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네르바인’, 10,000km 거리 극복하는 공동체 의식
우리는 ‘미네르바인’, 10,000km 거리 극복하는 공동체 의식
  • 샌프란시스코=허해인 기자, 김수현 기자, 글=허해인 기자
  • 승인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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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9000km, 아르헨티나에서 하이데라바드까지는 1만5000km. 겉으로 봐서 미네르바 스쿨 구성원이 공동체 의식을 갖기는 힘들 듯하다. 하지만 이들은 “미네르바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커뮤니티”라고 말한다. “한 학년은 140~160명 정도인데, 졸업할 때까지 동기끼리 새로운 도시로 계속 옮겨다니잖아요. 커뮤니티 형성이 안 되면 4년 동안 버티는 게 불가능하죠.” 박지원씨는 2015년에 입학한 모든 사람을 다 안다고 한다. 그의 말처럼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미네르바 학생의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해 학교가 노력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다양한 학생 모임 행사를 열고는 한다. 대표적인 예가 매주 열리는 10:01(텐-오-원)이라는 행사다.

10월8일, 미네르바 스쿨 샌프란시스코 레지던스 홀에서 브라질 학생들이 ‘10:01’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제공=김문섭씨
10월8일, 미네르바 스쿨 샌프란시스코 레지던스 홀에서 브라질 학생들이 ‘10:01’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제공=김문섭씨

‘10:01’(텐-오-원)은 특정 국가 혹은 지역의 학생들이 자신의 문화를 대표하는 음식을 준비하고 춤, 음악, 영화, 언어 등을 소개하며 다른 학생들과 어울리는 자리다. “미네르바 스쿨 개교 후 처음에는 몇 년간 과제 제출 기한이 10시였어요. 학생들이 부랴부랴 과제를 마감하느라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을 우려한 학교가 과제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던 것에서 유래한 행사예요.” 김문섭씨가 행사의 유래를 설명했다. 지난 10월8일에는 브라질 학생들이 ‘10:01’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브라질 음식과 음악에 대해 배우고, 박수를 비트 삼아 삼바 리듬에 맞춰 춤을 배웠다. 브라질 학생들은 "사랑에 대한 열정을 빼고는 브라질을 설명할 수 없다"며 브라질식 '추파 던지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현재 ‘10:01’은 매주 일요일 오후8시23분에 열리고 있다. 8시23분(20:23)인 이유는, 올해 신입생들이 졸업하는 해가 2023년이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학교는 도시 탐방 등의 활동을 할 때 학생끼리 어울릴 수 있도록 돕는다. “행사 별로 그룹이 다양한데, 레거시(legacy)라고 하는, 특정 성향을 띤 학생들끼리 묶어놓은 그룹도 있어요.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기숙사처럼요. 학교 측에서는 생활하면서 학생들이 최대한 섞일 수 있도록 노력해요. 어떤 날에는 같은 층에 사는 학생들끼리 모임을 하기도 하고,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은 친구끼리 앉아야 하는 날도 있어요.” 

이 밖에도 추석이면 함께 차이나타운에 놀러 가는 등, 미네르바 학생들은 캠퍼스는 없지만 나름대로 캠퍼스의 낭만을 쌓고 있다. 올해 졸업반인 박씨는 미네르바 스쿨의 초창기를 회상했다. “제가 2학년 때, 미네르바 학생들이 처음으로 서울에서 공부하게 됐어요. 학교가 도시에 자리 잡는 기간 동안 기숙사나 기업 파트너십, 도시 탐색과 관련해서 저를 포함한 한국인 학생들이 학교 일을 많이 도왔어요. 그래서 같이 성장한 느낌이 있죠.” 

이 밖에도 매우 독특한 배경과 스토리를 가진 학생들 간 맺어지는 네트워크는 미네르바 학생들이 매우 가치있게 여기는 것 중 하나다. 박씨는 “신생 학교라 선배 네트워크가 많이 없지만 이것이 단점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며 “이곳 학생들은 저도 평범하게 보일 정도로 특이하고 재미있는 친구들이라서 충분히 좋은 인적 자원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임지엽씨 또한 “다름을 포용하고 수용하면서 전 세계에서 인연을 만드는 것이 미네르바에서의 목표”라고 말했다.

9월 첫째 주, 파운데이션 위크가 끝난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션 비치(Ocean Beach)에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은 학생들 제공=김문섭씨
9월 첫째 주, 파운데이션 위크가 끝난 후 미국 샌프란시스코 오션 비치(Ocean Beach)에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둘러앉은 학생들 제공=김문섭씨

미네르바 커뮤니티에서는 학생이 충분히 ‘지지받는 느낌’이 드는지를 항상 확인한다. 매 학기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하고, 전통적인 ‘학교라는 울타리’가 없기 때문에 항상 학교가 학생의 요구와 목표를 같이 고민하고 있음을 느끼도록 한다. 구성원 모두가 새로운 모험을 하는 탐사선에 올라탄 상황이기 때문이다. 

“학생과 교수가 멀리 떨어져 있고 같은 공간에서 수업을 듣지는 않지만, 포럼(Forum)을 통해 면대면(face-to-face) 교류가 가능해요. 그래서 교수와 학생이 일대일로 연결된 느낌이 들고 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죠.” 준코 그린씨가 온라인 수업 플랫폼에 관한 우려를 부정하며 말한다. 임씨는 “수업이 끝나면 어떤 교수는 ‘화면에 20분 정도 남아있으면서 쉬고 있을 테니, 질문할 사람은 하라’고 말하곤 한다”며 “그러면 궁금한 것이 있거나, 다른 사람이 무슨 질문을 하는지 궁금한 학생은 포럼에 남아서 더 이야기하다가 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모든 수업이 녹화돼 학생 평가의 자료로 쓰이기 때문에, 토론 내용에 대한 피드백도 자세하게 제시된다. 이뿐 아니라 미네르바 스쿨은 학생들의 의견을 매우 다양한 통로로 듣고 있다. 재정 지원, 기업 파트너십, 학생 모임 운영 주제까지 학교 운영의 많은 과정이 학생들의 의견을 바탕으로 한다. “학생들이 어떤 분야에 흥미가 있는지, 도시에서 경험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기반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어요.” 서울에서 미네르바 스쿨 학생들의 도시 경험을 담당하고 있는 김은영씨가 말한다. 미네르바는 학생의 통찰력을 믿고 이를 따라 만들어지는 학교인 것이다.

 “미네르바에는 여정을 같이 하는 교수진도 있어요. 도시를 돌면서 학생들이 잘 적응하고 있는지, 학교로부터 충분히 지지받고 있다고 느끼는지 체크하는 역할이죠. 학생들과 기숙사에서 같이 생활하는 교수진도 있고요. 구성원 간의 유대적인 관계 구성에 매우 노력합니다.” 그린씨가 말했다. 그린씨는 ‘지지하다(support)’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사용하고 강조하곤 했다. 미네르바 스쿨이 전 세계에 분포되어있는 온라인 기반의 대학인데도  무너지지않고 탄탄하게 성장해온 원동력을 바로 학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추측할 수 있었다. 김은영씨는 “물론 다양한 사람과 낯선 곳에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미네르바가 어떤 공동체를 원하는지, 이를 위해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 하나하나 맞춰가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적응 능력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린씨도 이에 동의했다. “문화간 이해(cross-cultural understanding)를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래서 신입생 첫해에는 서로 소통하고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하는 것이고 이게 세계 시민으로 기르기 위한 근육인 거죠. 그리고 항상 우리가 그들을 위해 있음을, 지지하고 있음을 깨닫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