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언론사 인턴 면접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

“AI 기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생각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인간이 제일 궁금한 건 무엇일까 매일 생각해야하는 저널리즘 영역을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가 온전히 대체할 수 없을 것이라 답했다. 언론사에서도 AI에 대한 촉각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흔히 우리 세대의 경쟁 상대는 인간이 아닌 AI라고 말한다. AI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문장은 이미 익숙하다. 그러나 AI가 지배하는 세상에 대한 명확한 미래를 그려보는 것은 익숙지 않다. 그래서 두렵고 무섭다.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의 연사로 참여한 메러디스 부르사드 뉴욕대 교수는 AI 그 자체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대신 AI 뒤에 있는 사람, AI의 알고리즘을 만드는 사람을 경계해야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흔히 AI를 들으면 터미네이터 혹은 엑스마키나 같은 영화에 나온 민머리의 매끈한 인간을 닮은 기계를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상상에 불과하다. AI는 컴퓨터 과학의 한 종류일 뿐이다. 상상을 포괄하는 광의의 AI가 아닌 협의의 AI는 수학이다. 숫자를 빠르게 처리하고 경험을 축적해서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더 빠른 처리를 도모한다. 진짜 문제는 AI 자체가 아닌 기술맹신주의(Techno-chauvinism)이다.

AI 기술을 주도하는 인물들을 살펴보자. 앨런 튜링, 마빈 윈스키, 존 폰 노이만, 래리 페이지. 이들은 모두 아이비리그를 졸업한 백인 남성 수학자다. 그들의 동질성은 하나의 시선으로 정의되어 편향성으로 나타나 무의식적으로 기술에 내재된다. 아이디어를 낸 사람 자체가 편견을 갖고 있고 편견은 우리의 사고를 침투한다. 실제로 구글에서 흑인여성을 검색하면 백인여성과는 달리 포르노로 가득 찬 검색결과가 나온다. 그래서 AI 시대 저널리스트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그 뒤에 있는 편견을 지적하고 그 알고리즘에 어떠한 의도가 있는지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보도하는 것이다.

브루사드 교수가 지적한 문제에 깊이 공감한다. 우리가 막연하게 두려워하는 AI도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멀리할수록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이익을 보는 것은 소수의 AI 개발자들이다. 그래서 우린 더욱더 명확하게 AI 현실을 직면해야한다. 한국 사회도 AI 붐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스마트 톨링, 키오스크 등 인간의 노동력을 기술이 대체하면서 AI에 대한 두려움은 더해간다. 그러나 우리가 두려워해야할 것은 기술이 초래할 양극화다. AI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AI를 만드는 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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