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이화문예상 수상작 전문 - 가작
제1회 이화문예상 수상작 전문 - 가작
  • 정리=배세정 기자, 임유나 기자
  • 승인 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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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작

「꽃」(시조)

-박서영(커미·17)

 

 

첫눈의 새하얀 색 고스란히 간직한 채

각자의 꽃봉오리 찬란하게 만개하니

달근한 봄날의 내음 아득하게 퍼지네.

 

 

 

 

가작

「하오 하오 好好」(소설)

-류효정(영문·14)

 

 

 

시우와 유월이 중국을 다시 찾은 건 5년 만의 일이었다.

여행은 한 새벽 내내, 평소였다면 하지 않았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일삼던 시우가 유월에게 다시 중국에 가보고 싶지 않냐고 물은 것이 시작이었다. 그때, 유월은 학부를 막 졸업한 참이었고 시우는 원하던 회사에 최종 합격해 입사를 앞두고 있었다. 언젠가 꼭 유월과 함께 다시 중국을 찾으리라 다짐했던 시우기에 유월의 졸업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마음이 조급했다. 이 계절을 놓치면 언제 또 시간을 맞춰 함께 여행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여행 얘기를 쉽사리 꺼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시우 자신은 이미 취직이 된 상태이고 유월은 아니었다. 스물다섯의 나이에 그건 생각보다 큰 차이이자 큰 문제였다. 이제 막 졸업장을 받아 든 유월의 입장에서, 그 이름도 찬란한 대기업 합격증을 손에 쥐고 허허실실 여행 이야기나 꺼내는 시우가 다소 꼴불견일 수도 있는 것이었다. 하여 시우는 그 밤 내내 일생 동안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는 수다쟁이 역할을 자처하고 슬며시 여행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최근에 같이 면접 스터디하던 사람이랑 노래방을 가게 됐는데 그 사람이 글쎄, <낙화>를 부르는 거 있지.” 

“자우림 <낙화>?”

그릇의 한쪽 구석, 다 씻겨 나가지 않은 세제 거품을 흐르는 물에 조용히 씻어내던 유월이 움직임을 멈추고 시우에게 되물었다.

“응, 신기하지. 그 노래를 노래방에서 부르는 사람은 또 처음 봤다니까.

…근데 너 뭐해? 물소리 들리는 것 같은데?”

“아 응, 거품이 조금 남아서… 마저 닦느라고. 이제 다 했어.”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시우의 쾌활한 음성에 덩달아 에너지가 솟아 귀찮게 해치웠던 그릇들을 다시 뒤적인 유월이었다. 요리를 하는 것은 좋아해도 치우는 것은 영 귀찮아하는 게으름 탓에 유월의 집에 쌓인 그릇들은 언제나 묘하게 미끈거렸다. 오랜만에 뽀득뽀득 소리 나게 한번 닦아보자는 마음으로 싱크대 앞에 섰건만 시우가 전해오는 이야기는 유월을 다시 찬 바닥 위로 드러눕게 했다. 낙화, 우리, 중국.

<낙화>라는 노래를 우리 안으로 슬며시 들여놓았던 사람은 너였는지, 나였는지. 유월은 가물거리는 기억을 쫓아 허둥댔다. 바닥에서는 한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곡차곡 쏟아지는 무더운 열기조차도 밑바닥 찬 기운 앞에선 무용했다. 유월의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검게 물든 흰자위 위로는 하나의 이어폰을 나누어 낀 채 아무 말 없이 노래를 듣던 시우와 제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런 잘못도 나는 하지 않았어요. 왜 나를 미워하나요? 난 매일 밤 무서운 꿈에 울어요. 왜 나를 미워했나요? 꿈에서도 난 달아날 수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우리 중국에 가보지 않을래?”

 

입술의 고요한 명령을 따라 <낙화>의 노랫말을 그리던 유월은 전혀 생각지 못한 시우의 여행 제안에 달뜬 눈을 가느스름히 떴다.

통화하는 내내 시우의 수다 뒤편에 숨어든 말의 그림자를 가만 응시하던 유월이었다. 시우 본인은 자신이 꽤나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여행 얘기를 꺼냈다 생각했겠지만 정작 유월은 일찍이 전화 초반부터 시우의 이상 증상을 알아차렸었다. 말과는 거리가 먼 시우가 아니던가. 유월은 기다림에 몸이 달았지만 부풀어 오르는 기대를 엷은 미소 뒤로 숨긴 채 시우의 용기를 기다렸다. 마침내 무성의 공간에 얹혀 기생하던 낱말들이 시우만의 독특한 음성을 가지게 되자 그림자였던 말은 희뿌연 연기로 변해 허공에 흩날렸다. 일순 무영의 존재로 전락한 시우였다. 유월은 지금 이 순간 한층 더 짙게 혼탁해진 제 긴 그림자가 애달팠다. 대체 어떤 종류의 용기를 기다렸단 말인가.

“응, 그래.”

유월은 왈칵 차오르는 서글픔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덜컥 말문을 열었다.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흔쾌히 제 제안을 승낙한 유월에 시우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같이 가줄 것은 물론 알았지만 이렇게 얘기가 나오자마자 바로 결정을 내릴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더군다나 시우가 알기로 유월은 단 한번도 여행에 흥미를 보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의 유학 경험 탓인지 유월은 어딘가로 떠나는 것이 싫었다. 가능한 오래 한곳에 머무르고 싶었고 알지 못하는 곳은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날 새벽엔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치밀었다. 시우가 제 쪽으로 뻗은 길쭉하고 하얀 팔을 움켜잡고 싶어졌다. 그래서 유월은 선뜻 시우에게 제 여권번호를 주고 비행기 표 값을 이체했다. 당장 모레의 비행기 표를 예약한 시우의 추진력에 새삼 놀라며 시우에게 이런 적극적인 면이 있었나 생각하는 것도 잠시, 아주 오랜만의 비행이 설렌다는 듯 덮고 있던 이불을 걷어차고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시우와 유월은 열네 살의 나이에 중국에서 처음 만났다. 유월은 그해 4월 중국에 막 처음 온 풋내기 유학생이었고 시우는 일찍이 여덟 살에 이미 중국 유학 생활을 시작한, 말하자면 조기 유학계의 베테랑이었다. 그로부터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줄곧 중국에 머물렀으니 시우와 유월은 각각 12년, 6년 동안 중국에서 생활한 셈이다. 물론 유월이 중국에서 산 기간이 그리 길지 않다고는 하나, 가장 예민하고 다감한 시기를 중국에서 보냈다는 점에서 시우와 유월 모두에게 중국은 뭐랄까, 고향 같은 곳이었다. 그런 고향 같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대학에 입학하고 졸업할 때까지 단 한 번도 중국을 다시 찾지 않은 건, 그곳에 대해 그다지 곱게 추억할 일이 별로 많지 않았던 탓이다. 아무렴, 유년시절을 아름답게(맨정신으로!)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허나 시우와 유월이 아주 오랜 시간 의도적으로 중국을 기피한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어린 날의 미성숙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단지 부끄러움 하나로 그 이유를 설명하기에 시우와 유월의 사정은 보다 복잡했다.

*

 

중국행 비행기가 그들의 옛 도시 인근에 위치한 공항에 막 착륙할 때 즈음, 월은 도시의 여전한 분위기에 압도당한 모습이었다. 미세먼지 수치가 아주 위험인데도 불구하고 서울만큼 크게 티 나지 않아 그 위험성을 알 수조차 없이, 하늘은 옛날의 기억과 아주 똑같이 흐리고 침침했다. 도시의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월은 새삼스레 감각의 위력을 실감했다. 오래된 기억은 왜곡되고 미화되고 심지어 조작되기도 십상이건만 오감과 피부의 기억은 그렇지 않았다. 감각의 기억은 그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을 바꾸어 내는 시간의 법칙까지도 보기 좋게 빗겨 나가는 것이었다. 어린 유월이 난생처음 중국 땅에 발 디뎠을 때, 유월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엉엉 울었다고 했다. 쌀쌀한 바람에는 비릿한 바다 내음이 물씬 배어 있었고, 온 도시를 뒤덮은 바다 안개로 사위는 온통 침침하고 습했다. 유월은 온몸을 짓누르는 습기와 찬 기운에 숨이 막혔다고 했다. “그니까 그날 내가 운 건, 겁이 나서가 아니라 질식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인 거야.”라며 유월은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작고 말간 손을 꼭 말아 쥐며 “난 겁쟁이가 아니야!”하고 말하는 것 같은 그 뻔뻔하고도 다부진 치기에 시우는 조용히 웃음을 터뜨렸었다. 

