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산다] 21세기 모던 걸의 기쁨과 슬픔
[읽어야 산다] 21세기 모던 걸의 기쁨과 슬픔
  • 김미현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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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현 교수(국어국문학과)

‘오래된 미래’라는 말은 역사적으로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될 수 있지만, 독서와 관련해서는 흔히 고전(古典) 속에 이미 삶의 지혜가 담겨있다는 뜻으로도 확장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때의 ‘오래’가 점점 더 빨라져서 ‘덜 오래’가 되는 듯하다. 100년이 아닌 10년 전 책도 ‘고전 아닌 고전’ 취급을 받을 정도로 독서 트렌드가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전의 생명력 자체가 짧아진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의 제목에 있는 ‘21세기’는 무책임한 시대 표기로 다가올 수 있다. 2000년대 초반과 2019년 현재의 ‘모던 걸’의 존재 양상 자체가 엄청나게 다르기 때문이다. 가령 2000년대 초반에 ‘칙릿 소설(chick-lit)’ 붐을 일으켰던 정이현 소설과 2019년 현재 가장 주목받는 신예작가 장류진의 ‘회사 소설’의 차이가 그 사례가 될 듯하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2019년 10월 출간된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추천사를 쓴 정이현은 “오늘의 한국 사회를 설명해 줄 타임캡슐을 만든다면 넣지 않을 수 없는 책”이라고 쓰고 있다. 정이현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나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보여주었던 2000년대 초반 모던걸들의 ‘웰빙식 연애’가 2019년 장류진의 소설에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거나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정이현의 칙릿 소설 속 모던 걸들은 낭만적 사랑을 믿을 정도로 순진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웰빙형 삶을 위해 연애의 진정성을 믿는 척’할 정도로는 나름 낭만적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등단작으로서는 이례적으로 40만 건 조회 수를 기록했다는 장류진의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는 철저하게 연애가 아닌 일, 낭만이 아닌 생존, 감정이 아닌 경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소설화하고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중고거래 사이트 앱을 개발·운영·관리하는 소규모 스타트업 회사에 다니는 젊은 여성이다. ‘나’는 최근 지나치게 많은 중고물품을 올리는 앱 사용자를 감시 차원에서 직접 만나게 된다. 그런데 카드회사 직원인 그녀는 클래식 음악 애호가인 회장의 명령으로 유명 음악가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켰지만 회장의 인스타그램보다 먼저 그 사실을 공지했다는 이유로 월급을 1년 동안 카드 포인트로 받는 소위 ‘갑질’을 당한다. 때문에 월급 대신 받은 카드 포인트로 새 물건을 구입한 후 그것을 중고 사이트에서 거래해 현금화하고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직장에서도 남성 앱 개발자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던 ‘나’는 “회사에서 울어 본 적이 있다”는 공감대를 그녀와 형성하게 된다. 그녀와 같은 ‘을’들에게 최대의 덕담은 “사시는 동안 적게 일하시고 많이 버세요”라는 말이다.

물론 이 두 21세기 모던 걸들의 사정 자체가 미취업자들에게는 사치일 수 있다. 울 수 있는 직장이라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런 회사소설은 또 다른 21세기형 한국 소설의 유형인 ‘백수소설’과는 사뭇 다른 경향을 보여준다. 또 다른 수록 단편인「 백한 번째 이력서와 첫번째 출근길」에서 드러나듯이 이런 직장인의 애환은 “‘제발 합격이었으면’ 하는 바람이 아니라 ‘설마 합격이겠어’ 하는 자조”를 백번 겪어야만 가능한 기적에 해당한다. 백번의 슬픔을 통과한 후에 얻은 한 번의 기쁨이 바로 21세기형 일자리의 세계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 한 번은 ‘첫번째’일 뿐이다. 이 슬픔 또한 백번이 예정되어 있다.

더 나아가 젊은 여성이기에 겪는 젠더 폭력도 그녀들의 ‘슬픔’을 가중시킨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섹스는 “첫째, 하고 싶은 사람과/ 둘째, 하고 싶을 때/ 셋째, 안전하게 하자”가 원칙이었다. 하지만 장류진의「 새벽의 방문자들」에서는 여주인공이 새로 이사 간 집에서 “여대생 오피×스텔 24시 항시 대기”라는 문구를 보고 성매수를 하기 위해 잘못 찾아온,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던 옛 애인과의 조우도 감당해야 할 정도이다.

스탕달은 소설을 “큰 거리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울”이라고 정의했다. 21세기 한국 사회가 “큰 거리”라면, 정이현 혹은 장류진의 소설은 “거울”로서 기능한다고 할 수 있다. 그것도 그냥 거울이 아니라 현미경이나 망원경, 내시경에 더 가깝다.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듯하지만 어느 거리에서 누구를 비추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오래된 미래’로서의 정이현 소설과 ‘미래인 현재’로서의 장류진 소설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소설의 제목이 ‘일의 슬픔과 기쁨’이 아니라「 일의 기쁨과 슬픔」인 것도 아주 적절해 보인다. 이 순서의 차이만큼 자본주의는 진화했고 젠더 폭력도 교묘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읽으면 읽기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기에 위험할 수도 있는 독서로의 초대장이 바로 이 소설들이다. 초대장은 늦지 않게 오라고 보내는 것이다.

김미현 교수(국어국문학과)

*본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한국현대소설 분야의 연구와 강의를 담당하며 현재 국어문화원장을 역임 중이다.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면서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여성소설과 페미니즘」, 「판도라 상자 속의 문학」, 「여성문학을 넘어서」, 「젠더 프리즘」, 「번역 트러블」 등이 있으며,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상 문학평론부문, 팔봉비평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