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의 뿌리를 찾아, 조해진 작가가 전하는 「단순한 진심」
내 이름의 뿌리를 찾아, 조해진 작가가 전하는 「단순한 진심」
  • 배세정 기자
  • 승인 2019.11.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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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단순한 진심」을 집필한 조해진 작가
김미지 기자 unknown0423@ewhain.net

“이름은 집이니까요.”
서영의 두 번째 이메일은 이렇게 시작됐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이랄지 존재감이 거주하는 집이라고 생각해요. 여기는 뭐든지 너무 빨리 잊고, 저는 이름 하나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것이 사라진 세계에 대한 예의라고 믿습니다. ” (「단순한 진심」, 17p)

 

“나는 암흑에서 왔다.”

출생지도, 이름 뜻도 모르는 문주는 자신을 ‘암흑에서 왔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 두 번이나 버려지고 독일에 입양 보내졌지만 여전히 부유하는 느낌이다. 소속된 곳 없이 외로운 생을 살던 그가 아이를 갖는다. 곧 세상에 나올 아이에게 떳떳해지기 위해 ‘문주’란 이름 뿌리를 찾아 한국을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또 다른 외로운 존재들. 그들 사이에 단순한 진심이 전해진다.

7월 출간된 소설 「단순한 진심」을 집필 한 소설가 조해진(교육·99년졸)씨는 “단순한 진심은 생명에 대한 마음”이라며 “문주는 새로운 생명을 기다리면서도 사라지는 생명을 보내주며 애도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2004년 등단한 이후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해온 조해진 작가를 12일 망원역 근처 어느 카페에서 만났다.

“원래 소설이란 장르가 소외된 사람들을 다루잖아요. 지금까지 이름이 없고, 사회에 자기 자리가 없는 사람을 많이 다룬 것 같아요. 그래서 유독 이주민, 디아스포라, 입양인 같은 사람들에 관심을 가졌어요. 아마 제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었고, 저 자신도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한다는 느낌을 느껴서 그런 것 같아요.”

조 작가는 졸업 후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글을 읽고 쓰고 싶은 마음에 본교 대학원에 입학해 국문학을 공부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2년 후인 2004년 <문예중앙>에 「여자에게 길을 묻다」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등단 후에도 생계유지를 위해 약 7년 동안 소설을 쓰며 한국어 강사로 일했다. 지금까지「 로기완을 만났다」,「 여름을 지나가다」,「 빛의 호위」 등을 쓰며 주변인에 관심을 가져왔다.

「단순한 진심」의 주인공 문주는 자기 이름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에 돌아온 인물이다. “이름은 집이니까요”라는 말이 문주를 설득하는 데 한몫했다. 한국에 온 문주는 사람 이름뿐만 아니라 지명(地名)에도 관심을 갖는다. 이태원(梨泰院)은 ‘조선 시대 겁탈당한 여자들이 아이를 낳고 모여 산 이타인의 마을’, 아현(兒峴)은 ‘아이들의 시체를 묻었던 매립지’…. 조 작가는 “문주는 누군가에 의해 구원된 적이 있고, 자신도 한국에서 누군가에게 기꺼이 손을 뻗어 생명을 지켜주려는 인물”이라며 “때문에 자신의 이름만 알면 임무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작가로서 독자가 이 소설을 읽을 때 자신의 이름이나 사랑하는 누군가의 이름의 뜻을 되새겨봤으면 좋겠어요. 기자님 이름은 뜻이 뭐예요? 그 이름을 지었을 때 순간의 분위기까지 생각해봤으면 하는 게 저의 현실적인 바람이에요.” 조 작가의 이름은 ‘바다의 보배’란 뜻을 가졌다.

조 작가는 소설을 쓸 때 다른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걸 선호한다고 말했다. 보통 집이나 동네 카페에서 글을 쓰지만 퇴고할 땐 다른 지역에 가기도 한다. 그는 “소설은 혼자 쓰지만 논리적이어야 한다”며 “다른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고 글을 고치고 싶어 멀리 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혼자 돌아다니며 생각하는 습관은 대학생 때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생 때 학교 바깥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은 봉원사인 곳도 자주 갔고, 수색이라는 곳도 자주 갔어요. 수색은 지금 신도시인데 그때는 서울 같지 않은 서울이었어요. 저수지도 있고 나무도 많았죠. 제 등단 작품도 수색을 배경으로 한 젊은 노동자 부부 이야기에요. 중간고사 나 기말고사 끝나면 야간버스 타고 다른 지역에 갔다고 돌아다니고 돌아오고 그랬어요. 그동안 혼자 생각을 많이 했죠.”

조 작가가 교육학과에 입학했을 때의 꿈은 국어 선생님이었다. 고등학생 때 좋아하던 국어 선생님처럼 재밌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교육학을 주전공으로 하면서 국문학을 부전공했다. 하지만 막상 학교 들어가니까 공부가 재밌지도 않고 하고 싶은 것도 딱히 없었다. 임용고시는 치르지도 않았다. 그는 “글 쓰는 건 좋아했지만 뭘 해야겠다고 생각하지 못한 채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대학교 4학년 때 교지가 주는 문학 공모전에 지원해봤어요. 그래서 교지에 제 소설이 실렸는데, 식당이나 교실에 교지를 읽고 있는 학생이 많더라고요. 모두 제 글을 읽고 있는 건 아니었겠지만, 다른 일을 할 때 보다 흥분되고 기분이 좋았어요.”

대학교를 다니는 4년 동안 문학을 알게 됐다는 조 작가는 “학교 도서관을 좋아했다”며 “4년 동안 읽는 즐거움을 알아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재작년까지는 본교에서 ‘창작의 이론과 실기’, ‘문예창작론’을 강의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너무 열심히 하더라고요. 정말 보장할 수 있어요. 그래서 학점 주기 너무 힘들었어요. 0.1점 차이로 성적이 나뉘는 게 비인간적이잖아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라’고 강조한 조 작가는 “모두가 똑같은 트랙을 돌 수는 없다”고 말했다. “정말 하고 싶으면 무모하게 도전해보면 좋겠어요. 물론 생계를 해결하는 건 본인이 해야죠.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하고 싶다면 무모해져도 좋아요.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가도 돼요. 후배들이 너무 열심히 살아서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가끔 뭐 하나를 채우지 못하더라도 그게 자기 인생의 결핍이나 실패가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