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0호부터 2주에 걸쳐 혁신적인 미국 대학을 탐방하고 새로운 대학 교육의 방식을 모색했다. 변화하는 시대와 개인의 다양한 요구에 맞춰 이들은 자신만의 존재 이유와 생존 방식을 찾아가고 있었다. 해외취재를 마무리하며 국내 대학 교육 현실을 진단했다.

 

대학 교육 획일화, 원인은 낮은 재정 자립도와 다양성 인정 않는 사회 분위기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 교정 내에 설립된 고대 방식의 혼천의(渾天儀). 고대의 지혜를 나타낸다. 김수현 기자 rlatngus9809@ewhain.net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 교정 내에 설립된 고대 방식의 혼천의(渾天儀). 고대의 지혜를 나타낸다. 김수현 기자 rlatngus9809@ewhain.net

“2030년까지 전세계 대학 절반이 사라진다.” 세계적인 미래학자 토머스 프레이(Thomas Frey)가 예상한 대학의 미래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대학에서 가르치는 지식의 가치가 낮아져 미래에는 기계가 대학을 대체할 수 있다는 이유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만 하는 교육 방식으로는 대학의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진단이다.

이런 흐름에 따라 기존 체제를 벗어난 새로운 대학이 주목받고 있다. 본지가 9월 방문한 미국 미네르바스쿨(Minerva Schools at KGI)과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ge)가 그 예다. 미네르바 스쿨은 캠퍼스 부지 없이 학생들이 7개국을 돌아다니며 구글, 카카오 등 각국의 기업과 협업하는 학교다. 미국 세인트 존스 칼리지의 학생들은 4년간 고전 200권을 읽으며 토론한다. 교수는 일방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지식을 외우는 시험도 없다.

대규모 강의식 수업을 고수하는 한국 대학도 이처럼 새로운 교육을 시도할 수 있을까. 대학 관계자들은 한국 대학의 변화 가능성을 두고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한국은 다양한 형태의 대학이 나올 수 없는 환경이라는 지적이다. 그 원인으로는 교육부의 규제를 꼽았다.

올해 한국대학신문이 주최한 ‘혁신 교육의 미래’ 세미나에서 삼육대 김성익 총장은 “대학 운영 전반에 걸친 규제가 혁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교육부 정책에 따르면 미네르바 스쿨 형식의 학교는 한국에 도입되기 어렵다. 교지, 즉 캠퍼스가 없는 학교는 대학으로 허가가 나지 않을 뿐더러 온라인 수업은 전체 강의의 20%로 제한돼있기 때문이다.

강동범 교무처장은 대학 재정 악화를 원인으로 지적했다. 소규모 토론식 수업과 같은 혁신 교육을 시도하기 위해선 더 많은 수업 공간과 교원이 필요하다. 사립대학 등록금이 약 10년째 동결된 상황에서는 실현하기 어려운 조건인 것이다. 강 처장은 “질 높은 수업을 맡을 전임 교원을 초빙하기 위한 예산이 부족하다”며 “재정 확보를 위해 지원하는 정부 사업은 목적이 있어 정부가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조일현 교수(교육공학과)는 다양성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언급했다. 그는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한국에서 평등과 공정의 의미가 현재 독특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네르바 스쿨처럼 특수한 사람이 특수한 조건에서 특수한 교육을 받는 걸 한국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냐”고 되물었다. 교육 획일화로 대학이 서로 비교하고, 설립 이념과 상관없이 경쟁하게 돼 자율성을 잃어가는 악순환이 일어난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미네르바 스쿨이나 세인트 존스 칼리지가 미국 하버드대(Harvard University)가 되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는다”며 “다름이 공존할 수 있을 때 대학이 설립 이념에 맞게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다”고설명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대학 내 변화를 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고려대 교양교육원이 실시하는 교양과목 ‘자유정의진리’가 대표적이다. 이 과목은 ‘플립드(Flipped, 뒤집어진) 클래스’로 운영돼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미리 학습한 후 수업 시간에는 토론만 한다. 교수는 자신의 전공과 상관없는 주제의 수업을 맡게 된다. 프랑스어 전공 교수가 과학 교양을 가르칠 수도 있다. 이 수업은 동영상 강의, 퀴즈, 토론 순으로 3차시로 진행된다.

