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지고 있다. 수능 날의 냄새, 수능 날의 바람이 느껴진다. 어느덧 올해 수능 디데이가 한 자릿수밖에 남지 않았다. 다들 보는 수능 무슨 유별인가 싶겠지만, 집에 수능 샤프가 세 자루나 되는 나로서는 매년 이맘때쯤 항상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내 고등학교 모의고사 성적표엔 4등급에서 8등급까지 가지각색의 등급이 적혀있다. 공부를 잘하지도, 공부에 관심이 있지도 않았던 때다. 어쩌다 수능은 평소 실력보다 훨씬 잘 봐서 지방에 있는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내 첫 대학이다.

나와 맞지 않는 전공, 본가에서 왕복 4시간이나 걸리는 먼 거리, 그리고 이유없는 군기는 나와 그 대학을 멀어지게 했다. 대학에 입학한 지 한 달 정도 지났을까, 점점 학교에 가지 않았고 결국 자퇴서를 냈다. 수능 공부를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나 싶었다.

고등학생 때는 제대로 해보지 않았던 수능 공부를 20살에 시작했다. 혼자 인터넷 강의로 기초부터 차근차근 개념을 배웠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였던 터라 수학은 중학 수학부터 배웠다. 매일매일 거의 10시간 이상을 공부했다. 처음 제대로 해보는 수능 공부니, 성적은 오를 수밖에 없었다. 경기의 한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내 두 번째 대학이다. 

입학은 했지만 아쉬웠다. 좀만 더 하면 남들이 말하는 ‘인서울’ 대학에 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주팔자에도 욕심이 많은 터라, 가족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결국 두 번째 대학도 한 학기만 다니고 휴학했다. 이번엔 성적이 안 오를 수도 있으니 자퇴는 두려웠다. 위의 공부 과정을 또 반복했다. 문제를 많이 틀리면 걱정이 극에 달해 울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이화는 내 세 번째 대학이 됐다.

4학년이 된 지금 생각해보면 대학이 뭐라고 그렇게 수능에 매달렸나 싶다. 아니, 나뿐만 아니다. 전국이 수능에 주목한다. 영어 듣기평가 시간에는 군사 훈련과 비행기 이·착륙도 멈춘다고 하니 우리나라가 얼마나 대입에 신경을 많이 쓰는지 알 만하다.

최근엔 정시 확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수시의 고교 서열화 문제, 교육 비리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정시 확대를 해결책으로 내세웠다. 한국의 교육 열기가 뜨거운 만큼 찬반 논쟁도 치열하다. 하지만 과연 대학 입시제도 변경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수시를 늘리든, 정시를 늘리든 동일한 문제가 기저에 자리잡고 있다. 바로 학벌주의다. 대입정책의 딜레마는 대학을 잘 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학벌주의 때문에 생긴다.

내가 가고 싶은 과도 정하지 않은 채 인서울을 위해 그 젊은 20살, 21살에 수능 공부에 매진한 것, 다른 친구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막 놀기 시작할 때 나는 불안해서 놀지도 못한 것. 이 또한 학벌주의 때문일 것이다. 이 학벌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대학 입시제도의 문제점을 영원히 해결할 수 없다. 

좋은 대학 가면 성공할 수 있다던데, 잘 모르겠다. 아니 애초에 성공이 무엇인지 모호하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삶을 성공한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공부 못하던 과거의 나를 부정하고 싶지 않다. 사람마다 가고 싶은 길도, 가는 속도도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사회에 살았다면 내 삶 또한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수능은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학도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내가 행복해지는 길을 찾을 수 있는 내가 되는 게 중요하다. 벚꽃이 예쁘게 피던 봄, 공강 시간에 잔디에서 치킨을 시켜 먹던 20살의 나에게 돌아갈 수 있다면 이런 말을 하고 싶다. “그냥 하고 싶은 거 해, 대학? 굳이 애쓰지 않아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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