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래요
저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래요
  • 강도경(커미·19)
  • 승인 2019.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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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인셉션>을 본 이후 그야말로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그땐 어쩜 그렇게 뚝심이 있었는지. 인생의 동반자를 만난 것임에 확신했고, 하고 싶은 것을 비교적 일찍 찾은 나는 바로 부모님께 말씀을 드렸다. 엄마. 아빠. 저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요. 

초등학생 때 그저 멋있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한두 번쯤 꿈꾼 화가나 경찰과는 달랐다. 명시적인 이유가 없기에 더욱 확신할 수 있었던 영화를 향한 애정, 무의식적으로 영화관으로 향했다 상영 중인 영화를 이미 다 봐 버려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그날의 발걸음, 모두가 잠든 새벽 노트북 앞에 앉아 나만의 영화 속 세계에 빠져 지냈던 그 시간들은 오로지 한곳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님께 말씀을 드리고자 할 땐 약간의 용기만 필요했을 뿐, 과연 내가 이 일을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건지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없었다.

부모님의 망막엔 어리고 철딱서니 없는 사춘기 딸의 상이 맺혔다. 영화계엔 우리 연줄이 하나도 없다. 그 험한 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려고 하냐. 지금 영화판을 봐라 여자 감독이 어디 있느냐. 며칠 전에 난 기사를 보니 어느 작가는 아사했다더라. 다 떠나서, 네 마음이 언제 바뀔 줄 알고 그 불안정한 삶에 한 번뿐인 네 인생을 배팅하니. 생전 처음 받아보는 질문 폭격에, 열다섯 어린 마음의 소녀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후로 내 입을 통해 꺼내어진 말이 무슨 폭탄을 날랐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결국은 눈물을 흘리시며 방으로 들어가시던 엄마, 무거운 침묵을 지키며 가만히 앉아계시던 아빠의 모습이 내게 남아있는 그날의 유일한 기억의 편린이다. 

부모님은 내가 로스쿨에 진학하기를 바라셨다. 법조계에서 활동하시는 두 분께 자식이 내 분야로 들어오는 일만큼 반가운 소식은 없을 것이다. 로스쿨 제도가 현대판 음서 제도가 되었느니 하는 비판은 차치하고, 훌륭한 일을 하는 훌륭한 직업이고 당신들께서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실 경제적 인맥적 여유가 되셨으니 딸의 오케이가 얼마나 간절하셨을진 가늠만 해 볼 뿐이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쉽고 편한 길 놔두고 굳이 어려운 길로 가려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셨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삶이 손만 뻗으면 닿는 위치에 있으면서 굳이 배를 몰고 폭풍우가 휘몰아치는 바다로 항해하려는 딸의 마음을 알지 못하신 것이다.

내겐 열정이, 부모님껜 안정이 주된 동력원이었다. 상정하는 최고의 가치가 다르니 우리는 매번 동상이몽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난 열정을 따를 수밖에 없으며, 부모님께선 왜 안정을 좇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고민했다. 엄마고 아빠고 거친 인생을 사셨다. 형편이 썩 좋지 않은 가정에서 태어나 현재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부단한 노력을 하신 분들이셨다. 두 분 모두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 난 경우였고, 결론만 보니 별것 없이 보이는 이 현실을 이루어내기까지 매 순간이 생존과 직결된 인생을 살아오신 것이었다. 그뿐이랴, 국가가 부도나는 모습도 지켜보셨으며 우리나라를 정면으로 때린 경제 위기도 이겨내셨다. 경험으로써 아시는 당신들께서는, 도무지 자식이 당신처럼 고생하진 않았으면 하고 바라신 것이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며 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현실의 등살을 이기지 못하고 안전한 길로 들어선 이후를 상상해보았다. 사무실 앞에 앉아있는 내 얼굴에는 사람의 생기따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안정된 인생을 살자고 하기 싫은 일을 한다면, 내일이 오고 다음 날의 태양이 뜨는 것에 대해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예술계가 유난히 그렇다. 우리가 미디어로 접하는 작품과 사람들은 성공한 1%에 불과할 뿐, 남은 99%는 정말 배고프게 살아간다. 그 자명한 사실을 알면서도 멈출 수는 없었다.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세간에 도는 말마따나, 누군가가 와서 배부른 돼지가 될래,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래 하고 묻는다면 나는 미련 없이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택할 것이다.

직업을 둘러싼 부모님과 나와의 해프닝은 현재진행형이다. 종국에 누구 말이 맞을지 현재로서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나에게는 배를 곯을 두려움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며 좀비처럼 살아갈 두려움이 더 크다는 것, 그거 하나만은 분명하다.