 혼자 즐긴다, 이것까지 갈 거냐…”(정점식 미래통합당 원내부대표), “자기는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거든요”(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 “쉽게 말해 청소년들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에서 그런 짓 자주 하거든요”(김오수 법무 부 차관) 위와 같이 요즘 논란이 되는 법사위 회의 내용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단지 저런 (몰상식한) 말을 한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해서는 안 된다. 위와 같은 생각을 하고, 법적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공식적인 회의에서 저러한 말을 할 수 있게 허용해 왔던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 저 개인들은 사회로부터 습득한 여성에 대한 잘못된 가치관을 충실히 말로, 행동으로 이행한 것이다. 세대 담론으로도 설명할 수 없다. “남성들이 뭐 X. n번방을 내가 봤냐. 이 XXX들아. 대한민국 창X가 27만 명이라는데 그런 너도 사실상 창 X냐”라는 글을 개인 SNS에 남긴 한 아역 뮤지컬배우의 나이는 고작 16살이다. 경제와 기술은 시간이 흐르면서 빠르게 성장했는데, 성에 대한 인식은 별 차이가 없다니 답답하고 개탄스럽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분노한 여성들이 서로 연대하고 디지털 성범죄에 대응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이 발현된 곳 역시 디지털 공간이다. 여성들은 가상공간에서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고, 의견을 표출했다.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고, 계층·교육수준·정치적 견해 등이 모두 다를지라도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공통의 사회적 경험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광활한 공간이 만들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당연했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하지 않았음을 인식한 결과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의 가해자들을 처벌해달라는 청원의 동의 수만 봐도 알 수 있다. 여성들은, 우리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디지털 공간에서 시작된 작은 이야기들은 점점 커져 물리적 공간에서 새로운 구조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시대와 공간의 양면성 속에서 우리는 떠날 것인가(exit), 침묵하고 현재의 억압적인 구조에 순응할 것인가(loyalty), 그도 아니면 목소리를 내어 항의할 것인가(voice). 안타깝게도 가부장제는 그 정도만 다를 뿐 여전히 세계 대부분의 곳에서 영향력 을 발휘하는 메커니즘이다. 떠날 수 없다면 순응하거나 바꿔야 할 것이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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