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젠더 시스템부터 꾸밈 문화까지, 세 권의 책으로 만나보기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그래픽=김보영 기자 b_young@ewhain.net

 

41년이나 앞섰다. 북한은 1946년 7월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공포했다. 여성은 국가, 경제, 문화,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남성과 평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내용이다. 한국은 1987년 12월, 남녀고용평등법을 제정했다.

북한은 2010년 여성 권리를 보다 구체화해 ‘녀성권리보장법’을 발포했다. 법은 임금에서의 남녀차별 금지, 결혼/임신/출산 휴가 등의 이유로 해고 금지 조항을 포함한다. 2015년 개정된 산전 산후 휴가 기간은 8개월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

하지만 김석향 교수(북한학과)는 북한 사회가 성평등하다는 말에 반기를 든다. 법령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 그는 “위의 이유로 한국 여성학계에서 북한 여성에 관한 연구는 다소 도외시됐다”며 “실제로 북한 여성은 첩첩이 소수자”라고 말했다. 호주제는 없지만, 세대주가 있다는 사실은 이 주장을 뒷받침한다. 세대 주인에게 여성은 감히 대들 수 없다.

북한 사회의 폐쇄적 구조로 현장을 직접 관찰하고 알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법이 보장되고는 있을까? 여성들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북한 여성이 말하는 생활상과 젠더 시스템의 현실을 설명하는 책 세 권을 소개한다.

 

△ ‘일하며 가정을 돌보라’ 여성에게 이중 역할을 부여하는 체제

‘강인하다.’ 그리고 ‘순종적이다.’ 병렬하기에는 모순적인 문장이다. 하지만 「북한 녀자」의 저자 박영자씨는 그가 만난 북한 여성을 위와 같이 표현했다. 강한 자기주장과 억척같은 생활력을 지녔지만, 가정이나 지역에는 순종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 책에서는 1945년 국가 체제 수립 과정부터 2010년대 3대 세습이 이뤄지기까지 약 70년간의 북한 젠더 시스템을 다루며 ‘그들이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는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냉전 질서가 형성되고 민족국가 건설이 보편화되며 민족주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구별하며 이분법적으로 성 역할을 부여했다. 북한도 마찬가지였다.

‘남성 국민의 최고 가치를 “조국을 위한 투사”로 이상화하였다. 이때 여성 국민의 최고 가치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민족국가의 투사를 높이 받들어 보호하고 훈육하는 “어머니 조국”이라는 규범으로 이상화되었다.’( 「북한 여자」, p.115)

북한 여성에게 이중적 모습이 강요된 것은 6.25전쟁 이후부터였다. 전쟁 이후 북한 정권은 주력 사업인 중공업에 남성 노동력을 우선 배치했다. 전쟁으로 피해 본 생활환경을 복구하기 위해서는 여성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여성은 ‘혁명적 어머니’이자 ‘혁신적 노동자’가 돼야만 했다.

‘여성 정책은 정권의 필요에 의해 구체화했다. 여성들을 노동 시장에 더 데리고 오기 위함이었다. “가족공동체의 관리자로서 오랜 세월 정치, 경제, 사회에서 가려져 있던 여성을 생산과 건설의 주체로 구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가족 공동체 구조를 재구성해야 했다. … 남녀평등권 법령은 이 같은 재구성 노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북한 여자」, p.180)

1990년대 중후반 자연재해와 국제적 고립이 겹치며 북한 주민은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 ‘고난의 행군기’를 겪는다. 100만 명 이상이 기아로 죽거나 실종됐다. 여성은 살기 위해 장마당을 열고 무엇이든 팔았다. 장마당은 각종 정보 교환의 장이기도 했다.

‘경제난과 선군정치 이후 떠안게 된 경제적 책임감은 강력한 주체성과 자립심으로 이어졌고, 장사 등 경제활동은 권력에 대한 충성보다는 물질적 이익 추구가 자신의 삶에 이롭다는 실용주의로 귀결됐다.’( 「북한 여자」, p532)

북한 정권은 여성들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녀성권리보장법’ 제정 등 가부장적 젠더 전략을 보완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 여성들은 정권의 군사주의 젠더 프레임을 조금씩 해체하며 새로운 사회체제를 열망하고 있다.

 

 

△ 소소하지만 체제의 변화를. 북한 여성의 꾸밈이 주는 의미

자신의 삶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표는 조직과 규범으로부터의 일탈, 탈북 등의 직접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이러한 북한 여성들이야말로 북한 체제를 아래로부터 변화시키고 있는 사회 변화의 주체 세력으로 평가한다.

김 교수와 박민주(북한학 박사·19년 졸)씨는 특별한 렌즈를 사용해 북한 여성 한 명 한 명을 바라봤다. 바로 ‘꾸밈’이다. 「북조선 여성, 장마당 뷰티로 잠자던 욕망을 분출하다!」는 1989년부터 2015년에 이르기까지 북한 여성의 꾸미기 욕구와 관련 문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핀다. 29명의 북한 이탈 여성이 증언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는 책은 화장, 성형부터 집 꾸미기 등까지 다양한 꾸밈의 경험을 포괄한다.

