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 사회대, 공대, 스크랜튼대 조기 졸업생을 만나다

<편집자주> 가을 졸업의 시기다. 보통은 봄에 졸업하지만, 휴학하거나 추가 학기를 다니는 등 여러 이유로 졸업이 늦어지기도 한다. 그리고 조기 졸업을 이유로 가을에 졸업하는 학생들도 있다. 본지는 뛰어난 실력으로 모든 학부 과정을 남들보다 빨리 끝마치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는 조기 졸업생 네 명을 만나봤다.
 

 

박혜령(커미·16)씨는 본교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조기 졸업을 선택했다. 학·석사 연계과정으로 졸업 후 바로 대학원에 입학하는 그는 “다행히 재수강할 수업이 없어서 4학년 1학기에 20학점을 들으면 끝나더라”며 “박사까지 할 생각이 있어서 조금이라도 학부 시간을 줄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제 MBTI(심리유형검사 일종)가 ENFJ거든요. J가 계획적이라는 뜻인데, 그래서 그런지 일찍부터 대학원 계획을 세워서 그에 맞게 공부했어요.”

4.3 만점 기준 4.28의 학점으로 조기 졸업 하는 박씨는 “대학원을 생각할 정도로 전공과 잘 맞았다”며 “글을 쓰고 발표하는 걸 좋아하니까 공부할 때도 재밌었다”며 웃었다.

“방학에는 푹 쉬는 편이에요.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전시도 봐요. 학기 중에는 계획적으로 공부에 매진하고 방학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다음 계획을 세우니까 밸런스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박씨는 본교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다. 특히 미디어 교육에 관심이 많은 그는 “대학원에 가서도 젠더나 미디어 교육을 연구하고 싶다”며 “교수가 되지 않더라도 계속 이 분야를 연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관심 분야에 맞게 졸업 논문에서도 생리대 광고에서 나타나는 여성 표상과 월경 이데올로기를 다뤘다.

“제 인생에서 제일 잘한 선택이 이화에 온 거예요. 타자의 윤리를 제대로 배운 것 같거든요.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게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결정하는 데도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졸업이 또 다른 시작이라는 박씨는 학부 생활에 후회는 없다고 전했다. “이미 자신의 앞길을 잘 꾸려나가고 있는 친구들이 많아요. 졸업이나 취업이야 늦게 하든 빨리 하든 상관없지만, 이화에서 배운 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서 친구들과 좋은 곳에서 만나고 싶어요.”

 


 

“대학 오면 한 번쯤 조기 졸업을 생각해보잖아요. ‘나도 해볼 수 있을까’하고 막연하게 생각해왔는데 조기 졸업 요건에 충족돼서 도전해봤어요.”

3학년 2학기를 마친 후 12학점만 남은 강은주(영문·16)씨는 “조기 졸업을 신청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며 “6학점씩 나눠 듣기엔 등록금도 부담됐다”고 말했다.

강씨는 현재 제약회사의 사무보조를 하며 취업 준비를 하고 있다. 취업이 목표다 보니 학업 외 활동도 많이 해왔다. 그는 “방학이면 인턴이나 사무보조를 하기도 했다”며 “동아리, 이화다우리, 봉사, 대외활동 등 해볼 거 다 해봤다”고 설명했다.

“다른 학생들도 후회 없이 대학 생활 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졸업해서 아쉬운 게 없어요. 후회 없이 활동하고 공부했거든요. 대학생은 뭘 해도 용서되잖아요.”

바쁘게 살다 보니 학부생 때 쉬는 날이 거의 없었다. 강씨는 “지금 하고 있는 제약회사 사무보조를 하기 전인 7월에 처음으로 쉬어봤다”고 전했다.

강씨는 조기 졸업을 신청할 때 승인을 위해 황준호 교수(영어영문학과)에게 연락했다. 그는 “학과장님이 ‘사람마다 삶을 사는 속도가 다른데, 은주씨는 은주씨 속도대로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셔서 좋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생각보다 학점이 뛰어나지 않았다고 말한 강씨는 “C+도 안고 간 적 있다”며 “학점을 잘 받는 비결은 딱히 없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공부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이해하려 하는 편이에요. 전공인 영어가 남들보다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예습과 복습 둘 다 하고, 교양은 복습만 했죠. 적어도 몇 회독 이상은 무조건 해서 시험 봤어요.”

