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부르크 구시가지 광장 근처.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 중 마스크를 낀 사람은 아무도 없다.제공=이수빈 선임기자
마르부르크 구시가지 광장 근처.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 중 마스크를 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제공=이수빈 선임기자

 독일에 온 지 이제 막 2주를 넘겼다. 마르부르크 필리프스 대학교(마르부르크대)에서 방문학생 신분으로 한 학기를 보낼 예정이다. 하지만 아직 비자를 받지 못한 외국인으로서 불안한 마음에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주시 중이다.

최근 유럽과 미국 등에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하면서 11일(스위스 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에 대해 팬데믹을 선언했다. 독일은 현재 세계 7위 코로나19 감염국으로 2745명이 감염됐으며 6명이 사망했다. 마르부르크가 있는 헤센 주의 감염자는 99명이다.(12일 기준)

독일에서 생활한 시간은 비록 짧지만, 코로나19에 대한 학교와 주변인의 태도가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상황의 심각성을 이제야 인지하는 듯하다. 글을 시작하기 전 국가, 지역, 사람마다 체감 정도가 다르며 다음의 상황은 직접 경험하고 들은 것임을 밝힌다.

 

△ #1 영상 통화로 진단한 코로나19 감염 여부

독일에 온 지 둘째 날인 27일 밤부터 고열이 났다. 독일어를 한마디도 못하고 지인 한 명 없는 타지에서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아파지자 겁이 덜컥 났다. 불안한 마음과 다르게 열은 며칠 동안 떨어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나흘 동안 해열제를 14알 넘게 먹었지만 열은 39도에서 40도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결국, 대사관에 전화해 도움을 요청했다. 입국 날짜와 증상을 말하며 보건 당국에 신고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코로나 검사는 받을 수 있는지 등을 문의했다.

대사관에서는 구급차를 연결해주고 독일 내 코로나19 신고 번호 ‘116117’을 알려줬다. 현재까지 독일은 코로나19 감염이 의심되는 경우에는 진료 거부가 가능하다. 그때문에 병원에 가기 전 이곳에 전화해 상태를 알리고 예약을 해야 한다. ‘116117’은 영어로도 대화할 수 있었다. 지역과 주소, 증상과 확진자와 접촉 여부, 위험 지역 방문 사실 등을 알리자 상담사는 “의사와 연결을 해주겠다”며 “곧 다시 전화주겠다”고 했다. 현재 독일에서 지정한 위험 지역에는 중국 후베이성, 한국 경상북도 등이 있다.

약 1시간을 기다리자 전화가 왔다. 의사가 곧 전화를 줄 거라고 했다. 또 1시간이 지나서야 의사에게 영상 통화가 왔다. 정말 지옥같이 긴 2시간이었다. 그에게 증상을 설명하자 “당신은 확진자와 접촉이 없고 위험 지역에서 오지 않았다”며 “코로나19가 아니라 독감”이라고 말했다. 이어 “따뜻한 차를 마시고 수프를 먹으며 집에서 푹 쉬어라”고 말했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검사를 하거나 내 몸 상태를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진단을 내리니 말이다. 독일에서는 고열 및 호흡기 증상이 있고, 위험 지역을 방문하거나 확진자 접촉이 있어야만 의사의 권유 하에 코로나19 검사가 진행된다 했다. 하지만 지역별 확진자가 우후죽순으로 늘고 확진자 동선도 공개하지 않는 이곳에서 확진자 접촉 여부는 아무도 확답할 수 없다.

다행히 이날 저녁부터 점차 열이 내렸다. 하지만 이곳의 의심 환자를 향한 대처에 큰 실망을 했다. 만약 내가 정말 코로나19에 감염된다면 제대로 된 검사와 치료는 받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 #2 독일, 최근에서야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느끼다

Studentenwerk 건물 출입구에 코로나19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이수빈 선임기자
Studentenwerk 건물 출입구에 코로나19 관련 안내문이 붙어있다.
제공=이수빈 선임기자

독일에서의 첫 공식 일정은 마르부르크대 오리엔테이션(OT)이었다. 3월 첫째 주, 일주일 동안 진행된 OT에서는 비자 신청 서류, 유학생 보험, 계좌 등 정착에 필요한 서류 작성을 도와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OT는 계획 변경 없이 진행됐다. 의무적인 확인 절차로 OT 첫날 ‘코로나 위험 지역에서 왔니?’, ‘확진자는 만난 적 있니?’ 물을 뿐이었다. 이마저도 ‘중요하지는 않은데 혹시나 해서 묻는다’는 식의 말을 덧붙였다. 추측하건대 전염병을 의심하는 것처럼 느껴질까 조심스러웠던 것 같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경각심은 없는 듯 보였다. 200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마스크 없이 좁은 공간에서 함께했다. 밤에 열리는 대규모 공식 파티도 진행됐다.