북한 여성의 평범한 일상을 연구한 선례는 없었다. 하지만 김 교수는 평범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보통의 북한 여성을 기록하고자 했다. “오랜 기간 학계에 있으며 깨달은 점이 있어요. 개개인의 움직임은 단순하지만, 반드시 사회의 변화를 몰고 와요. 이는 쉽게 드러나지 않아 변화의 과정에서는 의미를 눈치 채기 어렵죠.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직접 만나 본 사람들의 이야기와 <조선 여성>에 나온 흔적을 모아 기록하고 싶었어요.”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일상생활을 강하게 통제했다. 보통 당국이 배치해 준 직장 근처에 거주하며 식량과 생필품을 조달받는 배급체제였다. 이 때문에 90년대 초에는 여성의 차림새에서 나타나는 주목할 만한 꾸미기 활동도 드러나지 않았다. 다들 대동소이했다.

시키는 대로 살면 문제가 없었다. 말실수하거나 어긋나는 행동을 할 경우에는 생존의 문제로 직결됐다. 증언에 따르면 걸리면 같이 죽어야 하는 사람이거나 가족 정도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욕망을 감췄다. 어릴 때부터 체득한 북한 주민의 생존 방법이었다.

책은 장마당의 확산이 북한의 ‘꾸미기 행위’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독창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한 증언자의 이야기를 전했다. “육체적으로 얼마나 힘들겠어요. 근데 그 가운데서도 최선을 다해 단정하게 했어요. 붉은색 진흙을 입술에 바르고서라도 나왔죠. 모두 시장에서 손님을 끌기 위함이었어요. 한 면담 대담자는 이러한 행동은 모두 생존의 욕구로부터 ‘튀어나왔다’라고 말했어요.”

강한 통제는 ‘생존’, ‘경제’의 이유로 하나 둘 씩 용인됐다. 김 교수는 “욕망을 표출할 수 있는 합리적 방법을 꾸밈을 통해 처음으로 찾은 것”이라며 “꾸밈의 욕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비교적 최근의 경험도 많다. 책에서는 2010년대 면담 대상자의 단속 경험을 들어 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고 한다. 단속하는 입장인 청년동맹 간부도 유행을 따라 하고 싶어 하고, 그 마음을 이해해 적당히 봐주는 경우도 많았다는 것. 배금희(가명) 면담 대상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치마가 엄청나게 짧아지잖아요. 예전에는 단속을 많이 했었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다 입는 것 같아요. 단속해도 자기 말고 다른 사람한테만 걸리지 말라고 해요. 그 단속이 느슨해지는 거예요.’ ( 「북조선 여성, 장마당 뷰티로 잠자던 욕망을 분출하다!」, p.290)

남북 여성 교류 사업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책은 마무리된다. ‘과거 한국 영화나 드라마의 파급 효과가 폭발적이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문화 콘텐츠에서 보여주는 꾸밈의 모습이 잠재적 소비자인 북한 여성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어요. ( 「북조선 여성, 장마당 뷰티로 잠자던 욕망을 분출하다!」, p.312)

 

 

△ 북에서 넘어와 남에 적응하기까지, 개인을 기록하다

체제 불만, 인권침해, 굶주림. 북한을 벗어나 한국으로 입국하는 데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2010년에는 북한이탈주민 전체 입국자 수가 2만 명을 넘어섰다. 이전보다 입국 인원이 감소 추세기는 하나, 매년 여전히 1000명이 넘는 북한 주민이 한국으로 온다. 탈북 후 한국에 들어오면 이들은 모두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는다. ATM을 사용하거나, 대중교통 이용법과 같은 사회 적응 훈련부터 직업 훈련까지 있다,

「북한 여성의 남한 적응기」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은 북한 이탈 여성 천연화씨의 이야기를 소상히 담았다. 공무원으로 재직하며 북한 이탈 주민 관련 업무를 한 저자 강병의씨는 북한에서의 삶부터 탈북 과정, 한국 사회 적응기 등 천씨의 일생을 따라갔다. 내용은 문답 형식으로 정리돼있다.

이 책의 내용은 오로지 천씨가 주인공이다. 저자는 책에서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드러내 알리고 소통하는 데 의미가 있다”며 “평범한 여성의 일생을 통해 북한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실상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이야기는 천씨가 어린 시절 자라온 환경에서부터 시작한다.

소녀 시절에 제일 즐거웠던 건 뭐냐 하면 내가 ◆편지 기수에 나갔어. 그 편지를 메고 뛰는 게 최고의 영광이여!…그때 정말 우리 어머니 말마따나 그거 환영하러 나왔다가 진짜! 자기는 그만한 기쁨이 없었대요. ( 「북한 여성의 남한 적응기」, p.114)

한국 땅을 처음으로 밟은 순간의 기억도 있다. ‘인천공항에 아침 다섯 시인가? 내렸어요. 내리는 순간(국정원에서) 거기 대기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버스에 타니까 “커튼을 들지 말라!” 그러더라고요.’ ( 「북한 여성의 남한 적응기」, p.223)

한국 사회에서의 적응은 쉽지 않았다. ‘집에서 개인 학습 교사를 했어요. 근데 교회 사모가 “무시기 탈북자한테 배우겠는가?” 하는 거예요. 저는 그 말 듣고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이게 턱 막혀서 그다음에는 소리조차 안 나오더라고. 내가 한 6개월 동안 대학원 다니며 말 한마디도 못했어요.( 「북한 여성의 남한 적응기」, 226pg)

◆ 편지 기수 : 김일성 생일(4월 15일)날 백두산에서 평양까지 김일성 충성의 편지를 메고 이어달리기를 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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