공항버스에 몸을 실은 지 한 시간 남짓 지났을까, 버스 기사는 익숙한 옛 도시의 이름을 두어 번 반복해 말했다. 하차의 때가 가까워졌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설핏 잠에 들었던 시우와 유월은 구겨져 있던 몸을 펴 창가를 바라보았다. 도시는 시간의 경과를 증명하듯 변화와 발전을 거듭한 모습이었다. 곳곳엔 한눈에 봐도 새로 지어진 것임을 알 수 있는 낯선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선 상태였고 잿빛 시멘트 뭉치는 아직 다 가시지도 않은 페인트 냄새를 한껏 발산하며 제 외양을 뽐내고 있었다. 일전과 같은 위도와 경도를 가진 도시라 말할 수 있을까, 유월은 곰곰 생각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지구 축이 약간 기울어 자신이 알던 옛 도시가 훌렁 미끄러지거나 인근 바다로 떠밀려 내려간 것은 아닐지 허무맹랑한 상상 속으로 젖어 들었다. 

“분명 이쯤에서 꺾으면 그 호텔이 있었던 것 같은데…”

주위를 열심히 두리번거리던 시우가 유월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듯 혼잣말을 건네 왔다. 달라진 도시 풍광 앞에 속수무책인 것은 유월도 마찬가지였다. 기억을 더듬어야만 하는 상황이 올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시우와 유월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공간이 주는 묘한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조차도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아는 곳이 하나쯤은, 어디 즈음에는 분명 있으리라는 근본 없는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비좁고 낯선 도시의 문을 두드릴 뿐이었다. 어쩌면 진짜,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유월은 생각했다.

*

 

열아홉. 고등학교 졸업식이 있던 날, 시우는 주변 지인들과의 연락을 일절 끊고 돌연 사라졌었다. 졸업식이 끝나자마자 당일 오후 비행기로 한국으로 간 시우는 “한국 도착해서 연락해”라는 친구들의 말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대체로 말이 없고 조용했던 시우이기에 유월을 비롯한 반 친구들 모두 시우의 반응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졸업식 내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 죽어버린 눈빛으로 모든 것을 응시하던 시우의 모습. 돌이켜보면 수상한 일이었지만 그땐 모든 걸 지나치기에 바빴다. 그러나 시우의 비행기가 마침내 중국의 창공을 벗어나자 메신저 속 시우의 이름은 (알 수 없음)으로 변경되었고 그걸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유월이었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도 대화를 나눴기에 시우의 이름은 채팅방 가장 상단에 위치해 있었다. 제 이름보다도 더 많이 불렀던 그 이름, 더 많이 보았던 그 이름. 그토록 익숙하던 시우의 이름이 순식간에 (알 수 없음)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렇게 시우는 유월에게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시우와 유월의 사이를 익히 알던 사람들은 모두 유월에게 사건에 전말에 대해 물었고 그때마다 유월은 ‘알 수 없다’고 대답했다. 그 이후로 한참 동안이나, 유월의 모든 대화는 시우에 대한 궁금증이 포함되어 있거나, 그것이 전부이거나, 그것으로 귀결되거나, 셋 중 하나였다. 반복되는 질문들에 질릴 대로 질린 유월은 시우를 따라 핸드폰 번호도 바꾸고 SNS도 다 탈퇴를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시우의 갑작스러운 잠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동네의 가장 큰 이슈였다. 그도 그럴 것이 시우와 유월의 동네는 본래가 그 크기도 워낙 작아 집집마다의 사소한 에피소드도 공유되는 곳이었다. 이제껏 별 다른 큰 일 없이 시간에 따라 가뭇 조용히 흘러가던 동네에서 시우의 실종(자의적인 실종이 어디 있단 말인가)은 이러쿵저러쿵 이야기 나누기 좋은 화젯거리였다. 이야기의 골자는 결국 과거 청산, 과거 세탁이었다. 허나 유월은 그 어떤 추측과 소문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 무엇도 정답이 되어 주지 못할 것을 이미 알고 있던 유월이었다.

그렇게 5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유월은 여느 주말과 다름없이 수영장에 다녀와 간단히 맥주 한 캔을 따 토요일 늦은 오후를 즐기던 참이었다.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고, 월의 ‘여보세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대가 유월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내일 같이 야구 보러 가지 않을래?”라고 물어왔다. 

시우였다. 평소에도 함께 야구 직관을 즐겼던 것처럼, 뜬금없이. 그 이야기가 전부였다. 시우는 정말로 내일 같이 야구를 볼지 말지에 대해서만 물었고 유월의 근황에 대해서는 전혀 묻지 않았다. 그동안의 제 사정에 대한 해명도 일절 없었다. 내일은 일이 있어서(일이 없었지만 그렇게 대답해야만 할 것 같았다) 조금 어려울 것 같다는 유월의 대답에 “어쩔 수 없지”하고 쿨하게 대답한 후 전화를 끊을 뿐이었다. 유월은 갑작스러운 시우의 연락에 놀라 멍하니 앉아 까만 휴대폰 화면을 가만 쳐다보았다. 이윽고 어두운 화면 위를 밝게 물들이는 새 메시지 창이 떠올랐고 유월은 그제야 정신을 다잡았다. “그럼 다음 주는 어때?”. 시우의 메시지였다. 시우의 이름이 정확히 명시된 메시지 창. 시우의 이름이 돌아온 것이다.

이름과 함께 무작정 돌아온 시우를 두고 유월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새로이 지어지는 관계인지, 그리운 옛 것인지, 이미 지나가버린 낡은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던 유월의 테두리를 어르고 달래며 시우는 유월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어느새 유월은 모든 고민을 잊고 시우의 매끈한 옆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

 

중국에 도착한 날 저녁은 한바탕 퍼붓고 지나간 소나기 덕에 사방이 온통 축축했다. 시큰한 비 냄새에 흠뻑 취한 시우와 유월은 따끈한 국물이 고팠고 근처 학창시절 자주 찾던 쌀국수 집을 찾았다. 예전과 그대로인 간판과 달리 식당 내부는 전혀 다른 모양이었다. 음식 쪽으로 몸을 기울이거나 시끌벅적하게 웃어 젖힐 때마다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함께 리듬 맞추었던 약간 낡은 듯한 의자는 온데간데없고 튼튼한 네 다리를 뽐내는 새 의자만이 그들을 반겼다. 그때, 변화로 인한 혼란에 앞서는 가장 핵심적인 심상은 음식 맛에 대한 걱정이었다. 쌀국수 맛은 여전할까, 염려와 기대가 뒤엉킨 다소 상기된 표정으로 음식을 기다리던 시우와 유월 앞에 이곳저곳 그을린 흔적이 가득한 익숙한 옛 그릇이 도착했다. 향긋한 냄새와 함께 모락모락 김을 피워내던 쌀국수를 잠시 동안 가만 쳐다보던 시우는 "이따 그 공원에 가보자."라고 말했다. 시우의 말에 침묵으로 동의한 유월은 곧 시우를 따라 그리 크지도 않은 쌀국수 그릇에 고개를 파묻고 먹는 행위에만 집중했다. 행여라도 눈이 마주치면 그게 무엇이든 전부 깨지고 부서져 조각날 것만 같았다. 다만 공원에 가게 되어 다행이라고, 뭐가 다행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마음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유월이었다.

*

열여덟의 치기만큼이나 뜨거웠던 7년 전 여름 어느 날, 시우는 갑작스레 유월에 연락해왔다. 집에 있냐고, 근처로 가겠다고. 그건 사실 질문보다는 통보였다. 대답을 기다릴 틈 없는 다급함의 신호. 전화 자체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시우임을 알기에 유월은 유월의 핸드폰 까만 액정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는 시우의 이름을 목격할 때부터 이미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징조라고, 그리고 주로 이런 종류의 징조는 시우만큼이나 내게도 불길한 것이리라 가늠했다. 

바다를 끼고 길게 늘어진 공원에서 시우는 유월을 기다렸다. 유월은 먼저 나오려면야 충분히 나올 수 있었지만 시우 없이 영문모를 불길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 무릇 모르고 당하는 것이 가장 불행하지 않던가. 유월은 홀로 참담하고 싶지 않았다. 

공원 공터에는 저녁 체조를 위해 삼삼오오 모인 중국인들로 붐볐다. 맨 앞에는 그들의 동작을 이끄는 선생님 같은 사람 한 명과 그 뒤로는 작고 큰, 어리고 늙은 사람들이 어설프지만 익숙한 동작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처음 중국에 갔을 때 가장 놀랐던 건 이런 종류의 화기로움이었다. 인구가 많기 때문인지 중국은 좀체 사람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고, 그래서 피 흘리며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사람이 있어도 다들 모르는 척 지나간다는 이야기로 상상해낸 중국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디에서 온 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해가 지고 밤이 어둑해지면 저 멀리서부터 조용한 웃음을 흩날리며 공원으로 흘러 들어왔다. 익숙한 듯 제 자리를 찾아 일렬로 섰고, 개중 유난히 기쁜 사람은 한 손에 부채를 들고 더 즐거운 춤사위를 자랑했다. 한바탕의 운동이 끝나면 맨 앞의 선생님을 필두로 사람들은 빙글빙글 공터를 돌았다. 중간에는 <어린왕자> 책에서 보았던 바오밥 나무 마냥 크고 두꺼운 한 그루 나무가 홀로 우뚝 솟아 있었고 사람들은 그 나무 주위를 에워싸고 가쁜 웃음으로 경쾌히 걸었다. 그 모습은 참으로 신비한 것이었다. 마치 마을의 오랜 수호신에게 동네의 안위를 부탁하는 제사 같기도 하였고, 나뭇가에 묻힌 이에게 즐거운 안녕을 고하는 장례식 같기도 하였다. 제의적인 목적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건 언제나 신비함을 환기하는 것이었다.

