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집은 북적북적, 도서관은 와글와글, 과방이나 동아리방은 시끌시끌…」 복사집에서는 한 학기동안 이루어진 모든 강의내용이 불과 몇 분동안 완벽하게 재생되고, 평소 한가했던 도서관은 복사된 강의 내용을 토시 하나 빼놓지 않고 암기하는 이화인들로 분주하다.

과방을 비롯한 학내 곳곳에서는 시험족보 얻으려는 후배들의 아부(?)가 극성이다.

게다가 시험치기 몇분 전 강의실에서는 출제가 될 듯한 개념이나 중요사항을 책상에 새까맣게 적어놓는 「밥상차리기 족속」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대학은 「공부하지 않느 상아탑」이라는 부끄러운 꼬리표를 달게되었다.

대학은 「학문 연마의 장」이 아닌 깨끗하고 조용한 공원이나 보다 나은 결혼이나 취업을 위한 「간판 따내는 시장」으로 전락해버렸고, 대학생은 A+에 목매다는 고등학교 4학년생으로 돌변한 것이다.

물론 시험없는 대학은 존재할 수 없지만 시험을 위한 대학도 있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시대 학문연구의 최고봉이라고 하는 대학의 얼굴은 취업이나 결혼의 잣대가 되는 평점으로 일그러져 가고 있다.

대학에서의 시험은 교수와 학생간의 학문적 토양과 현재적 수준을 점검하는 척도이나 이제 더이상 그 척도의 개념은 무의미하다.

즉, 시험제도의 비효율적 운영으로 시험은 더이상 학생들의 학문적 수준을 가늠하지 못하고 「A+선호증」에 걸린 대학인들의 양심마저 짓밟아놓는 또하나의 잘못된 제도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증세는 5,6백명의 대형강의가 증가하면서 교수·강사진의 부족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덤으로 얄궂은 지적을 하나 더 한다면 교수님들의 어쩌면 무성의한 시험방식으로 문제의 질을 저하시킨다는데에도 그 요인이 있다.

심지어 올해 모과목 중간시험에서는 사지선다형의 객관식 50문제, ○·× 50문제를 출제하여 수험생(?)들이 허탈감마저 느낄 정도였다고. 고등학교까지 12년 동안 사지선다형에 익숙해진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기 전에 자기의 논리를 갖고 주장을 펴는 연습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인 대학에서마저 번호 고르기 시험이라니 면목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스갯 소리지만, 이러다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도 「반드시」넷 중에 한명 고르기를 하게 되는건 아닐런지 모르겠다.

100여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의 대학도 이젠 「학문에는 왕도가 없으나 A+에는 지름길이 있다」는 엇갈린 상식을 극복하고 「참교육」의 산실로 자리잡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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