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미뤄지는 북미간 비핵화 실무 협상

국제 리더십이 미국, 생존이 걸린 북한

비핵화와 평화를 동시에, 한국 외교 시험대에 올라“

 

박인휘 국제학부 국제정치학 교수

남북미 정상이 판문점 한국 측 지역에서 역사상 최초로 조우한 게 지난 6월30일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전 세계 언론이 지켜보는 가운데 2~3주 안에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앞에 두고 미국 협상팀의 핵심 멤버인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비건 대북 특별대표를 이례적으로 치켜세웠다. 능력과 식견을 갖춘 신뢰할만한 인물이라고 평가하면서 우리는 언제든지 대화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런 연유에서 당시 많은 전문가들은 2~3주라는 시간은 아마도 북한 측에서 요구한 준비 기간일 것으로 추정했었다.

2~3주 후로 예상되었던 실무협상은 석 달 만인 오는 9월말쯤 재개될 것으로 알려졌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 9일 북한 최선희 외교성 제1부상은 언론을 통해 9월말 시점을 전격 공개했는데, 이는 지난 2월 28일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난 이후 약 8개월 만에 미국과 북한 협상팀이 다시 마주 앉게 되는 것이다. 사회과학에는 하나의 배경요인만 존재하지 않는다. 2~3주의 시간이 3개월이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다. 하지만 사회과학의 여러 배경요인 중에는 하나의 중심적인 지배변수가 존재한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8월에 진행된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열리는 동안 미국과 평화를 논의한다는 것이 많이 불편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협상 재개를 미루는 것만으로 불만 표시가 성에 차지 않았다. 협상 재개를 밝힌 바로 다음날인 10일 또다시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감행했다. 미사일 실험은 현 시점에서 유엔안보리 결의 사항 위반이고, 올 해에 들어서만 10번째 실험에 해당한다. 미국과 비핵화 협상에 나서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북한 군부의 반대가 극심하고, 2차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한테 뒤통수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또한 북한은 스텔스 기능을 갖춘 F35 전투기의 도입을 크게 비난한 바 있다. 평화회담에 참여하기는 하지만 북한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국제제재에 옥죄여 있고 도무지 실질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으니, 본의 아니게도 북한 스스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다.

 

돌이켜 보면 2017년 전쟁위기 소문까지 나돌았던 한반도 안보 상황을 뒤로하고 작년 이후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극적 모멘텀이 생겨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하지만 비핵화와 평화를 동시에 추진하는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고 복잡한 과정이다. 더구나 한반도를 둘러싼 4강은 어떤 형태로든 비핵평화 과정에 자기들만의 고유한 목소리를 내고자 하므로, 남북한 둘이서 푸는 평화방정식도 복잡한데 하물며 종합적인 국력이 족히 우리의 몇 배에서 몇 십 배는 되는 강대국을 상대로, 완전한 비핵화를 이뤄내고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은 모든 지혜를 모으고 혼신의 노력을 다해도 쉽지 않은 과제이다.

 

지금의 한미동맹이 생겨난 건 정확히 1953년 가을이다. 논쟁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한미동맹은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외교안보 자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북한을 이해하게 되었고 김정은의 리더십이 마음에 들어서 협상에 임한 건 아닐 것이다. 그가 트윗에 올렸던 것처럼 북한의 장밋빛 미래를 위해서 평화를 보장해 주겠다는 건 더더욱 아닐 것이다. 외교는 전쟁이고 게임이며 생존이다. 이쯤해서 실질적인 이익을 반드시 챙겨야할 북한의 입장과 지금 상태로는 도무지 성에 차지도 않고 확실한 치적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미국의 입장이 조만간 또다시 부딪치게 될 것이다.

 

비핵화와 평화를 주고받는 거래의 시한은 대체로 올 해 말까지다. 기본적으로 핵무기가 가지는 탈한반도적인 성격 때문에 협상은 북한과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이 사이에서 우리의 역할은 크지 않다. 미국과 북한이 협상테이블을 박차고 나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는데, 미국의 입장에서는 국제리더십이 걸려있고 북한의 입장에서는 생존이 걸려있는지라 좀처럼 우리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 외교가 또다시 험난한 시험대 위에 올라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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