"티엔티엔윈동 하오하오찌엔캉"

 

 

매일매일 운동하여 우리 모두 건강하자. 건강을 소원하는 주문 같은 말을 거점 삼아 사람들은 손을 잡지 않고도 손을 잡은 것처럼 하나의 공간을 거닐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옆에서 시우와 유월이 그들과는 조금 다른 속도로 천천히 걸었다. 시우와 유월의 내면에는 섞여 들고 싶은 마음과 완전히 녹아들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강하게 충돌하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한 발짝 다가갈지 섬세한 주의를 기울이는 와중 먼저 바깥쪽으로 물러선 건 시우였다. 그는 “우리는 이 나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잖아.”라고 말하며 유월을 잡아끌었다.  

열여덟은 그런 나이였다. 나의 경계는 흐릿하지만 우리의 경계는 뚜렷할 때. 나는 몰라도 우리는 알아야만 했던 때. 우리가 아닌 그 외의 것에는 잔뜩 경계하고 초조해할 때. 잠시 잠깐이라도 나와 함께인 것은 나를 가만 맡겨 둘 수 있을 만큼 안심을 주는 것이어야 할 때. 그래서 시우와 유월은 자신들의 우리를 더욱 견고히 하기 위해 같은 움직임을 반복하는 자들과의 거리를 완곡히 유지했다.

세로로 길쭉한 모양을 한 공원의 왼쪽으로는 새카만 바다가 길게 늘어져 있는 한편, 오른쪽으로는 수평으로 곧게 뻗은 차도가 제 긴 목을 자랑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나무를 중심으로 둥글게 돌며 바퀴 수를 점차 늘려갔고, 시우와 유월은 보다 큰 원을 그리며 좁은 보폭으로 느죽이 걸었다. 잰걸음으로 촘촘한 원을 완성시켜가는 사람들은 음험한 바닷속으로 줄지어 투신할 것처럼 바다만을 보고 걷다가도, 어느새 자동차 헤드라이트 불빛이 빼곡한 눈부신 차도만 보며 걷는 중이었다. 이제 차도로 뛰어들 차례라는 듯, 알알이 박힌 빛 구슬에 현혹된 좀비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진하는 것이었다. 역전과 반전을 거듭하는 운동은 그렇게 끝이 없었다. 풍덩 소리나, 끼익하는 소리 없이, 어느 하나 원을 이루는 선에서 이탈하지 않고 위태로운 그리기를 지속했다. 시우와 유월 역시 무한히 원을 그리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다만 불안과 염려에 사무친 점들이 다소 성글게 이어지고 있어 그들의 원은 어딘가 부서지고 또 패인 모습이었다. 암흑과 광명 사이의 경계는 분명하되 그 경계를 넘어서는 건 순식간이었다. 단 한 발짝, 그들은 어둠과 빛을 넘나들며 혼란했다.   

그때, 까만 밤을 흡수해 온통 캄캄해진 바다 위로는 새카만 하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까만 하늘과 까만 바다가 합쳐져 하늘과 바다의 경계는 흐리멍덩했다. 주제를 모르는 바다가 하늘의 지위를 탐하고 있었다. 

“어디부터가 바다일까.”

유월은 가리켜도 제대로 지목할 수 없는 미지의 지점을 향해 애매하게 손가락질했다.

“바다는 자아랄 게 없나 봐. 맨날 하늘을 따라 하잖아. 푸르른 하늘에게선 푸르름을 빌려오고, 지금처럼 새까만 하늘한테서는 칠흑을 빌려오고.” 

오래도록 입을 열지 않고 그저 걷기만 하던 시우의 침묵을 깬 건 유월의 시답지 않은 농담이었다. 그러자 시우는 하늘에 둥둥 둥글게 떠있는 달을 가리켰다. 살짝 지어 있는 달무리 사이로 빼꼼 그 빛을 주장하는 수줍은 달을.

유월은 또다시 바다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그렇지만 바다에도 달은 떠있는 걸.”

 

투명한 수면 위로 또 하나의 달이 파도의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고 있었다. 조금 찌그러지긴 했지만 형태와 무관하게 그것 역시 희박하게나마 빛을 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달은 그곳에도 있는 듯했다. 시우는 허공 위에 고집스레 머물러 있는 유월의 손을 잡은 뒤 유월의 허벅지께로 툭 내려놓았다. 그리고 말했다.

“달 말고, 달무리 말이야. 바다의 달에는 달을 숨겨주는 것이 없잖아.”

그 밤 시우는 무슨 일로 유월을 찾아온 것인지 말하지 않았다. 시우의 어떤 사정이든 가려주는 든든한 침묵 안에서 제 전부를 한껏 숨겼다.

 

*

시간을 비껴간 건 비단 감각만이 아니었음을, 월은 예전 그 모습 그대로인 공원을 보며 불변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수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도, 또 다시 자신 곁에 있는 시우를 가만 바라보며 또 다른 생각에 잠겼다. 시우의 모든 마디에 집중했던 그때를. 달무리로 달을 증명하던 시우의 음성을. 진짜는 언제나 조금씩 가리워져 있는 법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던 시우의 때 이른 슬픈 성숙함을 기억했다. 유월은 언제나 시우가 자신보다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다. 그 점을 동경했고 질투했다. 동경과 질투가 한 데에 어우러져 소란스럽기 짝이 없는 감정을 시우를 향해 쏟아냈다. 시우가 그 감정을 제대로 받는지, 소화하는지 지켜보지도 않고. 수취인이 아닌 배달 자체에 그 의미가 있다는 듯 시우 발치에 제 감정을 쌓느라 여념이 없었다. 유월은 생각했다. 그때 내가 마구잡이로 쌓던 감정들이 시우를 가로막았던 건 아닐까. 시우는 내가 쌓아 둔 감정들에 에워 싸여 더 고독하게 고립되었던 건 아닐까. 제 앞을 가로막은 짐짝 같은 감정들을 치우느라 이토록 늦어버린 건 아닐까. 그렇다면 시우의 지각은 오롯하게 유월 자신의 책임이 아닐지 생각했다. 

월은 한껏 쌓인 낡은 상자들로 인해 묵은 먼지투성이인 제 영토를 쓸고 닦기 위해 한 손에는 빗자루를, 한 손에는 걸레를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시우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마침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이제 다 치웠고 다 닦았다고, 길이 보인다고, 슬며시 미소 짓는 시우를 상상했다. 그리고 지금, 그 길을 따라 오늘의 자신을 찾은 시우를 바라보았다. 시우가 이렇게 늦어버린 건 모조리 다 제 탓이라 생각하며. 그렇다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까. "미안해"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유월은 저도 모르는 제 마음을 가만 살피는 대신 혀뿌리 끝에 대롱대롱 무겁게 달려 있는 말 한 줄의 등을 떠밀었다.

“널 사랑했던 것 같아.” 

적요를 깨는 유월의 고백에 시우는 저도 모르게 졸업여행의 마지막 새벽을 떠올렸다. 

둘 모두 잔뜩 술이 취했던 그 밤, 유월은 새빨간 볼을 하고서는 알코올 향 나는 숨을 새근새근 몰아쉬고 있었다. 오늘만큼은 절대 자지 않고 이 밤을 불태울 거라 장담한 패기가 무색하게 가장 먼저 골아 떨어졌던 유월. 불현듯, 유월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던 시우 자신. 

“월, 유월…나는…” 

시우는 끝맺음을 잊은 말 한 줄이 말줄임표 뒤꼍으로 접어드는 꼴을 우두커니 바라봤다. 어니 더미 속으로 깊이 침잠하는 것만 같은, 발 잃은 제 마음 앞에 무력해졌다. 헐벗은 초라함을, 부끄러움을, 수치를 그가 감당해낼까, 나를 위해 감당해줄까, 시우는 마음을 졸였다.

 

 

 

제 말에 대한 시우의 반응을 차마 지켜보지도 못하고 고개만 떨군 채 시간을 세던 월은 이윽고 모래가 잔뜩 묻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바닷가 쪽으로 발을 떼었다. 그리고 점차 멀리 떨어져가는 유월 뒤로 시우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월로 하여금 진한 그리움을 알게 했던 시우의 음성, 마음을 패고 또 팼던 얄궂은 몸짓. 시우를 안 이후로 어린 유월의 마음에는 파문 같은 주름이 하나 둘 늘어갔다. 

