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학에 대한 다양한 시각교류 소장학자 국제학술토론회 참가기 (신주백 역사연구소연구원) 국제고려학회와 중국 길림성 사회과학원이 주최하는 코리아학 소장학자 국제 학술 토론회가 지난 7월29일부터 31일까지 연길시 백산호텔에서 열렸다.

코리아학소장학자 국제학술토론회는 『세계 각 나라 코리아학 소장학자들에게 학술교류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와 조건을 마련해 줌으로써 세계 코리아학 소장학자들의 성장을 밀어주고 코리아학 소장학자들 사이의 이해와 친선을 강화한다 』라는 취지 아래 열린 학술대회 였다.

이번 학술토론회는 한국의 학술단체 협의회를 비롯하여 북한(12명참가), 연변, 일본, 미국 등지에서 코리아학을 연구하는 200여명의 소장연구자들이 참여하였다.

코리아학 소장학자 국제학술 토론회는 언어, 문학, 교육, 정치·법률분과로 나누어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필자는 역사부회에만 참여하였기 때문에 7개분과에서 진행된 토론의 전체 내용을 소개할 수 없지만, 이번 학술토론회는 분단 이후 코리아학에 관심있는 소장 연구자들이 처음으로 모여 집단적인 토론을 전개했다는 점에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코리아학에 대한 다양한 연구경향을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연길의 소장 연구자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그곳의 1920,30년대 반일운동사에 관한 연구경향을 확인한것은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소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코리아학 소장학자 국제학술토론회는 국제학술대회로서의 성격에 맞지 않는 점도 많았다.

집행부의 실무 준비및 집행력의 결여, 대회 진행에 따른 소요자금을 스스로 충당하지 않고 지나치게 의존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와 노골적으로 「자본」문제를 밝히는 자세 등은 그들의 순수성까지 의심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더욱이 하나의 주제에 입각한 토론의 일관성과 집중성이 경려되어 있어 생산적인 결론을 유도하는 것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하였다.

대답없는 메아리겠지만, 이 지면을 빌어 논급하고 싶은 점은 연변학계에서 개최하는 학술토론회에 관한 문제다.

이문제는 필자가 평소에 느끼던 것이지만, 연변학계와 국제고려학회는 자신들의 경제력이 부족하여 소요경비를 의존적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면 무엇을 위한 토론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목적의식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주관적인 판단일지 모르겠지만, 연변학계와 국제고려학회는 통일한국을 위해 학술분야는 무엇을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토론을 조직해야 한다.

그런데 역사학분야의 토론을 포함하여 개인적으로 확인한 한도내에서만 보더라도, 연변학계 중심의 몇몇 학술토론회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미리 접어 버리고 남·북한 학자들을 그저 끌어모으려고만 했던 경우도 있었다.

(이 문제는 연변의 연구자들과 개인적으로 토론한 문제이기도 하다.

)결론없는 학술토론 논의내용을 정리할 수 없는 학술토론, 학문적 내용의 공감과 이해의 확충보다는 성과주의적인 학술행사는 앞으로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주변의 정치상황의 변동에 따라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연변의 위치와 특성은 남과 북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는 유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필자는 연변학계와 국제 고려학회가 남·북한 상호간의 구체적인 쟁점이 무엇인가를 명확히 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주는 것만으로도 자신들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이번 소장학자 대회의 참가 과정에서 드러났뜻이 순수한 학술토론의 장에 대해 정부측의 보이지 않는 기교도 문제라고 본다.

학술간체협의회에 대응한 다은 참가팀의 급조와 그 정치적 의도, 중국 출발 바로 전날에서야 출국허가를 내주는 경우, 입국과정에서의 특별히(?) 경직된 통관검사 등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

환영회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로 다 함께 불렀던 「우리의 소원은 통일」, 연길의 백두산호텔을 떠나던 날 버스안에서 30분 이상을 지체하고 있었는데도 호텔입구를 떠나지 않고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조선은 하나다는 손 동작을 하던 북한동포들의 모습. 북경의 한국식당 입구에서 우연히 마주쳤을때의 반가움. 이러한 일들은 북한과 연길 사람들도 역시 우리와 같은 민족이라는 상식의 새로운 확인과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장벽이 이데올로기의 장벽일 것이라고 한순간의 감상에 젖게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한 민족의 영산백두산 그리고 천지를 보게된 것은 예정에 없던 특별전세기 이용에 든 비용을 상쇄하고도 남는 일이었다.

짚차에서 내려 천지까지 5분거리였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천지를 보고싶어 뛰어오를 때의 두근거림과 설레임은 호흡이 가빠옴을 느끼게 할 수 없게 하였다.

백두산의 웅장함과 천지물의 푸르스름함을 조금이라도 빨리, 그리고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2통의 필름에 순식간에 담아내는 모습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면서도 환하게 웃던 얼굴 또한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자료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구내에서의 만주지역 반일운동사 연구가 갖는 한계를 절감하면서도, 우리가 고적답사를 다니듯, 만주지역에서 피를 흘린 애국지사들의 행적을 낱낱이 정리하여 우리 역사에 반영해야 한다고 느낀 여행이었다.

왜냐하면 연길의 우리동포들은 우리민족이기는 하지만, 그들은 기본적으로 중국의 신민주주의혁명사의 일부분으로 만주지역운동사를 기술하고 있어 국내 반일운동과 관련된 문제의식이 자신들의 시야에서 기본적으로 배제되어 있음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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