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표면뿐인 것만 같은 관계들 속에서 진짜 핵을 찾고 싶다는 열망은 삼켜야 하고. 타인들은 누구나 적어도 하나쯤은 갖고 있는 듯 보이는 끈끈하고 다정하며 진짜인 것 쌍방향으로 작용하는 사랑을 내포한 것 그것을 부러워하며 박탈감에 괴로워하지 않아야 한다. 오늘도 나는 그런 방식으론 쿨하지 못해 끝없이 외롭다. …

언젠가 일기로 남겼던 생각이다. 이 날 일기의 제목은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이 끝없는 외로움을 끝끝내 견뎌야 하고’ 였다. 김초엽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은 날이었던 것 같은데 소설의 내용 때문에 적은 것은 아니었고, 제목을 곱씹으며 나는 아마 외로움에 대해 생각했나 보다.

대학에 오고 나서 어른이 되면서 느낀 건 너무 갑자기 외로워졌다는 당혹스러움이다. 원래 일상이 혼자 하는 일들로 가득했던가. 학창 시절 나는 점심, 저녁마다 복도를 질주하고 교실들과 교무실들을 쏘다니느라 바빴는데, 학부 신입생으로 입학했을 때의 나는 바쁠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는 입학보다 졸업이 가깝고 학창 시절은 아득한데도 3년 전인 신입생 때의 충격은 오랫동안 내 발목을 잡았다. 후배들에게 매해 신입생 대상 ‘무한애정’을 퍼붓는 선배로 정평이 난 것도 스스로의 신입생 시절 결핍을 보상하기 위해서였다고 늘 생각한다.

이제는 비로소 익숙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이 되고 나서의 인간관계에 적응이 되어 좀 여유를 부릴 줄도 알게 됐다고. 조별 과제를 같이 했던 벗을 마주치면 인사하고 먼저 안부 묻고 능청 부리며 대화할 수 있을 때 그렇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의 가벼운 대화가 어렵지 않을 때 그렇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아주 뜸하게 연락하고 정작 만나면 어제 헤어진 사이처럼 스스럼없는 데서 괴리감을 느끼지 않을 때 그렇다. 지금은 자주 볼 수 있는 너무 소중한 대학 친구들도 몇 년 뒤엔 일 년에 몇 번도 못 보겠거니 수긍하게 될 때 그렇다. 가까워지는 일도 멀어지는 일도 좀 더 잘 해낼 수 있게 되었다.

절대로 익숙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강의실을 복도를 스쳐 갈 때 인사 나누는 사이가 교복 입던 시절 복도를 스쳐 가며 인사하던 친구 사이와 결코 같을 수 없음이 그렇다. 학창 시절 복도에서 스치며 인사한 그 친구가 지금은 일 년에 한 번도 볼 수 없을 만큼 멀어졌다는 게 그렇다. 몇 년 뒤엔 가끔이나 만날 수 있게 되더라도 지금 내게 소중한, 애정을 쏟는 상대들이 제각기 나와 서로와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는 게 그렇다. 대학 입학 후에 ‘인생은 원래 혼자’라는 말을 숱하게 들었는데, 익숙해진다거나 이해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때때로 찾아오는 이 반발심에 억울해진다. 멀어지는 일은 끝끝내 ‘잘’ 할 수는 없겠으면 어쩌지. 벗들은 어떤가요, 우리 서로 많이 다르겠지만 조금은 같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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