“우리가 처음 함께 밤을 지새웠을 때를 기억해? 그날 역시 우리는 이 도시 안을 헤맸지. 가만 누워있어도 떠있는 것 같았어. 온통 습기로 가득 찬 도시는 물속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우리는 모두 패잔병이었어. 도시는 안개와 물기를 이기지 못했고 우리는 무엇도 이기지 못했지.”

어렵사리 입을 뗀 시우는 제 안에서 썩어가던 묵은 숨까지 모조리 꺼내 놓았다. 앞으로 쏟아질 벅찬 단어들을 위한 미끄럼틀을 마련하듯, 길게 미끈한 숨을 차분히 내뱉었다.

“너를 울게 했던 그 바닷바람과 찬 기운 말이야, 그 축축하고 찝찝한, 이루 말할 수 없는 무거운 꿉꿉함…그건 내게도 있었던 거야. 질식할 것만 같은 두려움도, 그 두려움에 지배당해 응어리진 눈물을 왈칵 토해낼 수밖에 없었던 무력함도. 습기를 잔뜩 머금은 축축한 땅 위로 발목이 절단 난 사람처럼 울었어. 나도. 시멘트 바닥 깊은 곳으로 자꾸 푹푹 빠져대는 것만 같은 내 작고 약한 발목이 야속해서. 누구도 잡아주지 않는 양손의 공허가 애처로워서.” 

유월은 지금도 여전히 비어 있는 시우의 손 한쪽을 잡으려고 제 왼 어깨를 움직이려다 말았다. 갑작스레 찾아 든 다정한 움직임에 관절이 깜빡 놀랬던 것인지 팔이 빠져버린 것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오래 습관성 탈골을 앓아온 유월이었기에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또 한 번 타이밍이라는 이 망할 개념에 대해 생각할 뿐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우습고 졸렬한 것인지, 눈물의 비릿한 냄새는 또 얼마나 귀신같이 잘 맡아내는 비열한 독식자인지. 사랑조차도 다 타이밍이라고, 모든 게 다 타이밍이라는 말로 잔뜩 치켜세워주니 그걸 몰래 흘겨 들은 타이밍이라는 이 망할 녀석이 갈수록 더 위풍당당하고 제멋대로인 것이 아닌가. 월은 타이밍의 두 귀와 두 발을 모조리 잘라 없애 버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가 서슴없이 나를 찾지 않도록, 내가 내 의지를 필요로 하는 때에 장애물이 되어 나타나 나의 의지를 무참히 짓밟고 꺾지 않도록, 가뜩이나 약한 이 한 마음과 작은 의지를 소란스레 헤치지 않도록… 그렇게 발 없는 무엇이 되어 어디에도 가지 못하고 오롯이 한곳에 머물러 단지 우리를 목격하기만 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우는 아프게 혼자였고 익숙한 공허를 견뎠다. 유월조차도 쉬이 침범하지 못하는 제 굳센 테두리를, 가시 박힌 외연을 탓하면서. 그럼에도 오늘은 꼭 말해야지 다짐했던 지난밤을 복기하며 말을 이어갔다. 시우는 오랜 취업 준비 기간 동안 수많은 ‘건설적’이고 ‘효율적’인 버릇을 들였는데 그중 하나는 하루를 가장 알차게 쪼개 쓸 수 있게 하는 To Do List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월과 중국을 다시 찾은 첫날밤, 시우는 유월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마구잡이로 떠올라 제 눈앞에 동동 떠다니는 이미지를 이제 더는 모른 체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글자들의 감긴 두 눈이 번뜩 떠지는 순간이 임박한 것 마냥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어들의 세찬 카운트다운 소리를 가만 듣던 시우는 부르르 떨었다. 그 많은 시선을 어찌 감당하란 말인가. 시우는 이를 위한 효율적인 대비책을 세워야 했고, 지난한 시절 자신의 평범함을 지탱했던 To Do List를 세우듯 유월에게 꼭 해야만 하는 말들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말하자면 To Speak List를 세운 것이다. 하여 시우는 유월의 반응을 자세히 살필 새가 없었다. 탈골된 팔에서부터 연유해 타이밍이라는 지독한 개념에 대한 타념에 빠진 유월을 알아채지 못한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건 결국 이곳의 무거운 습기, 축축한 바닷바람, 꿉꿉한 바다안개 때문인 거야. 내가 느꼈던 것과 같은 질량, 같은 부피의 두려움을 고백한 너를,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나는 내가 느끼는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없었고, 말해지도록 허락되지 않았고. 그러나 너는 단숨에 너를 고백했고, 너를 말했고, 내가 너와 같은지 아닌지 궁금해하지 않았고. 그랬기에 너는 너인 채로 덜컥 내게 들어오면서도 나를 함부로 해치지 않았지. 그 점이 가장 좋았던 게 아닐까. 네가 나를 궁금해하지 않아서. 말할 수 없는 나를 독촉하지 않아서.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나의 가장 깊고 어두운 결 안쪽으로 나를 세게 밀지 않아서.”

유월은 뒤돌아보지도 못하고 제자리에 가만 서있는 자신의 굳은 몸뚱어리를 내려다보았다. 제 온몸을 휘감은 시우의 성실한 고백을, 거친 표피를 뚫고 한없이 적셔 들어오는 물기 어린 마음을 차마 어찌하지도 못하고. 그리고 끊어진 줄 알았건만 쉬지 않고 이어진 인연에 대해 생각했다. 헤어진 연인을 바라보는 것 같은 이 거리감은 무엇인가. 애틋하고 서글픈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가. 들키고 싶었지만 들키면 어쩔까 전전긍긍했던, 나도 모르던 나의 마음은 어디에 두고 온 걸까. 어느 시간, 어느 공간에 두고 왔기에 이토록 생경한가. 

어릴 적 시작한 유학 생활 때문일까. 시우도 유월도 중국에서 한국으로 갈 때는 “나 한국 가!”라고 말했고 한국에서 중국으로 갈 때는 “나 중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했다. 시우와 유월을 아는 사람도 “중국은 언제 다시 들어가?”라고 물었고, “한국은 언제 다시 나와?”라고 했다. 그러니까 시우와 유월에게 고향 다운 고향은 모국어의 진원인 한국이 아닌 셈이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중국을 고향으로 여기는 것도 아니었다. 고향으로 생각하기엔 중국에 대한 애착 같은 것이 심히 부족했다. 굳이 따지자면, 그들은 다만 서로를 고향 삼아 살아낸 것이었다.

*

“사람은 냄새로 기억된대.” 

아주 먼 옛날, 핸드폰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시우가 마치 신기한 걸 발견한 것 마냥 한껏 들뜬 목소리로 내뱉은 말. 

그 후로 유월은 안 그래도 길었던 샤워시간을 두 배로 늘렸다. 샴푸 향기가 습하고 비린 공기를 이길 수 있도록 샴푸 거품을 머리칼 위에 한가득 얹어 놓고서는 흘러내리는 샴푸 가락에 따가워지는 눈을 견뎠다. 매일매일 때를 미는 탓에 빠르게 헐거워지는 때밀이 수건을 보며 유월의 엄마는 참 이상한 일이라 했다. 때밀이를 쓰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건만, 사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이 벌써 이렇게나 닳았다고, 나이를 먹으니 피부가 두꺼워지기라도 하는 거냐며 울적해했다. 갈수록 철면피가 되어가는 게 노인의 의무냐며 서러워하는 엄마의 투정을 유월은 짐짓 모른 체했다. 갑자기 안 밀던 때를 미는 까닭까지 모조리 들켜버릴까 무서워진 유월이었다.

*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시우는 고등학교 시절 함께 어울렸던 몇 친구들의 근황을 물었다. 줄줄이 이어지는 타인의 소식들, 그중 몇몇은 단지 호명되었을 뿐인데도 가벼운 웃음을 환기했다. 

 

 

"아무래도 그러는 게 좋겠지."

응어리진 시우의 마음이 조금은 헐거워진 것일까, 시우는 또 한 번 질문 같지 않은 말로 넌지시 유월에게 제가 동창들에게 연락을 취할 것임을 알렸다. 한국에 도착해 핸드폰을 켜자마자 요란한 글자로 시우를 환영하던 아이들, 몇 년 만에 소식을 전해온 시우에게 이것저것 캐물을 법도 한데 누구도 그러지 않았다. 다만 시우의 취업도 축하할 겸 한번 얼굴이나 보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 덕에 친구들은 오랜만의 모임을 약속했다. 

약속 당일, 친구들과 다 같이 모이기 전 시간이 조금 남은 유월은 먼저 약속 장소 부근 카페에 와 책을 좀 읽을 참이었다. 햇살 쬐는 것을 좋아하던 유월이 모두가 기피하는 창가 자리로 자연스레 눈길을 두었을 때, 창가 밖으로 끈질긴 시선을 던지고 있는 시우의 뒤통수를 발견했다. 자꾸 쓰다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했던 동그랗고 어여쁜, 가슴 아픈 뒤통수.

