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사회통제를 주기능으로 삼는다.

그래서 언론은 사회환경의 감시자로, 정치와 경제 비리의 비판·견제자로 자리하고 있다.

최고 권좌에 있는 대통령이 쫓겨나게 된 워터게이트 보도사건과 일본의 록히드 뇌물폭로사건·독일의 바르쨀 수상 자살사건은 언론의 권력비판과 경제비리 견제행위가 얼마나 날카롭고 통쾌한가를 보여준 생생한 실증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한국판 워터게이트, 한국판 록히드는 우리 사회에는 없다.

한국사회의 통째로 썩은 모습을 백일하에 드러내준 「수서비리」사건은 수소폭탄의 위력으로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고, 동시에 한국저널리즘의 「너절리즘」적 병든 모습과 무비판적 썩은 언론의 얼굴도 드러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한국판 워터게이트가 될 수 있는 호조건들을 다 갖추었으나 언론의 비판·추적·폭로·감시 및 견제기능이 마비됨으로 불발의 한국형 워터게이트로 묻히게 됐기 때문이다.

언론의 비판력과 감시행위를 무디게 하고 마비시키는 「언론마약」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권력과 돈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한국언론도 수서사건 앞에서 마비되어 드러누워있는 것이다.

드러난 「마약」(뇌물금액)이 무려 5억원에 이르며 그것이 언론에 이미 주사되었고 그 뇌물주사 맞은 언론인이 80명에 이른다는 소문이다.

한국 저널리즘을 병들게 하고 마취시켜온 주범으로서의 권력과 금력은, 지난 30년간 3백여명의 언론인이 고급 공무원(중앙부처 국장급 이상)이나 정치인(국회의원·장, 차관)으로 변신하여 언론의 권력화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그리고 고층빌딩이나 초호화판 호텔업이나 문어발 대기업으로 변질해간 언론의 모습에서 잘 시위되었다.

권력을 견제하고 경제비리를 비판해야 할 언론이 스스로 권력화하고 재벌로 둔갑하여 같이 썩어가고 있는 것이다.

권력의 민주화, 경제부패의 정화, 사회비리의 척결·개선은 부패한 언론의 정화사업에서 그 출발점이 모색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감시자를 감시하고 수사 시관을 수사하는 독립된 기관이 없다.

따라서 수사가 잘못 되어도 사회감시가 언론에 의해 잘못 감시되어도 그 시정과 개선을 모색할 수가 없다.

기껏해야 국민들의 자성촉구나 재수사 요구란 윤리적 차원의 운동에 머무르고 있어 실효가 없다.

『수상실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 국가행정기구가 가장 두려워하는 감시자는 감사원(Rechnungshof)과 언론이다』라고 F. 누슐러란 독일 정치학자가 말했다.

그들의 감시·견제 비판 기능이 워낙 날카롭고 정의롭기 때문에 부정과 비리는 언론의 비수같은 단칼에 잘려나갈 수 밖에 없는 탓이다.

언론의 정화가 정치와 경제·사회 비리와 부정을 정화하는 조건이요 시발점이라면 한국언론은 지금 절대절명의 자기 정화 명제 앞에 서있다.

그것은 언론인이 권력의 강제나 썩은 돈의 유혹을 거부할 수 있는 용기와 양심회복운동을 통해 달성될 수 있다.

최말단 젊은 언론인들에 의해 년전에 점화된 언론자정혁명에 불길을 다시 당기는데 이번 사건이 기여한다면 나름대로 사건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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