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빈둥대는 베짱이의 변론 - 누가 베짱이를 베짱이라 정의하는가
[여론광장] 빈둥대는 베짱이의 변론 - 누가 베짱이를 베짱이라 정의하는가
  • 전재영(융콘·16)
  • 승인 2019.09.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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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것을 하고 싶다. 많은 것에는 무용한 것들이 포함된다. 어딘가 쓸데없는’ 것들. 중의적으로 풀어보자면 사용성이 없다는 것 외에도 어디에 쓸 수 없는 것들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이력서, 자기소개서, 지원서에 적어 내려갈 수 없는 것들 말이다. 20189월부터 20199월까지 00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했다곤 적을 수 있어도 20189월부터 지금까지 즐겨보는 ASMR 영상에는 비누 깎는 영상이 있습니다라고 적을 수 없는 것들. 생산적이지 못한 것들.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고,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

 

ASMR 영상 보기(하루에 한 번은 꼭 찾아본다), 그림 따라 그리기(최근 거금을 들여 아이패드 프로3을 샀다), 코인노래방 가기(살아오며 가장 오래 지속해온 여가 행위다. 학교 앞의 코인노래방은 모두 섭렵했다), 웹툰 보기(유료 결제를 위해 쿠키를 자주 굽는다), 좋아하는 가수가 정점을 찍었던 하루의 라이브 동영상 보고 또 보기 등등. 안타깝게도 난 이런 것들을 하며 죄책감을 느낀다. 많이 느낀다.

 

하지만 나는 사회에서 정한 기준에서 훌륭한 것들 역시 마구마구 하고 싶다. 더 솔직히 말해선 하고 있다고 소개해야 안심이 된다. 회사에서 경험 쌓기 대회 나가기 나가서 발표하기 장학금 받기 논문 읽기 논문 쓰기 해외 동향 뉴스 읽기 공부하기 지원서 쓰기 자기소개서 쓰기 스터디하기 이력서 정리하기 등등.

 

왜 무용한 것들을 소비하며 죄책감을 느낄까. 근원을 타고 타고 거슬러 생각해보자면 중심에는 시간이 있다. 내가 사는 사회는 노동이 자본인 사회이다. 그 때문에 같은 시간을 주었을 때 도달해내는 성과 즉 나의 노동력에 따라 나의 가치가 결정된다. 같은 시간 동안 얼마나 더 쓸모 있는 것을 했는지에 따라 내 가치가 결정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똑같이 애정하고 똑같이 떳떳이 하며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어떻게 변명해도 노동이 자본인 사회에서 나의 무용한 행위는 내 사생활의 범주일 뿐 사회적으로 합의된 자원으로 인정받을 순 없다. 내가 애정하는 무용한 것들은 재화로서의 생명력이 없다. 그래서 슬프다. 쓸모 있지 못한 것들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고 사랑하고 싶고 떳떳해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서.

 

그래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사랑하는 무용한 것들을 하기 위한 시간을 위해 덜 사랑하는 나머지 일들을 해나가야 한다. 쓸데 있는 것들을 좀 더 할수록 쓸데없는 것들을 할 시간이 생긴다는 것을 불평해선 안 된다. ‘죄책감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이니 둘 사이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정도로 타협을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