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안리재보험 홍보팀2009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수상「비밀노트」(다른, 2015) 저자
김지숙(국문·08년졸)
코리안리재보험 홍보팀
2009 중앙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수상
「비밀노트」(다른, 2015) 저자

스무 살에 내 인생의 목표는 세 가지였다.

첫째, NGO 단체에서 일한다, 둘째, 소설을 쓴다, 셋째, 일 년 이상 세계여행을 한다.

나는 일상생활에서는 결정 장애의 끝을 달리지만, 꿈에 있어서만큼은 확고한 편이었다. 십 대 중반부터 스스로를 비혼주의자로 규정했고(물론 그 때는 이 단어가 없었다), 결혼을 하지 않은 채 이 세 가지 꿈에 헌신하는 삶을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스물네 살에 관심 있던 NGO 단체에 들어가서 3년 간 일했다. 많은 걸 배웠고, 거기서 만난 사람과, 하게 된 일과, 몸담은 조직을 통째로 사랑했다. 그리고 재직 중에 쓴 글로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을 했다. 스물여섯 살 때였다. 예상치 못한 결과라 당선이 아니라 ‘당첨’이라고 말하고 다녔지만, 내심 언젠가 일어날 일이 조금 일찍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세계여행의 꿈은 절반의 성공이었다. 이는 국제금융경제 위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세계여행 자금으로 모으던 돈이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맞으며 반 토막이 나버렸다. 지인의 소개로 들었던 상품이 ‘변액보험’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았는데, 금융에 조금이라도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변액보험이 장기상품이며 원금을 까먹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일 년 간의 세계여행 대신 돈이 모아지는 대로 한두 나라씩 여행하는 걸 선택했고 그렇게 20개국 정도를 여행하며 어느 정도 아쉬움은 해소되었다.

나름대로 만족스럽고 풍요로운 이십 대를 보낸 나는 서른을 목전에 두고 최악의 시기를 맞았다. 좋아하던 일까지 그만두고 글쓰기에 집중하려 했지만, 성과는 좋지 않았고 우울감만 심해졌다. 도피성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수중의 돈이 하나도 없다는 걸 깨닫고 이자가 비싼 현금서비스를 받으며 내가 얼마나 현실과 괴리된 채 살고 있는지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온 나는 채용사이트에 들어가 직종무관, 경력무관, 학력무관으로 조건을 걸고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보냈다. 그리고 몇 번의 이직을 거쳐 지금의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지금 나는 서른여섯이다. 현재 NGO와는 거리가 먼 영리단체, 그 중에서도 재보험사에 7년째 재직 중이다. 변액보험이 뭔지도 몰랐던 내가 금융업계 종사자가 된 것이다(!).

소설가로서의 활동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나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에야 ‘신춘고아’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작품을 발표할 지면을 얻지 못하고 이름도 알리지 못한 채 사라지는 작가가 매년 한 무더기이며, 나도 그 중 하나라는 사실도 처참히 깨달았다.

세계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꿈만 꾸면서 두 돌 된 아이의 육아에 매달리고 있다. 삼십 대 초반까지 흔들림 없이 비혼주의자의 길을 걷던 나는 남편을 만나고 눈이 뒤집혀서 내가 청혼을 해버렸다. 내가 이십 대 때 유스호스텔에서 혼자 배낭여행을 하며 세계 각국 여행자들과 소통하는 오십 대 여행자가 그리도 멋있어 보였다. 나도 나이가 들어서까지 배낭여행을 하리라 결심했고, 휴양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단 이틀이라도 온전한 휴가가 주어진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한 번도 깨지 않고 아침까지 잘 수 있는 푹신한 침구류가 있는 리조트를 선택할 것이다.

이십 대의 내가 현재의 나를 본다면 ‘인생 망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의 삼십 대는 내가 이십 대 때 생각했던 삶과는 빛깔도, 결도 판이하게 다를 뿐 아니라, 현실과 타협해버린 현실주의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현재 불행하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그리고 나의 의지로 만든 나의 가족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다만 가끔은 마음이 쓰라리다. 나에게 스티브 잡스와 같은 자기 확신이 있었더라면 조앤 K. 롤링과 같은 뚝심이 있었더라면 나도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동경하던 글 쓰는 삶을 지속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이 불쑥 차오른다. 그럴 때면, 마음 속 상자에 담아둔 나의 이상을 다시 꺼내본다. 그리고 녹슬지 않도록 잘 닦아서 다시 상자에 넣어둔다.

만약 내가 서른 살 때 이 글을 썼다면 성공담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오만한 자세로 ‘나는 꿈 꾼 것을 이뤘노라’며, 여러분도 나처럼 꿈을 명확히 갖고 확신을 가지고 나가라고 조언했을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삼십 대를 보내며 나는 한결 겸손해졌고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믿고 싶다). 이십 대에 방황하며 대학을 세 번씩 바꿨던 친구, 하고 싶은 일을 못 찾겠다며 졸업 후 5년 간 방안에 있던 은둔형 외톨이 친구, 반대로 무언가에 쫓기듯 자기계발에 열을 올리다가 탈진한 친구를 떠올리며 사람은 다 각자의 고민의 몫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내가 삼십 대를 보내며 깨달은 바가 있다면 지금의 나는 영속적인 상태가 아니며,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살면서 내일을 기대한다. 사십 대의 나는, 이십 대에 추구하던 이상과 삼십 대를 지배한 현실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은, 보다 성숙한 모습이기를 바라며.

김지숙(국문·08년졸)

 

 

「비밀노트」

/김지숙 저

다른 출판, 2015

「비밀노트」는 수아, 영주, 미경 세 소녀가 만나 빚어내는 우정의 여러 단면을 촘촘히 그려 낸 청소년 소설이다. 초등학교 때 친구가 돼 중학교를 함께 다니는 십 대 소녀들의 미묘한 심리 변화, 서로에 대한 동경과 질투, 집착과 배신의 드라마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글=네이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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