“이화에서 타인을 그대로 보는 방법을 배웠어요. 지방에서만 살다가 입학하며 처음 서울에 왔을 때 정말 무서웠어요. 다양한 사람들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을 제가 생각한 잣대로 볼까 봐 무서웠던 거죠. 근데 이화에서는 뭘 해도 어떤 기준도 없는 눈으로 봐주잖아요. 그래서 사람을 일부러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효서(뇌인지·16)씨도 대학원에 빨리 진학하기 위해 조기 졸업을 택했다. 대학원 개강 전부터 연구실에 가고 있는 이씨는 “모델링 기법을 이용해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같은 신경질환을 연구한다”고 말했다.

“일단 이 분야를 계속 공부하려 해요. 나중엔 교수가 돼서 제 연구실을 꾸리고, 주도적으로 연구하고 싶어요.”

학점이 4점대 초반인 이씨는 생명과학을 복수전공 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과학 공부를 열심히 한 게 대학 와서도 도움이 많이 됐다”며 “주전공과 복수전공 내용이 많이 겹치다 보니 시너지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날 배운 건 10분이라도 복습했어요. 그렇게 안 하면 시험 기간에 너무 괴롭더라고요.”

항상 원하는 학점을 받은 건 아니었다. 이씨는 2학년 2학기 때 학점이 떨어져서 방학에 고향으로 내려갔다. 그는 “집 밖에 나가지도 않고 거의 모든 올림픽 경기를 챙겨봤다”며 웃었다.

이씨는 학업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도 활발히 해왔다. 동아리나 학과 내 학회에도 참가했고, 인턴을 하기도 했다. “이화나비란 동아리에서 2년 동안 활동했어요. 수요일 공강을 만들어서 수요 시위에 가기도 했죠. 동아리 친구들과 관련 책을 읽고 토론도 하면서 생각을 많이 기른 것 같아요.”

“저는 학교 다니면서 행복했어요. 고등학교 때 꿈꾸던 대학 생활을 한 것 같아요. 이화여대가 원하는 대학교는 아니었어서 입학할 때는 자신감이 좀 없었어요. 근데 학교가 가진 잠재력이 정말 컸어요. 멋있는 학생이나 교수를 많이 봤기 때문에 이런 곳에 있다면 주눅 들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이화에서 앞으로 2년 동안 더 공부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나윤서(화학신소재·16)씨 역시 본교 대학원 진학을 위해 조기 졸업을 했다. 연구원이 되고 싶다는 그는 “석사를 자대에서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 가 박사 학위를 따고 싶다”며 “그럼 학부 시간을 단축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무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사실 다른 학교 의대를 3년 다니다가 자퇴하고 다시 수능을 봤어요. 의대는 주어진 걸 배우고 제가 주체적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데, 그게 저랑 맞지 않았어요. 의대보다는 공대가 더 적성에 맞는 것 같아요.”

이렇게 본교에 입학한 나씨는 “전 학교에서 도망치듯 나왔기 때문에 이화여대에 입학했을 당시에는 졸업만 하는 게 목표였다”며 “화학을 모르는 상태에서 이 전공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물리는 너무 어려울 것 같고, 생물은 의대에서 하다 왔으니 싫었어요. 그래서 화학 전공을 택했는데, 가장 기본적인 수업인 일반화학Ⅰ에서 A-를 받아서 충격받았죠. 그래도 저보다 나이가 어린 동생들이랑 수업을 듣는 거잖아요.”

하지만 나씨의 최종학점은 4.28이다. 제일 낮은 학점은 바로 일반화학Ⅰ에서 받은 A-다. 그는 “공대라 그런지 1단원을 모르면 2단원을 풀 수가 없기 때문에 평소 공부를 많이 했다”며 “공부하느라 동아리 같은 건 하나도 못 해 아쉽다”고 말했다.

나씨는 컴퓨터공학을 부전공했다. 입학 후 첫 학기 때 필수 과목인 컴퓨터 프로그래밍 기초 과목을 들었던 그는 “내가 뭔가 잘하는 것 같아 계속 심화 강의를 듣다 보니 부전공 이수 학점이 채워졌다”며 웃었다.

대학원에 바로 진학하는 나씨는 수업 조교도 맡게 됐다. 그는 개강을 앞둔 학생들에게 “조교 신분으로도 개강이 정말 싫다”며 “같이 힘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화에서 제일 크게 배운 건 제가 여성이 아니라 사람이란 점이에요. 전에 남초인 과에 다녔을 때는 뭘 해도 특별대우 받았어요. 당시엔 좋았는데, 지나고 나니 정작 저는 발전을 하나도 못 했더라고요. 이화에 와서는 주체적으로 살게 된 것 같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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