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각이화] 순간의 선택이 이끈 하와이 라이프
[이시각이화] 순간의 선택이 이끈 하와이 라이프
  • 김서형(커미·16)
  • 승인 2019.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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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형(커미·16)

지상 낙원에서 전공 업무를 배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지난 9월부터 하와이 지상파 한국어 방송국 KBFD TV에서 1년의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KBFD는 한류의 선구자로도 볼 수 있는데, 해외 최초로 한국 드라마에 영어 자막을 삽입하여 방송하기 시작한 곳이다.

하와이에 대한 연고는, 23년 전 부모님의 신혼여행지였다는 것과 2년 전 2주간 경험한 교수인솔 해외학습 프로그램이 전부였다. 다른 인턴 자리는 이것저것 재면서 쉽게 결정 내리지 못하던 내가, KBFD 인턴 공고를 본 순간 바로 이끌렸다. 간절했다. 너무 가고 싶었다.

한국은 내가 너무나도 사랑하는 고국이지만 동시에 나의 현실이다. 내가 스트레스성 폭식을 한다는 사실을 지난 학기에 처음 인지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살이 정말 많이 쪘다. 성취감과는 별개로 건강을 망가뜨린 나 자신을 보며 자기 연민을 느꼈다. 한발 물러나 나를 지켜보니 이 악물고 악바리로 인생을 살아가는 내가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까지 몰아세운 걸까, 뭐 때문에 이렇게 아등바등 살까, 하와이로 도망가서 내 삶을 되찾고 싶었다.

 

사무실에서 사흘 연속으로 무지개를 발견해 무척이나 즐거운 표정이다.
사무실에서 사흘 연속으로 무지개를 발견해 무척이나 즐거운 표정이다.

지난 50일간의 서사는 정말 굉장했다. 집을 알아보던 중 120만 원 사기당할 위기에 처한 게 3번, 회사 엘리베이터에 갇히질 않나 하루는 밤사이에 세탁기가 터져 아랫집에서 올라와 문을 쾅쾅 두드렸다. 집 연기 탐지기가 오작동해, 한 시간가량 90dB의 경보음을 라디오처럼 듣고 앉아있기도 했다. 내가 사실은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아닌가 의심됐다. 친구들이 “네 하와이 라이프 시트콤, 웹툰 내라” 하자 말이 씨가 된다며 더는 나도 두려우니 그런 소리 하지 말라 했다. 전에 없던 일들이 하루건너 연달아 일어나니 내가 여기 잘못 왔나 싶은 것이다. 우주가 온 힘을 다해 “너 선택 단단히 잘못했다”고 알려주려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도 올바른 선택을 내렸다고 생각하냐 묻는다면, 그렇다. 좋다. 그냥 좋아. 안 좋은 기분도 쨍쨍한 햇빛 밑에 시원한 바람 한 번 싹 불어주면 다 풀려 버린다. 아침 출근길에 지나는 공원의 풀 내음이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고, 그 어떤 심각한 인생 고민도 동료와 와이키키 해변을 거닐며 풀어내면 특별한 순간이 된다. 나는 분명 한국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곳을 도피처로 여기고 있어서인지 그 만족감이 배로 다가오는 듯하다.

회사에 나오기 시작한 첫 주 토요일, 첫 출사를 나갔다.
회사에 나오기 시작한 첫 주 토요일, 첫 출사를 나갔다.

이곳에서는 매 순간을 오로지 나를 알아가는 데에만 투자하고 있다. 나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이런 것도 할 줄 알았구나. 아무 생각 없이 아이처럼 활짝 웃는 나를 발견하고는 내게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 했다. 마치 나를 처음 만난 사람처럼, 처음부터 다시 나를 탐색하고 있다.

와서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나의 충동성이 이 기회를 잡아주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본래 철저하게 계획된 인생을 추구하는 편이다. 깊이 사고하고 결정하는 습관은 늘 내게 득을 불러왔다. 하지만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은 결국 순간의 무모함이다. 모두가 뜯어말린 여정이다. 이곳에 오기까지 무수히 많은 인터뷰, 비자 절차, 거주지, 생활비 등 정말 많은 산을 넘어야 했다. 23살에 타지에서 자립하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와이 생활 일주일, 뭐라도 해 보자며 블루라인 셔틀을 타고 혈혈단신 떠났다.
하와이 생활 일주일, 뭐라도 해 보자며 블루라인 셔틀을 타고 혈혈단신 떠났다.

그렇기에 미래는 내다보려 하지 않는 게 좋다. 그랬더라면 나는 머릿속으로 이것저것 생각만 하다 지레 겁을 먹고 포기했을 거다. 뭐든 일단 지르고 보자. 뒤처리는 미래의 내가 다 하게 되어있다. 그 거대한 불확실성에 압도되어 시작도 전에 나를 좌절시키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늘 올곧은 선로만을 따라 달려온 인생이라 할지라도, 탈선은 필수 불가결하다. 일탈에서 오는 해방감이 우리를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일탈, 너무 두려워하지 말기를. 인생은 때때로 쉬어 가야 한다. 망설이던 일이 있다면 눈 딱 감고 한 번만 질러보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가끔의 충동은 우리 인생에 이롭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