유월은 시우가 앉아있는 테이블 위를 톡톡 노크했다. 시우가 싱긋 웃었고 유월은 마치 약속된 만남이라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그 맞은편에 앉았다. 

“뭘 그렇게 봐 뭐 재밌는 거 있어?”

유월이 무신경하게 물었다. 한낮의 햇볕을 품은 시우의 음성이 듣고 싶었다. 

“저기서는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해. 그리고 바로 그 옆에는 앳되어 보이는 여자 셋이 춤을 춰. 또 이 앞에서는 이어폰을 꽂은 한 남자가 혼자서 스텝을 밟아.” 

...

“월아, 여긴 나무가 너무 많다.”

유월은 제 가방 깊숙한 곳 잠들어 있는 편지 한 통을 꽉 쥐었다.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로 떨려오는 마음을 삭히며 터져버릴 것 같은 말 주머니 앞섶을 꼭 여몄다. 이제, 우리를 둘러싼 풍경은 달라졌다. 우리의 마음이 달라졌다.

달라졌나,

사라졌나,

사라져 없어졌나.

*

시우에게

하오하오(好好)라는 말 참 웃기지. 좋아 좋아, 혹은 그래그래…

 

 

 

그 말을 하는 사람은 달콤한 말에 현혹되어 거칠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처럼 다소 멍청해 보이기도 하고, 좋지 않으면서도 좋은 척 배려랍시고 위선을 떠는 유약한 사람처럼 지겹게 느껴지기도 하고. 있잖아 사극 드라마 같은 거 보면 ‘무엇무엇하오’라는 말투를 쓰잖아. 그래서인지 나는 “하오하오”라는 말을 들으면 중국어인 줄 알면서도 자꾸 한국어가 겹쳐져 생각이 나. 

“...하오, ...하오.”처럼

말 줄임표를 가득 안고 중요한 부분은 모조리 생략한 미완성의 말처럼, 가쁜 숨을 들이쉬며 자그맣게 내쉬는 한탄처럼… 그래서 미련과 감정을 잔뜩 남기는 호흡처럼 느껴져. 어떤 드라마였는데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한테 "은애하오"라고 말했어. 드라마 제목도, 배우도, 시기도, 무엇 하나 뚜렷이 기억나지 않는데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접어 둔 숨이 팔딱 뛰어오른 순간이 선명해. 끊어진 숨결이, 잦아들다 못해 정지된 박동이 불끈 생동하던 순간이. 

처음 ‘은애’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말이야, ‘은애’의 ‘은’자가 숨을 은(隱) 자인 줄 알았어. 그래서 ‘은애’라는 말이 참 우습다 생각했지. 기어코 고백할 거면서, 완전히 다 숨기지도 못하고 끝내 말해버릴 거면서 왜 은애라고 할까. 근데 그래서 좋은 거 있지. ‘당신도 모르게 당신을 이토록 애끓게 사랑하고 있소. 허나 더 이상 숨겨지지 않아 이렇게 말하오.’라고 말하는 것 같은 이 단어가, 몰래 한다고 해도 ‘몰래’가 되지 않는 그 사랑이 우스워서 좋은 거 있지. 은애(隱愛)라는 낱말이 실제로 있는 세상에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단숨에 ‘은애하오’라고 뱉을 수 있는 때에 살고 있으면 좋을 텐데. 그래서 당신에게 숨기기 위해 온 힘을 다했지만 결국 이렇게 실패하고 말았다고, 완벽히 숨기지 못하고 결국 말해버려 미안하지만 당신을 절절히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구구절절한 마음이 단어 하나에 다 표현되면 참 좋을 텐데. 한낱 온점에 마음을 숨기고, 쓰디쓴 철회를 일삼는 아픈 버릇이 없는 삶이면 더 좋을 텐데. 

그래서 한국어가 아닌 것처럼 말해. 하오하오, 다 좋다고, 다 괜찮다고. 괄호 없이 말해.

한국인이 아는 중국어 중 가장 유명한 말 있잖아, 띵호와. 근데 사실 세 글자 중에 맞게 발음된 건 하나 없다? ‘띵호와’가 아니라 ‘팅하오’잖아. 자음도 모음도 다 엉망진창이야. ‘호와’와 ‘하오’도 그래.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달라. 모음이 약간만 빗겨 나갔을 뿐인데 의미는 전혀 달라져. 중국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중국어로 결코 "좋다"를 말할 수 없는 거야. 근데 우리는 알잖아. 우리는 중국어로 말할 수 있잖아. 근데 왜 하지 못했을까. "하오"라고 말하지 못했을까.

넌 왜 내게 "하오"라고 말하지 못했니,

넌 왜 네게 “하오"라고 말하지 않는 나를 묻고 따지지 않았니.

 

 

 

 

가작

「참새를 잡았다」(소설)

-김유송(국문·18)씨

 

 

 

 

어제도 손목을 그었다. 머릿속에서 나는 몇 번이나 죽었다. 힘을 주어 칼을 잡고, 손목을 긋는다. 붉은 선이 그려진다. 왈칵 피가 쏟아진다. 피가 손목을 타고 흐른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바닥에 눕는다. 계속해서 흐르는 피에 등이 젖는다. 따듯하다. 나른해지는 기분에 눈을 감는다. 그리고 죽는다. 죽는 걸 상상하는 건 쉬웠다. 나는 매일 죽는 걸 생각했고 그럴 때마다 기분이 꽤 좋아졌다. 그러나 나는 죽지 못했다. 며칠 전에는 정말 죽으려 했다. 유서를 남기고, 칼을 꺼냈다. 책상에 앉아 왼팔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창백한 살가죽에 정맥이 푸르게 비쳤다. 오른손에 칼을 쥐었다. 그리고 손목을 그으려 했다. 그런데 문득 겁이 났다. 죽는 게 겁이 났던 게 아니다. 아픈 게 무서웠다. 생살이 찢기었던 순간이 떠올랐다. 잊었던 고통이 살아나 손목께에서 펄떡였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당장이고 칼을 집어던지고 싶었다. 그래도 죽고 싶어서 나는 칼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칼끝이 손목에 닿았다. 칼날의 모서리가 서늘하다. 차가움만으로 나는 죽을 것 같았다. 칼끝이 살을 파고들었다. 아팠다, 아파서 더 이상 힘을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견딜 수 없어서 칼을 떼었다. 손목에는 희끄무레한 선이 생겼다. 피는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매일 손목을 그었다. 내가 알게 된 사실은 두 가지였다. 사람 피부는 생각보다 질기다는 것, 그리고 나는 죽을 용기조차 없다는 것. 내 손목엔 보이지 않는 칼자국만 늘어났다. 어제는 처음으로 피를 보았다. 칼자국을 따라 피가 맺혔다. 흐르지 않고 그대로 굳어가는 피는 생각보다 붉었다. 그리고 예뻤다. 그래서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희미하게 손목 위를 스쳐 지나간 죽음의 색을 언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전화를 받았다. 언니는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저를 잊으신 줄 알았어요.”

서운한 목소리였다. 언니는 붉은 살이 올려진 초밥을 젓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도톰한 살점을 간장에 살짝 적신 후 한 입에 초밥을 삼켰다. 오물거리며 밥알을 짓이기는 언니의 입술은 붉었다. 

 

“죄송해요. 그동안 많이 바빴어요.”

나는 미안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실은 죄송하다는 것도, 그동안 많이 바빴다는 것도 모두 거짓말이다. 나는 언니가 나를 잊기를 바랐고 내가 언니를 잊기를 바랐다.

 

 언니는 예쁘기로 학교에서 유명했다.  언니가 지나갈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언니를 바라보았다. 말로만 들었던 언니를 처음 캠퍼스에서 보았을 때, 나 역시 언니를 돌아볼 수밖에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언니를 바라보는 일은 즐거웠다. 언니는 지각이 잦았다. 수업이 시작한 후에야 언니는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헐레벌떡 강의실로 뛰어갔다. 언니는 매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지만 수업 시간에 졸지 않은 날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기 딱 5분 전에 언니는 귀신같이 잠에서 깨어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누구보다 먼저 강의실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언니는 정문에서 몇 분 거리에 있는 튀김집을 자주 갔다.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튀김은 김말이었다. 언니는 당면 안에 들어간 깻잎을 특히 좋아했다. 언니는 술도 곧잘 마셨다. 금요일 밤이면 언니는 기분 좋게 취해 정문 앞에서 콜택시를 불렀다. 언니의 애인들은 손에 든 명품 가방이 바뀌듯 자주 바뀌었다. 그 남자들은 하나같이 큰 키에 얼굴이 제법 반반했다. 그들은 언니를 보러 학교 앞까지 찾아왔고, 언니 허리에 팔을 두른 채로 몇 분이고 캠퍼스를 거닐곤 했다. 언니는 늘 웃고 있었고, 그래서 행복해 보였다. 언니를 바라보는 건 곧 나의 행복이 되었다. 나는 매일 언니를 보고 또 보았다.

