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세정 취재부장
배세정 취재부장

지난 주, 추석을 맞이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추석 전이다. 추석을 앞둔 나의 걱정과 두려움을 글로 써보자 한다. 몇몇 행운아를 제외한 평범한 한국 가족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이상한 명절 풍경에 대한 얘기다.

매년 추석이면 외할머니댁에 간다. 추석 전날 가기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동태전, 고추전, 새우튀김 등을 부친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니와 나는 고추의 속을 채우는 역할을 맡았다. 갓 부친 따끈따끈한 전을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손이 야무지지 못한 나는 추석 전날부터 할머니댁에 가서 요리 돕기를 꺼려했다.

다음 날 아침은 할머니께서 열심히 준비한 음식으로 차례를 지낸다. 할아버지와 삼촌이 방에 들어가 차례를 지내면, 엄마와 이모는 밖에서 보고 있다. 그때가 이른 아침이라 누워서 자고 있으면 엄마가 나를 깨운다. “제사 지내는데 왜 자고 있니.” 그렇다고 나에게 절하라고 시키진 않는다. 제사 지내는 동안 나는 멀뚱멀뚱 앉아있다. 어느 날은 엄마에게 모른 척 물었다. “엄마는 왜 안 들어가?” 그러자 엄마는 “여자는 결혼하면 출가외인(出嫁外人)이야”라고 답했다.

추석 당일엔 친척이 모두 모인다. 이모와 이모부, 친척동생까지 전부. 저녁 메뉴는 항상 같다. 갈비찜과 잡채, 전날 부친 전 등이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자 칭찬을 늘어놓았던 한 이모는 설에 ‘이제 이런 것도 해야지’라며 나에게 반찬을 나르게 했다. 같은 해 함께 대학에 입학했던 친척남동생이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부엌에 있진 않았다. 그 후 명절만 되면 손이 느린 나는 반찬을 나르기 싫어서 소파에 꼭 붙어있었다.

밥상은 거실에 큰 것 하나 작은 것 하나가 차려진다. 메뉴가 다르진 않지만 보통 남자는 큰 밥상, 여자는 작은 밥상에 둘러앉는다. 각 밥상에 앉는 인원수는 비슷한데 말이다. 이모들과 엄마는 반찬을 만들고 나르느라 밥상에 늦게 앉을 때 다른 밥상은 이미 밥과 함께 술까지 곁들여 드시고 계신다.

밥을 다 먹으면 어른들은 간단한 안주에 술을 마신다. 가끔 나도 그 자리에 참석할 때가 있는데, 듣는 소리는 뻔하다. “남자친구는 있니?”, “졸업하고 뭐 할 거니?”, “결혼 잘 해서 엄마에게 효도해야지.”

이상한 풍경이다. 집안이 텔레비전, 스마트폰, 노트북 등 현대문명으로 가득 차 있지만 관습만은 옛날 관습에 머물러있다. 1년 중 가장 큰 만월(滿月) 아래서 놀고 마시는 추석은 오늘날 의도도 바뀌었다. 풍작을 기대하고 감사하며 조상께 제를 지내는 시대가 아니니, 그 의도는 아마 가족 간의 화합 정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합에 불필요한 관습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이 풍경에 대해 ‘예전부터 그래왔어’라고 말하려면 그 유래를 봐라. 추석의 유래라고 하는 신라시대 가배(嘉俳)는 왕녀 두 사람이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어 거느린 뒤, 길쌈내기에서 이긴 편에게 술과 음식을 주고 각종 놀이를 한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말하는 ‘예전’은 보통 조선시대지만, 명절의 모습은 이처럼 고대부터 지금까지 달라져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앞으론 추석이 누군가에게는 스트레스인 명절이 아니길 바란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강강술래나 하고, 편을 갈라 게임을 해 이긴 편에게 상품이나 주길 바란다. 추석이 진정으로 가족이 화합할 수 있는 장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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