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페미니스트, 24년생 이이효재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1세대 페미니스트, 24년생 이이효재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 배세정 기자
  • 승인 2019.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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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학 개설, 호주제 폐지, 위안부 문제 해결 등에 목소리 낸 여성 운동가

"직장생활을 하던 여성이 혼인과 더불어 대부분의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다. 신혼 생활의 재미와 한두 자녀를 낳아기르는 초혼기의 생활은 그들의 정력과 창의력을 그런대로 흡수하며 의욕을 당분간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단조로운 살림살이에 쉬이 권태를 느끼며 자아발전의 그 욕구를 직장과 사회를 위하여 쏟으려고 한다. 이것은 바람난 여자들의 부질없는 짓이 아니다."

가족 내 여성의 위치와 사회 진출에서의 불평등을 고찰한 이글은 이이효재 퇴임교수(사회학과)가 <동아일보>에 기고한 ‘結婚(결혼)후의 再就職(재취직)’의 일부다. 최근 쓰였다고 해도 무리 없을 것 같은 이 글은 놀랍게도 1967년 7월13일에 기고된 글이다.

 

전시 내부 전경
김서영 기자 toki987@ewhain.net

‘1세대 여성학자’인 이이 교수는 1945년 본교에 입학해 영문학을 전공했다. 이후 본교 사회학과 교수, 서울여대 사회학과 교수, 한국사회학회 회장 등에 재직하며 학문적 입지를 다졌다. 특히 그는 본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여성학과 설치에 힘썼으며, 여성운동을 이끌고 호주제 폐지에 앞장서는 등 우리나라 여성학에 크게 공헌했다. 서울시 은평구 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주최한 <24년생 이이효재가 온다>란 전시는 그의 생애 및 활동을 다룬다.

전시는 작은 공간에서 진행되지만 이이 교수 관련 신문 기사와 기고문, 지금은 절판된 책을 포함한 이이 교수의 저서를 한곳에서 볼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반기는 포스터에는 이이 교수가 ‘Admit your crime(잘못을 인정하라)’ 팻말을 들고 서 있다. 1994년 6월 미국 워싱턴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 일왕 방미 규탄 시위를 하는 모습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5장의 큰 종이가 매달려있다. 이 종이에는 이이 교수 관련 신문 기사와 기고문이 쓰여 있으며, 몇몇 기사는 QR코드로 제시된다. 종이 5장은 각각 키워드를 하나씩 담고 있다.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학을 도입하고 분단 사회학을 개척한 사회학자’, ‘위안부 문제 해결의 주춧돌을 놓은 실천가’, ‘평화시대를 앞당긴 남북 여성교류의 주역’, ‘비례대표제 도입/50% 여성할당, 동일노동 동일임금, 모성보호, 호주제 폐지 등 여성운동을 이끈 지도자’, ‘새로운 것에 감격하며 늘 열려 있던 선구자’가 그것이다.

본교에 사회학과가 신설된 1958년에 조교수로 임명된 그는 식민지배, 분단현실, 가부장제적 국가권력, 자본주의 산업화 등 한국 상황에 맞는 여성학을 도입하려 애썼다. 그는 1976년 「여성능력 개발을 위한 여성학 과정 설치의 제안」이란 논문을 통해 여성학과 개설에 공헌했으며, 본교에는 1977년 학부 교양 과목으로 처음 여성학과가 개설됐다.

이이교수는 위안부 문제 해결에 앞서기도 했다. 그는 1994년 12월6일 ‘94 올해의인권상’을 수상해,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자행한 일이었던 만큼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공식적인 정부예산에서의 보상액 책정이 이루어져야 제대로 된 보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이이교수는 호주제 폐지에 앞장섰다. 1997년 3월9일 3·8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그는 ‘부모성 같이쓰기 선언’을 진행했다. 그의 이름 또한 부모성을 같이 쓴 이름이다. 현재까지도 해결 중인 동일노동 동일임금, 차별호봉 철폐를 1988년에 외치기도 했다.

 

이이효재 교수의 책 「여성과 사회」
김서영 기자 toki987@ewhain.net

전시회 오른편에는 이이 교수의 저서가 꽂혀 있는 책장이 하나 있다. <효재의 서재>라 이름 붙여진 이곳은 그의 절판된 책을 포함해 21권의 책이 전시된다. 이이 교수가 쓴 「여성과 사회」, 번역한 「社會學(사회학)」 등 이이 교수의 학문적 성과를 볼 수 있는 책뿐만 아니라 「이이효재」와 같이 여성 운동가로서의 일대기를 다룬 책도 있다. 표지도 깨끗하지 않고 종이 색이 바래진 1990년대 책은 이이 교수가 살아있는 역사임을 깨닫게 했다.

<효재의 서재> 왼쪽엔 ‘ADMIT YOUR CRIME’, ‘사회의 민주화는 가정의 민주화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아들숭배 뿌리뽑자!’와 같은 문구의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이는 이이효재 교수의 신문 기사 인터뷰나 기고문, 피켓에서 발췌된 문구다. 전시를 관람하는 이들은 자유롭게 배치된 스티커를 가져갈 수 있었다.

이이 교수는 현재는 귀향해 장기입원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평생을 배우자 없이 살았으며, 결혼보다는 여성 운동에 더 힘써야겠다고 판단했다는 일화도 제자들에 의해 전해진다.

<24년생 이이효재가 온다>를 기획한 박은진 사업팀장은 “이이효재 선생님을 알리는 건 필요한 일이지만 어디에서도 하지 없었다”며 “여성운동 기록을 보존한다면 1세대 여성운동가중 한 분인 이이효재 선생님부터 다루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진일보한 이슈들이 당시 선생님이 문제의식을 갖고 말씀하셨던 부분이기에 2030 청년 세대들이 많이 와서 알아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전시는 내년 3월27일(금)까지 서울시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공유동 6층 성평등활동지원센터에서  오전10시부터 오후6시까지 열린다. 관람은 무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