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향점 잃고 겉도는 과학기술정책
지향점 잃고 겉도는 과학기술정책
  • 이대학보
  • 승인 1991.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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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향점 잃고 겉도는 과학기술정책 독점자본 살찌우는 정책 탈피해야 이재혁 한겨레신문 생활환경부기자 3년 2개월간 과학기술처 출입기자 생활을 하면서 맨먼저 얻은 느낌은 이땅에 불행하게도 신뢰할만한 과학행정과 과학행정관료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 67년 과학기술처가 독립부처로 발족한 이후 관료들이 주물러온 이른바 「과학」은 줄곧 독점 자본과 성장주의 경제론자들의 하수인 역할만 했을 뿐 대중의 생활환경 개선과 생산력 발전과는 애초부터 거리가 멀었다.

그렇지 않은 구석이 혹여 있다면 당초의 의도가 아니었고 부스러기 결과물일 따름이다.

민중의 구체적인 삶에 뿌리내리지 않고 민중을 지형하지 않는 과학기술정책은 대중에게 엄청난 희생을 안기고 있다.

페놀사태로 상징되는 썩은 물파동이 그렇고, 안면도사태가 그렇다.

80년대들어 기술집약 산업을 중심으로 과학기술자들이 쏟아져나오면서 고학의 올곧은 방향 정립을 위한 과학대중화 운동이 노조나 각종단체 형태로 확산되고 있지만 그동안의 이론적·실천적 성과들이 실제정책에 반영되지 못한채 과학기술 정책은 무책임과 가치중립의 신화속에서 지향점을 잃고 겉돌고 있는 느낌이다.

지식으로서의 과학과 기술은 있으나 사람이 노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를 진보의 역사라고 할 때 억압구조의 자주성을 드높이는 과학의 중요도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자본의 확대재생산과 끝없는 이윤획책속에서 과학기술이 자본에 포섭될 수밖에 없다지만 과학은 그 창발성과 창조성으로 하여 돈더미 속에서 스스로 소금처럼 빛난다.

핵발전소 문제부터 보자. 좁은 국토에 95만 KW급의 매머드 원자력발전소가 10년 남짓의 짧은 기간에 9기나 돌아가고 여기서 걸핏하면 중수누출이다 과다피폭이다 기형아 출산이다 난리가 난다.

그러나 원전 건설과 운영전반의 감독과 안전규제를 책임맡은 정부는 사업자인 한국전력의 이익보호가 유일한 관심사여서 지난 73년 드리마일사고 이후 미국에서는 단 1건의 신규건설도 없는 원전을 2030년까지 주로 호남해안지역에 40개를 더 짓겠단다.

농산물 수입개방으로 농촌이 거덜나게 생겼는데도 이런저런 항목으로 연간 3천억원의 국가연구비를 쓰면서 농업기술개발은 그동안 완전히 무시해왔다.

유류과이라운드에 대히한 정부의 기술개발적 대응은 지난해 12월 국내 농대교수 20여명에게 ,그것도 버스 지나가고난 뒤에 손드는 격으로 1백~2백만원의 푼돈을 준것이 전부다.

수도물파동과 폐놀사태는 시굴개발부처가 대중에 복무하는 주체적인 프로그램을 갖지 못하고 개발독재의 들러리로 전락한 데서 빚어진 당연한 결과였다.

환경처와 과기처가 요즘 뒤늦게 수질·대기오염 절감기술과 오존층파괴의 주범인 프레온가스 대체물질, 자동차 배기가스 저감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으나 이 또한 국책연구소와 유명대학의 몇몇 전문가가 이전과 마찬가지로 연구비를 독식해 빈축을 사고 있다.

또 물파동 등으로 환경예산이 늘긴 했으나 환경관련 시설과 기술의 해외의존 구조가 깨지지 않고 있어 자칫 외국 업체의 배만 불릴판이다.

아울러 자율과 창의가 관건인 연구기관을 관청이 마음대로 흔드는 풍토도 고쳐야 할 폐해로 판단된다.

서울과 대덕연구 단지의 19국책연구소들은 81년2월 국보위 시절에 만들어진 획일적인 운영지침과 통일급여 명세표밑에서주체성을 잃고 있으며 , 예산통제권에 발이 묶여 연구과제마저 사전과 사후에 철저히 감시당하는 형편이다.

정부는 그동안 국책연구소들에 대한 통제에만 관심을 뒀을뿐 늘어나는 민간연구소와의 역할분담이나 국책연구기관의 기능재정립은 대책없이 미루기만 했다.

바뀌는 장관들마다 요구사항을 달리했고, 연구소들은 위정자의 입맛에 맞춰 응용기술과 원천기술 사이에서 무게중심을 정하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다가 80년이후 급성장한 재벌기업의 연구소들에 선두자리들을 잇달아 내주고 말았다.

한편 전망을 국민앞에 열어보여야할 과학기술 행정책임자를 내각개편등 「정변」이 있을때마다 지배권력 집단의 세력안배나 다른 「정치적」이유로 쉽게 바꿔버리는 것도 과학행정의 파행성에 상처를 보태고 있는 느낌이다.

지난 78년 최종완장관이후 여태껏 11명의 장관이 과기처 장관이 됐다가 이내 사라졌으나 그들이 들고 나타난 새로운 정책이슈와 새 인사조치는 지금도 잔해가 남아 과학기술 정책과 조직에 부담이 되고 있다.

또 시대가 첨단세상이긴 하지만 한정된 예산과 인력을 컴퓨터와 반도체·통신공학·소프트웨어 등 「만골메뉴」에만 쏟아부어 재래기술에 깃든 첨단성을 무시한 탓에 연구영역이 편중되고 있으며, 기초과학의 산실이자 국내 총 연구인력의 80%가 몰려 있는 대학이 활용되지 못해 자체기술 개발을 위한 물적 토대가 빈약하기 이를데 없는 것도 구조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로 보여진다.

또 세계가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모든 정부관련부처에 연구개발영역이 생겨났지만 이기주의와 부처할거주의에 빠져 범부처적인 정책우선순위 결정에 있어 횡적으로 연결이 되지 못해 안타깝다.

이런 폐단을 고쳐보고자 얼마전 총리를 위원장으로 국무위원14명이 참여하는 종합과학기술심의회가 생겼지만 모두들 억지로 끌려나와 딴전만 피우고가는 것이 아직은 우리네 「조합과학심의 」의 현주소다.

우리의 과학기술정책은 이제 까지의 허상을 부분적으로 고쳐 세우거나 땜질하는 방식으로는 바로 설 수 없으며 지금껏 쌓아올린 탑을 허무는 데서 새롭게 출발해야 할 것이다.

국가부흥의 파시즘적 사고와 바탕한 왜곡된 과학기술 정책은 여기서 숨쉬고 사는 사람들과 사람관계 그리고 그들이 이루는 역사의 진보와 가본적으로 적대관계에 놓일수 밖에 없다.

허무는 것만큼 새롭게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