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 생명경시풍조의 실례

오늘날 과학문명의 발달과 함께 나타난 문제중의 하나는 과학으로 인한 인간성 상실이다.

과학은 진실을 알아내는 정직한 방법으로 그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과학이 인류에게 끼친 유익은 엄청나다.

그러나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인하여 과학은 인류에게 비인간화 현상과 같은 심각한 해독을 남겼다.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과학(절대)주의로 나타났다.

과학주의란 과학만이 절대적이며 객관적이기 때문에 과학만이 믿을만한 지식을 제공하며 궁극적으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는 일종의 비과학적인 이념이다.

따라서 과학주의에는 과학적으로 관찰되지도 않고 실험을 통하여 증명도 되지 않는 지식에 대해서까지도 사실화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과학주의적 성향은 생명과학에 적용될 때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진화론이 그러한 예이다.

일반적으로 진화는 사실로 인식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진화가 직접 관찰되었거나 혹은 실험을 통하여 증명되었기 때문이 아니고, 생명의 기원과 생물의 출현문제가 과학주의적인 관점에서만 접근되고 처리되었기 때문이다.

진화론은 생명이 간단한 물질에 에너지가 작용하여 복잡화된 물질의 조합으로 시작하였고, 생물은 이렇게 간단한 생물체로부터 저절로 변하여 단계적으로 출현하였다는 설명이다.

진화론자들이 진화과정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제시하는 근거는 생물의 변화를 보여주는 직접적인 근거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진화론자들은 유사성있는 차이를 연속적인 변화로 해석함으로써 차이를 변화의 근거로 삼는데, 이러한 해석논리는 절대적이 아니다.

그 밖에도 과학의 내용속에는 진화론에 대한 부정적인 문제점들이 많이 있다.

더구나 우연에 의해서 완벽한 생물학적 형질의 구현을 설명한다는 것은 아직까지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진화론은 사실이 아니고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과학주의적이고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생명을 볼 때 생명은 물질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

즉 생명은 물질적이요, 기계적일 뿐이다.

그러나 생명현상을 과학적인 견지에서 고찰해 보면, 생명은 단순한 물질의 조합이 아니다.

생명현상을 유지하고 표현하기 위하여 물질과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물질과 에너지만으로는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원래 생명과학에는 생명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이나 원리가 없기 때문에 물질과학에서 발견한 화학결합의 법칙과 에너지(열역학)법칙을 이용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 두가지 법칙을 이용하여 설명할 수 있는 생명현상에는 한계가 있다.

그 이유는 생명현상을 설명하는 데에는 물질과 에너지 이외에 생물학적 틀, 혹은 요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벽돌을 만들 때 모래, 시멘트, 물과 같은 물질적 조성과 힘 이외에 벽돌틀이 있어야 하는 경우에 비유할 수 있다.

사람의 발생과정에서도 0.2mm밖에 안되는 하나의 수정란에서 출발하여 다양한 세포조직, 기관을 가진 태아가 형성되기까지 물질과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물질과 에너지만 가지고 이 과정을 전부 설명한다는 것은 아직은 불가능하다.

만약 물질과 에너지만으로 이 과정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다면, 세포증식에 의한 동일한 종류의 세포모임은 예상할 수 있을런지 몰라도 눈, 코, 입, 퇴, 간 등과 같이 다양한 기관과 세포가 질서있게 배열된 태아의 형성은 기대할 수 없다.

발생과정을 통하여 5조의 세포로 구성된 태아가 형성될 때 비록 동일한 세포 하나로 출발했으나, 발생이 진행됨에 따라 세포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은 세포에 따라 세포의 운명을 결정지어주는 독특한 생물학적 요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포운명의 결정요인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떻게 결정요인이 선택적으로 세포로 분배되며, 어떻게 작용하여 세포의 운명을 결정지어주는지 현대생물학은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생명은 신비하고 놀라울 뿐이다.

생명현상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물질법칙의 적용에 한계가 있다.

더구나 정신적인 현상을 설명하고자 할 때 그 한계성은 더욱 더 분명해진다.

이러한 한계성은 물질현상과 생명현상의 독특한 차이에 기인한다.

즉 물질현상에는 수학적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연속성이 있는 반면에 생명현상에는 이러한 연속성이 없다.

난자와 정자의 결합으로 발생이 시작되어 세포분열, 세포이동, 세포운명의 결정 등으로 연결되지만, 이러한 사건들은 서로간에 예측이 불가능한 불연속성을 지니고 있고, 수학적 공식으로 표현도 되지 않는다.

생명경지풍조를 보여 주는 예가 많지만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심각한 예가 낙태이다.

요사이 국민학교 취학아동들의 성비가 1.2:1(남:여)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성비가 앞으로 심각한 사회적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짐작된다.

사람은 난자가 수정된지 8주가 지나면 길이 25mm의 태아를 형성하는데, 이 때 태아는 손가락과 발가락은 물론 모든 기관을 가진 완전한 개체가 된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하잘것 없는 이유를 가지고 생명이 있는 태아를 제거시키는데, 참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또 다른 경악할만한 예는 미국에서 시험관아이를 만들어 다른 사람 병치료의 재료로 사용한 경우이다.

시험관 아기란 모체밖에서 수정만 시킨 다음 수정관을 모체에 다시 이식시켜 발생시킴으로써 얻은 아기이다.

발생과정이 정상과 다름없다.

그러나 문제는 특정인의 병치료를 위하여 의도적으로 시험관아기를 생산하여 희생시킬 수 있을 정도로 생명을 쉽게 생각하는데 있다.

오늘날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의 모습을 크게는 가정 파괴, 살인사건, 근친상간과 같은 범죄에서부터 아이들이 보는 파괴적인 만화에 이르기까지 거의 매일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

상실된 인간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무엇부터 어디에서 시작하여야 할 것인지 당혹스럽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시급하며 중요한 것은 교육을 통해서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촉구하는 것이다.

생명과학 교육은 단순한 과학교육만이 아니라 윤리관과 가치관의 기초가 되는 생명관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인간교육이 되어야 한다.

특히 생명의 기원과 생물의 출현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것은 물론이지만, 과학주의에 사로잡히지 말고 과학을 과학으로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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