 언니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까이에서 본 날은 마지막 공연을 하던 날이었다. 나는 연극 동아리원이었고, 보잘것없는 배역을 맡았다. 나에게는 대사 한 줄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저 주인공의 죽음에 엉엉 울기만 하면 되었다. 연기도 변변찮을 뿐더러, 대사 한 마디도 제대로 외우지 못하는 내가 연극 동아리에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는 잘 울었다. 굳이 배역에 몰입하지 않아도, 슬픈 상황을 떠올리지 않아도 눈물이 흘렀다. 나는 나라서 슬펐다. 내가 슬퍼서 나는 그 누구보다 슬프게 울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잘 울어도 조연은 조연이었다. 무대의 조명은 나를 비춘 적이 없었고, 어두운 귀퉁이에서 훌쩍이는 조연을 눈여겨 보는 관중은 없었다. 무대가 끝나고 나를 찾아오는 관중들은 지인들뿐이었다. 마지막까지 그럴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언니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무대 인사가 끝나자마자 언니는 관중석에서 뛰쳐나왔다. 마치 나를 보기 위해 티켓을 산 사람처럼 언니는 무대 위로 성큼 올라왔다. 그리고는 내 앞에 섰다. 내가 바라보기만 했던 사람이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서 멍하니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니는 예뻤지만 내가 알던 언니가 아니었다. 

“연기 너무 잘 봤어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슬프게 울 수 있어요?”

언니가 땀에 젖은 내 두 손을 꽉 쥐었다. 언니의 손가락은 거미 다리처럼 길고 가늘었다. 그리고 지나치게 서늘해서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저는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어요. 저도 그렇게 울어보고 싶어요.”

언니는 미소 짓는 얼굴로 울고 싶다고 말했다. 그 얼굴이 무서워서 나도 모르게 언니의 손을 뿌리쳤다. 

“아, 미안해요. 저도 모르게.......”

언니는 머쓱하다는 듯이 웃었다.

“나중에 밥 한 번 살게요. 연락 주세요.” 

언니는 핸드백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리곤 북하고 찢어 종이 한 장을 내 손에 쥐어주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서 있는 동안 언니는 무대를 내려갔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제목도 기억나지 않는 동화의 한 장면이었다. 언니는 공주님이었고, 나는 눈망울이 큰 소녀였다. 언니는 눈물로 만든 목걸이를 갖고 싶어 했다. 그래서 몽둥이로 나를 때렸다. 나는 울고 또 울었다. 시녀들은 내 옆에 앉아 거미줄로 만든 그물로 떨어지는 눈물을 한 방울 한 방울 받았다. 그때부터 나는 언니가 무서웠다. 언니와 혹시 마주칠까 두려웠다. 언니의 인기척이 느껴질 때면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도망쳤다. 나는 온 힘을 다해 언니를 피했다. 그러자 언니는 나를 찾아왔다. 꿈을 꾼 지 일주일 정도 지난 후였다. 언니 얼굴을 보지 않은 지도 딱 그 정도가 되었다. 여느 날처럼 7시 반에 지하철역에 도착했고, 8시 반에 지하철에서 내렸다. 그리고 늘 그랬듯이 3번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올라가거나 내려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가만히 서 있었다.  그는 환한 햇살 아래에서 줄곧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림자에 가려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언니다. 황급히 뒤를 돌아 5번 출구로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급하게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더욱 빨리 걸었다. 5번 출구 쪽에 가까워졌을 때, 쿵하고 누군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봐야 하나 잠깐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 나는 계단을 급히  뛰어올라 갔다. 길을 한참 돌아 정문을 향해 걸었다. 가는 길에 테이크 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카페에 들렀다. 달달한 걸 먹고 싶었다.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쿠폰을 확인했다. 1개만 더 찍으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공짜로 먹을 수 있었다. 오늘은 밀크티를 마시고 내일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섯 사람 앞에 서있는 손님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카페 사장은 손님에게서 카드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학생, 그런데 손은 왜 다친 거야? 손등이 다 까졌네.”언니는 웃으며 말했다.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졌지 뭐예요.” 이번엔 뒤를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미친 듯이 뛰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문을 열었다. 강의실은 텅 비어 있었다. 맨 앞자리에 앉았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학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이 되자 교수가 들어왔고, 나는 노트북을 펼쳤다. 교양은 이미 두 개나 철회했다. 모두 언니를 보려고 신청했던 교양이었다. 남은 건 전공 수업밖에 없었다. 이제 언니를 영영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통 수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시계만 계속 힐끗거렸다. 어느덧 수업이 끝나기 5분 전이었다. 교수는 강의실 뒷면에 걸어진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였다. 그 시계는 보통 시계보다 항상 늦었다. 오늘은 몇 분이나 늦게 끝날까 생각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맨 끝 자리에서 검고 무언가가 끄덕끄덕 움직이고 있었다. 언니가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로 졸고 있었다. 서둘러야 했다. 바로 가방을 챙겨 강의실을 나왔다. 수업이 두 개나 연달아 있었지만 도저히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학교 근처의 편의점에 들렀다. 배가 고팠다. 점심을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진열대에는 먹을 게 한가득 늘어져 있었다. 매주 화요일 점심에 나는 참치마요 삼각김밥을 먹었다. 다른 맛은 먹지 않았다. 평소처럼 참치마요를 찾았다. 그러나 참치마요만 보이지 않았다. 언니다, 언니야.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언니는 지금 여기에서 나를 보고 있다. 나를 기다리고 있다. 언니는 나를 보기 위해 남아 있는 참치마요를 모조리 샀다. 언니는 “우린 좋아하는 삼각김밥도 같네요?” 언니는 이렇게 말하며 웃을 것이다. 그리고 되물을 것이다. “학교 앞 튀김집이나 갈래요? 제가 살게요. 가장 좋아하는 튀김이 뭐예요?” 나는 “김말이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 것도 사지 않은 채로 편의점을 나왔다. 한 번도 타지 않은 버스를 타고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갔다. 다음날 나는 휴학계를 냈다. 

     

“휴학을 했다고?”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입 안에서 오징어회가 자꾸만 미끄러졌다.  

“휴학하는 동안 뭐했어?”

“매일 손목을 그었어요.”라고 말하려다 씹히지 않은 살점과 함께 입 안으로 삼켰다.

“고시 공부요.”

언니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놀란 듯이 물었다. 

“그럼 거의 3년 동안 고시 공부만 한 거야?”

 

“네.”

“잘 되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왼쪽 손목이 시큰해졌다. 

“미안.”

언니는 미안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였다. 할 말이 없어진 언니가 와사비를 젓가락으로 뭉갰다. 간장이 어느새 질척해졌다. 언니는 1년 전에 고시를 패스했다. 인스타 피드 속 언니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고시 한 방에 패스! 축하 기념으로 친구들과 한 잔’ 네온사인 효과로 반짝이는 텍스트 아래서 언니는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언니가 시험을 친 날, 나도 시험을 쳤다. 우리는 같은 날, 같은 문제를 풀었다. 언니는 붙었고, 나는 떨어졌다. 그 때부터 나는 매일 죽는 걸 상상했다. 언니는 젓가락을 탁 하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나를 바라봤다. 

 

“조금만 하면 붙을 수 있을 거야, 힘내!”

밝은 표정, 밝은 목소리였다. 웃겨서 웃음이 났다.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매일 죽는 상상이나 하다가 죽을 것이다.

“맛있는 거 먹고 힘내자. 먹고 싶은 거 다 말해. 언니가 다 사 줄게.”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언니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언니 때문에 나는 매일 죽는 상상을 해. 언니 때문에 나는 매일 손목을 그어. 언니 때문에 나는 매일 언니를.......

 

“언니.”

“응?”

“저 3년 동안 언니한테 연락 한 번 안 했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잘해주시는 이유가 뭐예요?"

언니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태연히 답했다.

 

“3년 만에 네가 나를 찾아 주었잖아, 그래서.”

이번엔 내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3년 만에 나를 찾은 이유가 뭐야?”

언니는 미소 짓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무서워졌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고 입 안이 말랐다. 축축해진 머릿결을 넘겼다. 목을 축이려 물 컵을 집으려 했다. 순간 언니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그리고 꺾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예쁘네.”

내가 언니를 찾은 이유를 언니는 알고 있었다. 실은 나는 언니가 줄곧 보고 싶었다. 언니가 건네준 종이를 나는 버리지 못하고 반듯하게 접어 다이어리 사이에 끼워놓았다. 3년 동안 나는 매일 종이를 폈다가 접었다. 처음으로 손목에 피를 본 날, 언니가 더욱 보고 싶었다. 언니가 “예쁘네.”라고 말하는 걸 듣고 싶었다. 그렇게 말해줄 사람은 언니밖에 없었다. 그래서 언니가 손목을 꺾어 놓아도 나는 좋았다. 관절이 뒤틀려 아파도 나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죽고 싶지?”

손목을 놓아주며 언니는 물었다. 눈물이 맺힌 채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도와줄까?”

