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에게 한국인을 대표하는 문화를 물으면 열에 아홉은 빨리빨리문화라고 답할 거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나라는 빠른 배달, 빠른 인터넷 등 죄다 속도를 강조하는 문화가 많다.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기 전부터 슬그머니 짐을 내려 빨리 나갈 계획을 세우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 한국인 아니냐생각할 정도다. 그만큼 우리는 일 자체가 갖는 가치만큼 그 일을 처리하는 속도 또한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 총량은 누구나 비슷함에도 한국에서는 인생을 어떤 속도로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다. 우린 인생에 한해서는 절대적인 속도보다 남과 비교한 상대적 속도를 과도하게 신경 쓴다는 점이다. 내 인생이 남들보다 빠르면 좋고, 비슷하면 괜찮으나, 남들보다 느린 것은 절대 용납지 못한다.

 

이런 흐름에 따라 인생의 대소사를 남들과 같은 때에 치르게 됐다. 모든 일엔 때가 있다는 말이 마치 모두가 정해진 때에 같은 일을 해야 하는 것처럼 읽히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속적으로 닥쳐올 미래를 준비하며 현재를 보내야 한다. 모두가 달리는 상황에서 혼자 여유 부리면 곧장 뒤처질 테니.

 

한국 사람은 여유롭게 사는 법을 모른다는 칼럼을 여러 개 읽은 적 있지만, 이런 삶이 익숙해 사실 한 번도 고민해본 적 없던 문제였다. 혁신학교 취재를 이유로 미국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 찾아가기 전까진 말이다. 세인트 존스 칼리지는 4년 내내 교양 수업만 들으며 졸업까지 전공 없이 고전을 200권이나 읽는 대학으로, 점점 실용 학문을 중시하는 한국 대학과는 비교된다.

 

취재를 시작했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 사람들 제때 취업은 될까?’였다. 우리는 대학 졸업 직후 취업을 목표로 1학년 때부터 대외 활동, 동아리, 심지어 복수 전공까지 계획하는데, 4년동안 고전 읽고 토론만 한다니 과연 어떤 기업에서 이들을 원할까 의문이었다.

 

이 의문은 취재를 준비하면서 점차 해소되는 듯 했다. 기존 언론이 발표한 세인트 존스 칼리지 기사에 따르면, 이 학교는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충족 시켜 취업률이 높단다.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에서 생각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거창한 말이 기사에 줄줄 이어졌다. 기사를 찾아보며 학생들이 세인트 존스 칼리지를 선택하는 이유가 이런 경쟁력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직접 찾아간 세인트 존스 칼리지는 언론이 말한 내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업에 취업하는 학생은 소수에 불과하며 70%는 자기 전공을 확정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만난 재학생들은 취업 계획을 묻는 나에게 그걸 지금 생각해야 하냐고 되물었다.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가서 전공을 고민한 뒤에 슬슬 취업하면 되지 않겠냐고 덧붙이기도 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나로서는, 다른 대학 학생보다 취업이 최대 4년 늦어질 수 있는데도 이 학교를 선택한 일이 이해가 안됐다.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선택한 이유가 있냐고 묻자 모험이 아니었다고 답했다. 여기서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게 즐겁고 마음에 따라 100년 인생 중 4년정도는 이렇게 보내도 괜찮다고 생각했단다. 기업이 요구하는 능력 따위 생각해본 적 없다고 말하는 그들을 보며 뒷통수를 맞은 듯 했다. 일 년 휴학하고 외국에 나가보겠다 말하는 동기에게 미래 생각해서 한 학기만 하라고 말렸던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남들 할 때 해라.” 정해진 교육과정 따라 흘러가는 대로 살았던 고등학생때는 실감하지 못했던 말인데, 대학에 오니 뒤처지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많은 걸 포기해야 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 대학생이 늦어지면 안된다는 조급함에 교환학생, 휴학 등 마음이 원하는 일을 포기한다.

 

조급한 한국 정서, 나이 많은 사람은 뽑지 않는 기업 분위기가 먼저 변해야 한다. 기성 세대는 신입 사원은 어릴수록 좋다고 말하지 말고 어리지 않아도 괜찮은 사회, 남들보다 느리게 살아도 비난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여유롭게 인생을 계획하고 즐길 수 있다. 자기 마음 속 목소리를 따라 인생을 돌아가는 이들이 잘 사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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