이 과목의 강의안 14개를 제작한 고려대 조재룡 교수(불어불문학과)는 “교양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의 수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취지였다”며 “70명씩 수업해야 하고, 그룹별 토론법을 수정하는 등의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계속 나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일현 교수는 ‘좋은 대학에는 좋은 교수와 학생이 있지만 위대한 대학에는 위대한 학습자만 있다’는 문장을 언급했다. 그는 “교수든 학생이든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며 “대학이 정부로부터 재정적으로 자립하고,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 분위기 확립될 때 새로운 교육적 시도 허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취재를 마치며: 대학의 존재 이유 새롭게 정의할 때

“사회는 너무나 빨리 바뀌는데 대학은 왜 그대로일까? 분명 난 대학생인데, 시험 기간마다 고등학교 4학년인 이 기분은 뭘까? 나는 학문을 원해서 대학에 온 걸까, 단순히 졸업장이 필요한 걸까?”

시작은 ‘고글 폐지 논란’이었다. 학교에서 20학번부터 <고전읽기와글쓰기>와 <우리말과글쓰기>를 합치고 컴퓨터와 수리적 사고를 위한 수업을 개발하겠다고 하자, 학생들 사이에서 찬반 의견이 쏟아졌다. 학교를 ‘취업 양성소’로 키우려고 한다는 반응, 컴퓨터 언어를 배우는 것도 새로운 사고방식을 배우는 방법이며 대학도 시대의 요구에 따라가야 한다는 반응으로 갈렸다.

양측 모두에 설득돼 갈팡질팡하는 와중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생겼다. 그리고 3년 동안 외면해왔던 위의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생으로서, 대학생이라서 할 수 있는 대답을 찾고 싶었다.

다소 큰 물음을 향해 한 발짝씩 다가가기 위해, 우리가 익숙하던 학교와 가장 다른 형태의 대학들을 찾아가 봤다. 대형 강의실은커녕 캠퍼스조차 없는 학교, 세계적으로 청년 실업난인 마당에 “4년동안 책만  읽히겠다” 선언한 학교. 인생에 있어 하나의 모험으로 대학을 선택한 이곳의 학생들을 보며 나름대로 얻은 답은, ‘대학의 존재 이유’가 결코 하나로 정의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교육 철학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교육과정에 있어서 책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s at KGI)의 창립자 벤 넬슨(Ben Nelson)은 한 컨퍼런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식 혹은 직업만을 위한 지식은 시대가 지나면 쓸모없어지기 때문에 응용이 가능한 실용 지식을 가르치고자 했습니다. 이 목적에 가장 부합하는 방식이 ‘위대한 고전 프로그램’입니다.”

위대한 고전 프로그램은 20세기 초 미국 시카고 대학(University of Chicago)에서 도입한 교육법이다. 전공 분야 없이 고전 도서를 읽으며 공부하는 방식이다. 시카고 대학은 이 교육법을 도입해 세계적인 대학으로 도약했다. 세인트 존스 칼리지(St. John’s College) 입학처 애드리언 월렌(Adrian Wallen) 차장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의 커리큘럼은 미국이 오래전부터 가르쳐왔던 방식이에요. 고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죠. 그걸 현대로 가져온 거예요.”

둘째, 소규모로 토론한다. 미네르바 스쿨에 재학 중인 조예영씨는 전통적인 대학 시스템에서 수업을 통해 지식을 주입하고, 외우고, 다시 뱉어내는 과정이 ‘고등학교의 연장선같다’고 느꼈다. 미네르바 스쿨의 창립 멤버인 준코 그린(Junko Green)씨는 “미네르바 스쿨의 학생을 ‘전방위적으로 준비된 세계 시민’으로 길러내기 위해서는 ‘정형화된 지식’이 아닌 ‘생각하는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가장 적합한 방식이 토론이라는 것이다.

대학을 선택한 학생들은 이미 문해 능력과 정보 습득 능력을 갖추고 들어온다. 이들을 상대로 단순히 지식 전달을 목적으로 삼는 대학은 어쩌면 학생들을 과소평가하는 것 아닐까. 두 학교의 학생들은 분명히 자신이 이곳에 앉아있는 이유를 알고 있는 눈빛이었다.

당장 한국의 모든 대학이 혁신학교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공부하고 가르쳐오던 방식에 대해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에 이것이 가장 잘 맞는 방법일까’ 질문할 필요가 있다. 삶의 유형이 점점 다양해지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한 대학이라는 시스템. 늘 하던 대로 한 길만 따라가기보다는 대학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공동체를 원하는지 선명하고 명확하게 결정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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