경각심 부재를 가장 실감했던 건 OT 넷째 날의 일이다. 이날은 각자의 나라의 음식을 요리해 소개하고 함께 나눠 먹는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었다. 국제처는 코로나19를 이유로 해당 행사의 취소를 전날 공지했다. 하지만 취소가 무색하게 학생들은 비공식적인 대규모 파티를 열었다.

10일 학교 국제처는 4월에 열릴 OT 참석 예정자에게 코로나19 관련 메일을 보냈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위험 지역에서 온 학생은 14일간 자가 격리하라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에는 학교 건물에 안내문이 붙었다. 다른 사람과 적정 거리 1.5M를 유지하라는 등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이제야 학교 자체 대응을 시작하는 듯 보였다.

길거리에서는 아직 아무도 마스크를 하지 않는다. 함께 사는 독일인 아주머니께 그 이유를 묻자 “마스크는 내가 아플 때 다른 사람들에게 옮기는 것을 막기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인식 때문인지 마스크를 하고 다니면 이목이 쏠린다. 이곳에서 만난 한 한국인 유학생 ㄱ씨는 “마스크를 했다가 길에 모든 사람이 끝까지 쳐다봤다”며 “다른 사람의 기침에 불안해도 막상 마스크를 끼기는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손 소독제와 손 세정제, 알코올 스프레이 등은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근처 마트 다섯 군데를 돌아다녔지만 손 소독제와 알코올 스프레이는 구할 수 없었다. 손세정제는 손소독제에 비해서는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으나 그 수가 적었다. 한국인 유학생들은 자체 네트워크를 통해 손 소독제가 들어온 마트 정보를 나누는 중이다.

독일 드러그스토어의 손 소독제 코너. 수요가 많아 수량 확보가 어렵다고 적혀있다.이수빈 선임기자
독일 드러그스토어의 손 소독제 코너. 수요가 많아 수량 확보가 어렵다고 적혀있다.
제공=이수빈 선임기자

 

△ #3 코로나19로 타지 생활 고충은 ‘껑충’

마르부르크대의 개강은 4월 중순이다. 이 때문에 마르부르크대로 방문학생을 오는 본교생 단체 채팅방에는 아직 독일에 오지 않은 학생들의 걱정이 담긴 질문이 끊이질 않는다. 32명이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는 현지 상황은 어떤지, 출국 일정을 변경할지 등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 있다. 독일에 온 학생들은 입국 심사 시의 상황 등 정보를 활발하게 공유한다.

본교에서 마르부르크대로 방문학생을 온 ㄴ씨는 독일에서 한국인을 입국 금지 할까 불안한 마음에 비행기 표를 앞당겼다. 당초 3월 말에 독일에 올 예정이었으나 6일 입국했다. 출국 일정을 변경하며 25만 원을 추가로 내야했으나 금전적 손해보다 독일에 입국하지 못할까 두려움이 더 컸다고 한다. 독일에 방문학생을 오기 위해 한 학기를 휴학하고 독일어를 공부하는 등 단기간에 쉽게 내린 결정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방문학생 ㄷ씨는 이곳에서 방을 구하며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다. 방문학생은 선착순으로 기숙사를 배정하기에 이에 떨어진 학생은 보통 방을 직접 구한다. 우리나라의 셰어하우스와 같은 주거 형태를 독일에서는 베게(WG・Wohngemeinschaft)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학생이 베게에서 생활한다. 베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입자가 방주인에게 연락하고 약속을 잡아 인터뷰를 하는데 워낙 방을 구하는 사람이 많기에 경쟁이 치열한 편이다. 하지만 ㄷ씨는 환자가 많은 한국에서 왔다는 이유로 상대측에서 인터뷰를 갑자기 취소했다고 했다. 다행히 다른 집을 구했지만, 거주가 달린 문제였기에 당시 몹시 화가 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은 모두 코로나와 관련된 직접적인 인종 차별을 겪었다고 말한다. 주로 무리를 지어서 다니는 이들 주변을 지나갈 때 ‘코로나’라고 외치는 식의 차별을 겪었다. ‘칭챙총’이라 말하며 일부러 기침을 내고 지나가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한번은 카페에 들어갔는데 입과 코를 가리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옷깃을 가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바이러스로 취급한다는 생각이 들며 불쾌했다. 버스에 타면 유난히 쳐다보는 시선이 따갑기도 하다.

하지만 한국인 유학생들은 입을 모아 이러한 차별에 화를 낼 수 없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철저한 ‘외국인’으로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유학생 보험이 시작되는 4월부터는 차별에 대응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비가 온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요즘 독일 날씨에 혹여 감기에 걸려 기침이라도 할까 옷을 더 두껍게 입는다. 인사치레로 하던 ‘건강해’라는 말이 그 어떤 말보다 진심이 됐다. 상황이 더 악화돼 학사 일정이 크게 변경될까 불안하기도 하다. 어려운 타지 생활이 코로나19로 한층 더 고단해지는 기분이다. 내일 하루도 무탈하길.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