언니의 서늘한 손가락이 붉은 선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눈물이 쏟아졌다. 언니는 사케 한 병을 주문했다. 언니는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다. 나는 언니가 따라주는 술잔을 연거푸 들이켰다. 언니에게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을 들려주었다. 무엇을 어디까지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웃고 있는 언니의 얼굴뿐이다. 언니는 자꾸만 흐릿해져 갔다. 마지막 술잔이 채워졌을 때, 언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새까매졌다. 그리고 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열심히 살았네, 그럴 필요 없는데?”

     

눈을 떴을 때 나는 온통 어두컴컴한 방에 있었다. 식탁 위에 전등 하나만이 나와 언니를 비추고 있었다. 나는 엎드려 있었고 언니는 바로 옆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치즈와 조그만 칼이 놓인 접시가 있었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가만히 엎드린 채로 힘겹게 고개를 들어 언니를 바라보았다. 

 

“일어났어?”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가 생긋 웃었다. 

“기억나?”

자꾸만 눈꺼풀이 감겨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언니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너 죽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손목도 그었잖아.”

언니가 손을 뻗어 칼을 쥐었다. 그리고 천천히 치즈를 잘랐다. 한 번의 칼질에 치즈가 잘려나갔다. 

“손목이 이렇게 부드러우면 죽는 것도 쉬울 텐데.”

언니는 치즈를 집어 입에 넣으며 다시 물었다.

 

“얼마나 세게 그어야 네가 죽을까?”

언니의 손에서 번뜩이는 칼날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망가야 한다. 도망가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머리 위에 누군가 올라서 있는 것 같았다. 그가 뜀박질할 때마다 골이 울리고 속이 울렁였다. 도무지 힘을 줄 수가 없었다. 사지가 도막난 것처럼 나는 가만히 누워있었다. 언니는 시체처럼 늘어진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왼팔을 식탁 위에 두었다. 훤히 드러난 손목에 자살의 흔적이 붉었다. 언니는 내가 그은 선 옆에 칼끝을 대었다. 그리고 손목을 그었다. 붉은 선이 두 개가 되었다. 

 

“이 정도로는 죽을 수 없어. 피가 흐르지 않잖아.”

언니는 새로 그은 선 옆에 다시 칼을 대었다. 그리고 힘을 주어 손목을 그었다. 붉은 선이 세 개가 되었다. 모두 길이가 같았다. 그러다 마지막 선이 길어졌다. 피가 손목을 가로지르며 흘렀다. 

 

“이 정도로는 죽을 수 없어. 피가 더 많이 나야해.”

언니가 칼을 치켜들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칼을 든 손이 손목 바로 위에서 멈추었다. 언니는 칼을 식탁 위에 놓았다. 그리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눈앞에 언니의 얼굴이 보였다. 언니는 웃고 있었다. 방 안이 온통 캄캄해서 언니의 얼굴이 공중에 떠있는 것 같았다. 

 

 

 

“왜 그렇게 열심히 살았어? 이렇게 죽을 건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울고 있었다.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에 눈가가 찐득했다.

“네가 날 스토킹했던 거 알고 있었어. 그냥 내버려두려고 했어. 그런 녀석들은 많았거든. 그날도 아무 생각 없이 연극을 보러갔어. 그런데 울고 있는 너를 본 거야. 너는 지금껏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슬프게 울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네가 좋았어.”

 

언니가 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 언니의 눈동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눈앞이 온통 까맸다.

“너처럼 울고 싶었거든. 나도 너처럼 울고 싶어.”

 

언니는 고개를 돌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방에서 굵은 밧줄과 흰 헝겊을 꺼냈다. 언니는 밧줄로 내 손목을 묶고, 헝겊을 입에 매었다. 

“네가 들려준 이야기 재밌었어. 하긴 열심히 산 사람들의 이야기는 항상 재밌지. 열심히 살기 싫어서 열심히 살아야 한다니. 웃기지 않니? 그런데 나는 그것조차 할 수 없었어. 열심히 살 수 없었어. 왜냐고? 열심히 살 필요가 없었거든. 네가 열심히 해서 얻었던 것들, 네가 열심히 해도 얻을 수 없었던 것들이 내겐 너무 쉬웠어.”

 

언니는 식탁을 한 바퀴 돌아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칼을 손에 쥐었다. 

“재밌는 거 알려줄까? 난 매년 장학금을 받아. 내 통장엔 매 학기 돈이 들어와. 학점이 잘 나오든 거지같든 상관없어. 그런 거 나한텐 필요 없거든. 너는 수업시간마다 잠이나 자는 내가 우스웠겠지. 나는 네가 더 우스웠어. 그렇게 공부해도 장학금 한 번 받지 못하는 네가 너무 우스웠어. 미래가 기대되는 인재? 그런 건 없어. 미래가 보장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만 있을 뿐이지.”

언니가 웃었다. 언니의 웃음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난 매일 웃어, 매일. 왜나고? 사람들이 우습거든. 보고만 있어도 웃겨서 웃음이 나. 대학 다니면서 가장 웃겼던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알아? 시험 치고 질질 짜는 사람들이야. 시험 좀 못 보면 어때? 앞으로도 시험은 보고, 보고 또 볼 텐데 말이야. 아, 시험 잘 보면 좋지 않냐고? 시험 잘 보면 뭐해. 어차피 시험 치는 인생은 우스운 인생인데.”

 

언니가 내 목에  칼을 대었다. 죽음이 손목에서 목으로 바짝 다가왔다.

“그럴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나을 텐데.”

언니는 칼을 떼지 않은 채로 계속 말했다.  

“네가 우는 걸 보면서 궁금해졌어. 애는 왜 이렇게 우는 걸까. 나는 매일 매일을 이렇게 웃고 있는데. 그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 너는 그냥 네가 슬픈 거야. 죽지 못해 열심히 죽어가는 스스로가 슬픈 거야, 그렇지? 그래서 죽고 싶은 거지? 손목을 긋고, 긋고 또 그어도 죽지 못하는 네가 그냥 죽어버렸으면 좋겠지?”

 

 

나는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내저었다. 언니는 예상했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리고 날카롭게 각을 세운 칼을 목에서 떼었다. 칼을 떼자마자 목에 핏방울이 맺혔다.

 

 

"내가 재밌는 이야기 해줄게. 이야기가 끝나면 너는 죽는 거야. 이야기를 하는 동안 뭘 해도 돼. 도망가도 되고, 숨어 있어도 되고, 그래! 나를 죽여도 돼. 하지만 이것만 기억해, 이야기가 끝나면 너는 죽어."

     

“참새 다리는 투명해.”

언니가 말한다. 언니는 와인을 한 모금 들이킨다. 투명한 유리잔에 붉은 방울이 맺힌다.  

 

“나는 참새 다리가 그렇게 투명할 줄 몰랐어. 멀리서 볼 때는 몰랐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다리가 투명하더라고.”

언니가 나를 본다. 내 두 팔은 뒤로 묶여 있다. 피가 통하지 않아 손목이 저릿저릿하다. 언니를 부른 건 내 인생 마지막 실수일지도 모른다.  

“내가 참새를 잡은 적 있거든. 참새 잡아본 적 있어?”

 

언니가 묻는다. 대답할 수 없다. 입에 재갈이 물려있다. 어제 언니를 부른 건 내 마지막 실수이다.

     

“기숙사에서 살 때였어. 그 날은 어쩐지 밖에 나가기 싫었어. 기숙사식으로 한 끼를 때우려 했어. 식당은 사람이 없어 조용했어. 식당 의자에 앉아있는데 참새를 봤어. 참새는 종종거리며 걷다가 날아올랐어. 그리고 유리에 머리를 박았어. 참새가 나가 떨어졌어, 다행히 죽지는 않았어. 참새는 일어나 다시 머리를 박고 또 박았어. 사생 두 명이 참새가 머리를 박는 걸 보았어. “쟤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죽을 것 같아.” 라고 말하며 그 둘은 참새를 지나쳐 걸어갔어. 나도 참새가 죽을까봐 방으로 돌아갔어. 1시간을 참새가 죽기를 기다렸어. 머리가 박살이 난 참새를 누군가 치워주기를 바랐어. 다시 식당에 갔어. 참새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어. 더 이상 날아오를 힘이 없었는지 참새는 두 다리로 걷고 있었어. 참새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참새의 뒤를 쫓아갔어. 참새는 도망쳤어.”

      

팔다리의 감각이 서서히 돌아온다. 쉴 새 없이 울리던 머리도 잠잠해진다. 주먹을 쥐었다 핀다. 피가 도는 게 느껴진다. 서서히 몸을 일으킨다. 의자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넘어진다. 두 팔이 묶여 있어 몸이 휘청인다. 오른쪽 다리에 힘을 주어 균형을 잡는다. 비틀거리며 뒤를 돌아본다. 어둠밖에 없다. 도망쳐야 한다, 비틀거리며 나는 달린다. 

