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와 감상에서 억지와 비약으로

만화는 「창작과 향유」 두 부분에 있어서 모두 친근한 매체이다.

이는 곧 광범위한 대중성의 확보로 이어지고 다시 사회적 파급효과에 대한 책임감을 수반한다.

그러나 만화의 대중성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여도 사회적 책임에 이르러서는 십중팔구 떨떠름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그만큼 만화는 대중적 파급력에 비해 자기 몫은 제대로 해 내고 있지 못하며 스스로 대중의 위안물로서 자포자기하고 있다.

이는 만화작가의 사회적 책임의식의 결여라는 문제와도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00년대 이 땅에 최초로 상륙한 만화는 당시 문맹률이 높았던 조선민중들이 비참한 생활상을 쉽고도 진솔하게 표현해 준 가장 선도적인 리얼리즘 예술이었다.

주로 신문에 독자투고 형식으로 발표되었던 초기의 만화는 망국의 비애와 일제의 가혹한 민중수탈정책, 그리고 이에 대항하는 조선민중들의 격렬한 저항정신 등을 세련되지는 못하나마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만화의 현실반영적 면모는 1924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멍텅구리 헛물켜기」라는 통속 만화의 대두로 그 맥을 상실하게 된다.

좬우습고도 재미있게좭를 목표로 발표된 이 만화의 퇴폐적·통속적인 성격은 이후 일제시대를 거쳐 미군정기~6.25와 분단으로 이어진 한국현대사 속에서 초기의 문제의식을 짓누르고 오늘날까지 당당히(?) 이어지고 있다.

특히 1970년대 말부터 소위 「만화세대」라는 계층이 형성될 만큼 만화는 이제 확고한 자기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는 작가와 향유하는 독자 양측으로부터 어떠한 자성과 비판의 소리없이 1920년대 이후의 오락주의·상업주의의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이에 지금부터 우리는 여대적 특수성을 감안하여 순정만화를, 특히 황미나씨를 중심으로 만화의 산적한 문제에 대해 가능한 범위내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많은 순정만화가 중에서 황미나씨를 선택한 이유는 작품의 양과 인기도(86년 「나인」지 조사, 순정만화가 인기집계 1위), 그리고 작품변신등의 면에서 황씨야말로 한국 순정만화의 대표적 인물이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만화 창작과 유통구조의 문제, 만화의 미학적 접근의 문제 등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우선, 소재와 내용 면에서 사회사적 접근을 시도해 볼 것임을 말해준다.

황씨의 만화는 크게 1,2,3 기로 나누어 볼 수 있으며 이는 한국 순정만화의 시기구분과도 거의 일치한다.

제 1기는 80년대 초반(1980~83년), 폭력적으로 등장한 5공화국이 광주학살로 대표되는 자신을 부도덕성을 소위 3S정책(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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