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대는 평등이라는 가치에 흠뻑 적셔진 채 자랐다. 모든 사람은 똑같은 정도로 소중하며,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고 배웠다. 대한민국에 타고나는 계급은 없으며,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동등한 시민으로서 이 사회의 주인이라고 배웠다. 어떤 사람도 다른 사람에 대해 성별, 인종, 재산, 장애의 유무, 질병, 나이, 성적 지향 등을 가지고 부당하게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우리는 그렇게 교과서도 읽고 수업도 듣고 시험도 치면서 자랐다.

그런데 책 밖의 세상은 평등하지 않았다. 어느샌가 ‘수저 계급론’이 등장했다. 수저 계급론은 사회구조의 부조리를 비판하기보다 사회 구성원들을 계급에 따라 나누는 데 치중한다는 점에서 지탄받아야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그저 교환가치일 뿐만 아니라 마치 개인의 힘으로는 바꿀 수 없는 ‘계급’처럼 작용한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성평등 문제라고 불리는 성불평등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분명히 ‘남녀’가 평등하다고 들으면서 자랐는데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에게 요구하는 바는 확연히 다르다. 이외에도 사회적 약자들에게 행해지는 불평등은 수도 많고 종류도 많다. 뉴스 기사를 읽다 보면 ‘세상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고 세세하게 불평등할 일인가’ 하는 생각이 종종 든다.

청년들에게 불평등은 그저 눈살을 찌푸리고 넘어가면 그만인 문제가 아니다. 명백한 병목사회인 대한민국에서 청년들은 한두 문제로 당락이 갈리는 시험을 계속 치른다. 최종합격을 위해 학교에서, 카페에서, 작은 방 안에서 초식동물처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잠 잘 시간, 밥 먹을 시간을 아껴 가면서 공부한다. 그런데 청년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규칙 밖에 있는 사람들이 갑자기 나타나서 기회를 낚아채 가버리는 상황이 반복되자 분노를 넘어서 무기력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평등을 숨 쉬듯이 익숙하게 여기며 자라온 이들에게, 실제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계가 있다는 것은 불가해한 일이며, 이해할 가치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Z세대는 불평등을 타파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불평등을 민감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만큼 평등한 상황에 익숙해 있다는 반증이다. 평등한 상황이 무엇인지 알고 평등을 저해하는 행위들을 인식하며 목소리를 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 현재 청년들의 모습에는 우리 사회를 개선시킬 수 있다는 희망과 신념이 있다. 성차별 논의가 우리 세대에 들어 급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인간 사이의 평등을 넘어 전 지구의 동식물을 포괄하는 환경권과 동물권에 관한 관심도 증가하고 있다. Z세대가 받아온 교육을 탁상공론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행동을 통해 그 내용을 현실로 옮긴다면 Z세대의 책 속 이야기는 다음 세대의 현실이 될 것이다.

김정민(사회·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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