      

“참새의 뒤를 밟았어. 참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어. 참새를 쫓는 동안 생각했어. 내가 참새를 도와주는 게 맞는 건가? 알 수 없었지만 참새를 쫓았어. 참새는 금방이라도 심장이 터져 죽을 것 같았어. 나는 천천히 참새의 뒤를 밟으며 참새가 죽지 않기를 기도했어.”

     

나는 앞만 보고 달린다. 언니의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언니는 아주 느리게 걷고 있다. 어둠에 익숙해졌는지 무언가 조금씩 눈에 보인다. 좁은 복도다. 양 옆에 문들이 늘어서 있다. 가장 가까운 문 앞에 선다. 구형 문고리이다. 문을 열어야 하는데 두 손이 묶여 있다. 바로 옆에 있는 문 앞에 선다. 구형 문고리이다. 그 앞의, 앞의 문도 그 옆의, 옆의 문도 구형 문고리이다. 내가 열 수 있는 문은 없다. 나는 다시 앞만 보고 달린다. 얼마쯤 달렸을까. 벽이 보인다. 그리고 빛이 보인다. 빛이 열린 문틈 사이로 새어나오고 있다. 묶인 몸으로 문을 밀친다. 문이 열린다. 천장에 전구 하나가 걸린 네모난 방이다. 방 한 가운데에는 동그란 탁자가 놓여있다. 웬 종이 뭉치들이 탁자 위에 흩어져 있다.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진다. 구석으로 몸을 피한다. 언니가 방에 들어온다. 왼손에 칼을 쥐고 있다.  

     

“참새는 휴게실로 들어갔어. 나는 문을 닫고, 창문도 모조리 닫았어. 참새가 도망가면 안 되니까. 휴게실 안에는 나와 참새만 남았어. 그리고 나는 참새를 잡기 시작했어. 참새는 쉽게 손에 잡히지 않았어. 참새는 나를 피해 날다가 뛰다가 했어. 나는 참새를 계속 따라갔어. 나와 참새는 바보같이 휴게실 안을 빙빙 돌았어.”

     

언니는 문을 닫는다. 구형 손잡이다. 나는 이제 다시는 저 문을 열 수 없다. 갇힌 것이다. 언니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뛰어온다. 나는 도망간다. 언니를 피해 뛰어간다. 언니와 나는 시계 방향으로 달린다. 언니는 쫓고 나는 쫓긴다. 머리가 다시 아파온다. 몸이 비틀거린다. 발을 헛딛는다. 넘어진다. 바닥에 그대로 부딪친다. 아픔에 벌레처럼 몸을 웅크린다. 이를 악물고 어깨를 비틀어 일어선다. 언니의 숨이 바로 목덜미에서 느껴진다. 등 뒤에서 바람 소리가 들린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숙인다. 등허리가 따끔하다. 뒤를 돌아본다. 바닥에 핏방울이 떨어져 있다. 언니를 바라본다. 언니가 싱긋 웃으며 칼을 흔든다. 피가 칼날을 타고 언니의 손목까지 흘러내린다. 언니는 몸을 왼쪽으로 튼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달려온다. 나는 달려간다. 언니와 나는 이제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 

     

“이렇게 하다간 도저히 참새를 잡을 수 없을 것 같았어. 마침 휴게실 안에 담요가 있었어. 나는 담요를 들고 참새를 쫓았어. 참새를 구석에 몰고 담요로 덮치려 했어. 참새는 더욱 빨리 달렸고, 더 높이 날았어. 그리곤 다시 머리를 박기 시작했어. 쿵 쿵 소리를 내며 머리를 박았어. 나는 너무 무서웠어. 참새가 죽을 것 같았어. 그래도 나는 참새를 잡아야만 했어. 내가 참새를 밖으로 나가게 해 줄 거니까. 참새를 살릴 거니까.”   

      

몇 바퀴를 달렸는지 모른다. 언니와 나는 지쳤다. 책상을 가운데에 두고 나는 언니와 마주 본다. 언니가 목 언저리를 타고 흐르는 땀을 닦는다. 숨을 고른다. 그리고 책상으로 몸을 기울인다. 언니의 얼굴이 조명 아래서 허옇게 비친다. 엉킨 머리가 언니의 얼굴을 절반 정도 가리고 있다. 언니가 천천히 고개를 든다. 그리고 나와 눈을 맞춘다. 웃는 얼굴이다. 멈춘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 언니가 책상 위로 올라가려 한다. 다리 하나를 책상에 올린다, 한 손으로 책상을 잡는다. 숨을 들이쉬더니 나머지 다리를 뗀다. 나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난다. 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언니가 쿵하고 책상에서 떨어진다. 온몸이 얼어붙는다. 나는 가만히 서 있다. 언니는 곧바로 일어선다. 머리를 부딪쳤는지 이마에 피가 흐르고 있다. “씨발.” 언니가 욕지기를 내뱉는다. 언니는 허리를 숙여 떨어진 칼을 줍는다. 그리고 두 손으로 책상을 잡는다. 칼이 언니의 손에 파고든다. 피가 손목을 타고 흐른다. 언니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언니가 책상을 들어올린다. 그리고 집어 던진다. 큰 소리를 내며 책상이 구석에 처박힌다. 언니는 책상을 발로 부순다. 나무로 된 책상 다리가 힘없이 부러진다. 언니는 계속해서 책상을 부순다. 책상이 도막난다.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다. 언니가 뒤를 돌아본다. 언니는 나를 보고 히 하고 웃는다. 피를 흘리며 나에게 다가온다. 점점 가까워진다. 나는 뒷걸음질한다. 등 뒤로 딱딱한 벽이 느껴진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언니가 코앞으로 얼굴을 들이민다. 

     

“난 참새를 잡았어. 담요 사이로 두 다리가 삐져나와 있었어. 참새 발가락이 몇 개인지는 기억나지 않아. 내가 또렷이 기억하는 건 하나야. 참새 다리는 투명해.”

     

언니가 내 머리채를 움켜쥔다. 나는 악하고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재갈이 물린 내 입에서는 신음소리밖에 나지 않는다. 머리채를 잡힌 채로 언니에게 끌려간다. 언니는 의자가 부서진 구석으로 나를 끌고 가더니 벽에 밀친다. 너무 아파서 정신을 잃을 뻔했다. 눈물 때문에 앞이 흐릿하다. 언니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툭하고 칼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시야가 선명해진다. 언니가 두 손을 뻗는다. 목을 조른다. 약력이 느껴진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자꾸만 천장이 보인다. 

     

“근데 정말 이상한 게, 나는 참새를 살리고 싶었거든. 여기에서 나가게 해주고 싶었거든. 근데 막상 내 손에 참새가 잡히니까, 참새를 죽이고 싶었어. 지금, 이 자리에서 온 몸을 으스러뜨리고 싶었어. 나는 내가 참새를 죽일까봐 두려웠어. 당장이라도 두 손에 힘을 줄까봐, 여린 뼈마디를 단박에 으깨어 버릴까봐. 이상하다, 이상하지? 난 정말 참새를 살리고 싶었는데. 죽이고 싶지 않았는데. 참새의 투명한 다리를 보니까 참새를 죽이고 싶었어.”

      

언니가 손을 놓는다. 나는 꺽꺽거리며 자리에 주저앉는다. 힘없이 늘어진 팔 아래로 종이의 질감이 느껴진다. 책상 위에 있었던 종이다. 고개를 숙여 종이를 본다. 익숙한 문제다. 1년 전에 나를 떨어뜨리고 언니는 떨어뜨리지 않았던 문제, 고시 시험지다. 출력일을 확인한다. 시험을 보기 전 날짜다. 정확히 일주일 전이다. 언니가 허리를 숙여 시험지를 한 장 집어 든다. 그리고 눈앞에서 시험지를 흔든다. 

“말했잖아, 시험 치는 인생은 우스운 인생이라고.”

밧줄에 묶여 하얗게 질린 손이 부르르 떨린다.

“시험은 시험을 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져. 시험을 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만들거든.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시험을 치고, 치고 또 치고. 왜 그럴까, 왜 그럴까, 몰라서 그러는 걸까? 그렇게라도 열심히 산다고 믿고 싶은 걸까? 그렇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걸까? 아, 그래서 참새는.......” 

 

언니가 내 등 뒤로 손을 뻗는다. 밧줄과 재갈을 풀어 바닥에 던진다. 믿을 수 없어 언니를 바라본다. 언니는 웃으며 나와 눈을 맞춘다.

“어떻게 됐게?”

자유로워진 손으로 바닥을 더듬는다. 차가운 금속이 느껴진다, 칼이다. 두 손으로 칼을 꽉 쥔다, 그리고 언니의 목에 박는다. 언니가 힘없이 옆으로 쓰러진다. 언니가 울컥하고 피를 쏟아낸다. 언니는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나는........참새를.......창문을.......열었........손.........놓았어........담요.......아무.......것도.......없었.......창밖.......도.......아무것.......없.......어.........참.......새는......죽.......었.......까......살.......까.......”

      

"날아갔어."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언니는 여전히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