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마이클 바이비(Michael D. Bybee) 교수를 9월17일 2학년 천문학 수업이 끝난 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교수가 직접 말하는 세인트 존스 칼리지 교육을 들어봤다.

세인트 존스 칼리지 마이클 바이비(Michael D. Bybee) 교수
김수현 기자 rlatngus9809@ewhain.net

 

- 어떤 이유로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교수를 하게 됐나

가르치는 일을 한 지는 23년 정도 됐다. 주립 대학에서 일하다가 연구 중심 종합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굉장히 작고 특이한 교양 대학에서 나를 고용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더라. 세인트 존스 칼리지였다.

종합 대학에서는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일을 했다. 같은 분야만을 계속해서 연구했던 것이다. 이렇게 공부를 하다보니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됐다.여러 분야를 접하고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이곳에서 일한다고 하니 가족들은 반대했다. 남은 인생의 전부를 내 책장에 있는 책들만 가르치며 보내고 싶지 않다고 아내를 설득했다.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가면 배워보지 못했던 분야를 배우고 도전할 수 있다고, 책장의 한 구역만이 아닌 책장 전체에 있는 책들을 다루고 싶다고 했다. 결국엔 ‘참 이상한 사람’이라며 허락해줬다.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평생 과학 실험, 수학은 하지 않았을 거다. 다른 사람들은 이상한 도전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이곳에서 일하는 게 너무 재밌다.

-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는 교수 한명이 여러 분야를 가르치는데, 교수 입장에서 이러한 방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학생들이 수학, 과학, 외국어, 음악 등 모든 분야의 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교수들은 당연히 학교가 다루는 과목 전부를 가르칠 줄 알아야 한다. 이런 면에서 세인트 존스 칼리지는 교수들에게 안전 구역(comfort zone)은 절대 아니다. 자신이 대학에서 전공한 과목이 무엇이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전공한 과목을 가르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다. 많이 배웠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하면 이들은 수업 내용을 절대 기억하지 못한다. 그대신 학생들은 교수에게 “내 생각이 맞는 거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냐”며 칠판 앞에서 자신의 논리를 전개했던 순간, 그때 나눈 질문들과 학문적 고민은 절대 잊지 않는다.

우리의 역할은 학생들의 머리에 지식을 욱여넣는 것이 아닌 그들이 직접 지식을 얻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런 깨달음을 얻은 순간,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교수가 이 교실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될 필요가 없고, 학생들이 나를 가르칠 수 있도록 어떤 면에서는 가장 멍청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 한국 대학에서는 교양 교육보다는 전공 교육에 집중하고 실용 학문이 인기다. 아무래도 취업 때문이다.이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취업은 중요한 문제다. 세인트 존스 칼리지를 졸업한 학생들도 많이 고민한다.

기업 담당자들은 우리에게 소통능력이 중요한 중간 매니저 역할이 어울린다고 하는데, 사실 처음부터 중간 매니저로 일할 수는 없지 않나. 실용 학문을 배우지 않고 전공도 없으니 결국 신입 사원 면접을 볼 때는 “그래서 할 줄 아는 게 뭐냐”는 말이 나온다. 세인트 존스 칼리지를 졸업한 내 딸도 비슷한 문제를 겪었다. 고전들을 읽어서 똑똑하지만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전문성이 없다더라.

하지만 우리는 어떤 분야에 진입하더라도, 상황을 곧바로 이해하고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는 힘을 키웠기 때문이다. 인문학은 철학 뿐만이 아닌 천문학, 수학, 화학, 물리학, 문학, 역사 등 넓은 분야를 다룬다. 그래서 인문학적으로 교육된 사람은 멍청하기 어렵다. 어떤 분야의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해도 웬만해서는 다 이해한다. 사회에서 중요한 능력이다. 기업에서 바로 사용될 수 있는 실용 학문은 사실 빠른 시일 안에 습득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 세인트 존스 칼리지 교육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거다. 어떻게 배울지, 어떻게 생각할지, 어떻게 중요한 결정들을 내릴지 고민하는 시간을 준다. 특정한 무언가를 배우는 게 아니라 배우는 방식을 생각하게 한다. 가장 중요한 건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사색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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